7시 반에 집에서 나와 "고래 사냥"을 부르며 서울역으로 걸어가 부산으로 오는 고속철을 8시에 탔습니다. 2시간 51분 걸렸습니다. 목포보다 먼 거린데도 더 빨리 오는 거 있지요. 물론 승객도 호남선보다 훨씬 많고요. 내가 앉은 기차칸은 역방향석까지 가득 찼으니 아마 다른 칸도 그랬을 거예요.
지난 여름방학에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기장까지 반나절을 걸은 적이 있는데 오늘은 그 기장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부산역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기장으로 왔지요. 도착하자 마침 점심 시간이어서 순대국밥을 맛있게 먹고 걸었습니다. 길을 묻는 주인 아저씨가 자기도 걷기를 좋아한다면서 걱정을 많이 하면서 잘 걸으라고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당연히 기분이 좋았지요.
바닷가라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동해안이라 바닷물이 맑고 푸르러서 내 기분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역시 미역이 많이 나는 데여서 여기저기서 나이 든 여자분들이 미역을 널고 있더라고요. 냄새가 참 좋았어요. 우리는 쉽게 사서 아무 생각 없이 먹지만 우리 입까지 오려면 저렇게 추운 데서 말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어디 저 일만이겠어요? 바다에서 미역을 체취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요. 저런 것을 생각하면 사는 것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많은 은혜를 입고 있는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시쯤 되자 배가 고파서 마침 만두 파는 데가 보이길래 거기로 들어가서 왕만두 일인분을 시켰어요. 다섯 갠데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나중에 먹으려고 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녁 먹어야 하는 이 시간에는 이렇게 피시방에 앉아 있고요. 뭘 먹기는 해야 할 텐데 아직도 배가 부르네요. 늘 나는 먹는 얘기뿐이에요!
6시까지 간절곶이라는 데까지 걷고 숙소가 마땅찮을 것 같아서 울산으로 버스 타고 왔습니다. 내일도 다시 바닷가 길을 따라서 올라갑니다. 오늘은 인도가 좁아서 걷기가 불편했는데 내일은 조금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고, 이곳에서 응원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도 아무 이상 없이 경주에 왔습니다. 울산에서 바닷가 길(31번 일반 국도) 따라 감포까지 걸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려서 버스 타고 경주로 왔습니다.
아침 7시에 숙소를 나섰습니다. 식사할 데가 안 보여서 가다가 먹자고 했는데 10시까지 걸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픈 걸 느낄 즈음에 길에서 사과를 파는 아저씨를 만나 큰 사과를 가리키면서 얼마냐고 했더니 무뚝뚝하게 2천원이라고 대답하더군요. 기분이 안 좋아서 배만 안 고팠더라도 그냥 지나쳤을 텐데 처지가 처진지라 여행하고 있어서 많이 못 산다는 쓸데없는 변명까지 하면서 부르는 대로 주고 샀습니다. 평소에 먹는 데서는 좀 위엄있게 굴자는 것이 내 좌우명 비슷한 건데 번번이 안 되고 맙니다. 팔자려니 해야지요, 뭐.
걸어가면서 먹었지요. 아주 맛있었습니다. 청송 사과라고 써 있던데 그곳에서 나는 사과가 맛이 좋은가 봐요. 배 고파서만은 아니었어요. 과일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맛은 꽤 아는 편이거든요. 기분 나빴던 것도 잊고 돌아가서 한 상자 집으로 택배 부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지요. 갈 길이 많은데 다시 돌아가기가 뭣해서 그냥 생각만으로 끝났지만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정자라는 곳에 이르러서 가게에 들어가서 좀 전에 먹은 사과를 못 잊어서 또 사과를 샀지요. 크기가 좀 작기는 했지만 다섯 알에 3950원이었습니다. 아까 좀 비싸게 산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먹어 봤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겉은 괜찮았는데 속이 좀 부석부석해서 맛이 없었습니다.
점심은 문무대왕릉이 있는 데서 회덮밥을 먹었는데 이것도 맛이 있었습니다. 저녁은 경주에 와서 천마총 주변의 '도솔마을'이란 데서 정식을 먹었는데 7천원이었습니다. 이렇게 잘 차리고 뭐가 남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여러 가지 반찬이 나오고 그것마다 깔끔하고 맛이 있었습니다. 명함을 얻어 왔는데 전화 번호가 011-761-2381, 054-748-9232입니다. 경주에 들를 일이 있으면 이 음식점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먹는 얘기로 시종하고 말았습니다. 수준대로 논다고 어여삐 봐 주시기 바랍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이렇게 된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내일은 내 젊음의 한 시절을 보냈던 포항을 지납니다. 해병대 3년을 보냈던 곳이었습니다.
오늘은 할 말이 좀 많은데 쓰는 일이 내키지 않네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리 지치지도 않고 나쁜 일도 없는데 그런 기분이 드네요. 그래도 오늘 안 올리면 나중에 다시 쓸 수도 없고 그러자고 해도 세부적인 내용을 다 잊어먹어 버릴 것이 뻔하므로 되도록이면 다 얘기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경주에서 6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일찍 자서 6시에 깼거든요. 밖에 나오자 어두컴컴했습니다. 형산강 따라 7번 국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라 무섭기도 하고 차가 달리는 소리가 귀찮기도 해서 경주 시내를 벗어나서는 강둑길로 들어섰습니다. 두 시간 동안 참 좋은 길을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경주 시장과 포항 시장에게 편지를 내서 강둑을 걷는 길로 만드는 일을 제안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간에 강으로 물이 흘러드는 곳이 있으면 돌아서 저편 강둑으로 가야 하니까 다리 같은 것을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에돌기가 싫어서 강 쪽으로 내려가 다시 강둑으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이상하지요? 일부러 걸으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은 길을 걷기 싫어하니 말입니다. 삶이란 이렇게 모순 덩어리입니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고래 사냥'도 마음 놓고 부르고 했지요.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해서 걷기가 참 좋았습니다. 겨울 햇빛도 오래 쬐면 타거든요. 도로에서는 먼지도 안 나니 여러모로 걷기에는 좋은 여건이 되지요.
아침에는 밥을 먹을 수 없어서 어제 산 사과 두 알로 때우고 11시 가까이 돼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저녁에 빵이라도 사 둬야겠습니다.
밥을 맛있게 먹고 길을 나서는데 젊은이 둘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걸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너무 반가워서 대뜸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23살이라는 거예요. 장하다고 칭찬한 다음에 어디서 오느냐고 했더니 춘천에서 출발해서 7번 국도로 부산까지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방에 먹을 것이라도 있으면 좀 나눠주고 싶을 정도로 감격에 겨워 거듭 멋지다고 해 줬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더 붙잡고 얘기를 나눠야 하는데 바로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진이라도 몇 장 찍어 뒀어야 한다는 생각은 바보같이 그들이 멀어지고서야 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이렇게 놓쳐 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예 소중한 것인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1시쯤 되어서 포항에 도착했습니다. 해병대로 근무했던 곳인데 시외버스 정류장도 역도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습니다. 20여년이 지났으니 바뀌기도 했겠지요.
숙소에 들기는 너무 이르기도 하고 보이는 곳마다 모텔이다 싶을 정도로 모텔이 많아서 정나미가 떨어져서-여행자에게는 가장 필수적인 장손데 왜 저런 기분이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7번 국도를 계속 따라가면 흥해라는 데가 나오는데 거기까지 가 보기로 했습니다. 숙소가 있으면 묵고 없으면 시내 버스가 다니므로 다시 포항으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여관이 있어서 숙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여관비 얘기도 좀 해야겠습니다. 울산에서는 4만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지난 여름까지도 보통 2만 5천원인 것을 생각해서 비싸다고 하면서 놀라워했더니 작은 방을 3만원에 준다고 해서 거기에 들었습니다.
어제 경주에서는 겉으로 보기에 깨끗한 모텔에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5만원이랍니다. 그냥 나왔지요. 조금 허름한 곳을 두드렸더니 3만 5천원이라고 했습니다. 거기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3만원 줬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루에 5만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열흘이면 얼만가요? 그렇잖아도 혼자만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아 미안한데 저렇게 돈이 들면 걷는 게 아무나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개 얘기 하나만 더하고 마칠게요. 포항을 벗어나오는데 그야말로 양만한 살찐 개가 나에게 덤벼드는 거에요. 정신이 다 나갔지요. 그런데 눈이 순한 게 생긴 것이 물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도 뚱뚱하면 순하게 보이잖아요. 사람이 그리워서 나를 반겼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잔뜩 겁이 났지요. 내가 좀 겁쟁이거든요. 그래서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재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개가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를 꽤 멀리까지 따라오는 거에요. 그래서 길을 건너면 안 따라올까 싶어서 그렇게 하려다가 내 자신이 불쌍하게 보여서 의젓하게-정확히 말하면 의젓한 체하고-그냥 걸었습니다. 죽음을 품위 있게 맞자거나 기품 있게 살자거나 한 말은 다 헛말이었던 것입니다. 한참 가서 개가 안 따라오는게 확실해지고 나서야 저 순둥이 사진이라도 찍어 둘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외로워서 그랬겠지요. 혹시 주인을 잃은 개일까요?
내일은 대게로 유명한 영덕까지 갑니다. 40킬로미터 거리니 걸을 만합니다. 어쨌든 조금씩 위로 순조롭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영덕서부터는 다시 바닷가길이 이어집나다.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잘 걸었습니다. 10시 좀 지났네요. 들어가서 단잠 푹 자야겠습니다.
내일 학교에 갈 일이 갑자기 생겨서 안타깝게도 도보 여행 마쳐야 합니다. 며칠 동안 관심 갖고 응원해 줘서 고맙습니다.
흥해에서 영덕까지 40Km 정도를 걸었습니다. 아침 7시 반부터 시작하여 10시간 동안 걸렸습니다. 한 시간에 4km씩 10시간 동안을 쉬지 않고 걷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해냈다는 기분이 들어 뿌듯해지지요. 더구나 종아리만 좀 땅길 뿐 아픈 데가 없으니 몸에 대한 자신감도 곁들여져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아침에 김밥 나란가 천국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길을 나서는데 하늘이 잔뜩 흐렸습니다. 도보 여행 이틀째부터 계속되는 날씹니다. 햇빛이 나지 않으니 걷기에는 딱 알맞지요. 조금 가니 비가 오는 듯 마는 듯하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걸으면서 제일 기분이 좋은 때는 아침입니다. 몸이 마음에게 어서 걷자고 재촉하지요. 주인이 어디 나가려고 하면 강아지가 앞을 서서 날뛰는 것 같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길을 나서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고 발걸음은 하늘을 날 것같이 가볍습니다. 이런 기분이라면 어디라도 다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쓰니 할 말을 다 해 버린 느낌입니다. 며칠 더 걸어서 강원도 남쪽 바닷가까지만이라도 가면 좋겠는데 계획을 다 채우지 못해서 안타깝네요. 길은 끝이 없을 테니 다음에 걸으면 되지요, 뭐. 요 며칠은 참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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