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
나는 평소에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제멋대로 살자고 주장한다(여기를 보세요).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야 즐겁게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의 가치관이 다양해지고 차이를 당연하게 여길 수 있게 된다. 이 차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관용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어제 어떤 백일장의 최종심을 맡아 중고생의 글을 읽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30여편의 글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우리 학생들이 상투적인 생각을 별 의심 없이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글감이 '쌀'과 '뿌리'였다. 쌀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연결시키는 것은 좋은데 이 글감은 고른 학생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우리 쌀이 좋다든지 쌀은 농민의 생명이라든지 하는 말을 너무 쉽게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쌀이 좋다고 하려면 다른 나라의 쌀과 비교한 다음이어야 한다. 정말 그래 봤을까. 어른들이 그러니까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거나 우리의 본능이 되다시피 한 자민족 중심주의에서 자동적으로 나온 반응이 아닐까. 이 두 측면이 다 해당될 것이다. 이렇게 곧장 비유나 관념으로 가기 전에 먼저 낱말의 외연(사전적인 뜻)을 검토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이를테면 쌀을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이 구체성 속에서 농민의 고통과 땅의 신성한 가치가 저절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사랑은 구체성에서만 그 싹을 틔운다.
'뿌리'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여러분이 짐작했듯이 우리 학생들은 바로 조상이라든지 하는 쪽으로 나아가 버린다. 그러기 전에 나무의 뿌리가 씨앗에서 생기고 자연과 교감하여 열매까지 맺게 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야 마땅하다. 이래야만 추상적인 관념과 상식적인 교훈을 제시하는 공통적인 문제점을 벗어날 수 있다.
남의 생각을 검토도 없이 그대로 수용해 버리는 이런 게으른 정신에서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이 나올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통념에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인 눈을 키울 수 있는 교육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얼른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을 학원이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 자꾸 내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삶의 구체에 다가가야 한다. 물론 이 현장 학습의 결과를 글로 나오게 만드는 것도 아주 필수적인 절차이다.
글쓰기에서도 '멋대로'가 중요하다는 점을 얘기하기 위하여 해 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멋대로'가 다 멋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는 기사를 만났다. 사실은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 앞에서 뭐라고 한 것이다. 기사를 보자.
펑크 머리에 가죽 점퍼와 군화. 전통을 벗어난 파격적인 연주 복장을 하고,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해 고전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영국 출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51·사진)는 ‘클래식계 이단아’로 통한다. 하지만 그가 2004년 내놓은 〈사계〉 음반은 전세계에서 200만장이 팔려 클래식 부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틀에 박힌 모습을 거부하지만, 그는 늘 빼어난 영감과 재능으로 많은 프로듀서와 평론가들로부터 존경과 관심이 되어왔다.
(중략) 형식과 틀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성격답게 나이젤 케네디의 연주곡과 장르는 클래식과 재즈, 록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중략)
그가 이번 내한 때 까다로운 계약조건을 내건 점도 화제다. 공연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그는 계약서에 26쪽자리 서류를 첨부해 공연 당일 최고급 생선회 한 접시를 리허설룸에 준비하고, 호텔방은 온도 22도, 습도 55%로 맞추되, 특정회사의 가습기를 비치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욕실에는 큰 타월 13장과 비누 1개를 준비할 것 등을 요구했다. 그는 공연을 펑크내기로도 유명한데,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때 내한공연이 예정돼 있었으나 오사카에서 열린 아일랜드 경기를 보겠다며 공연 당일 취소해 한국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전체 기사)
저게 자유로움일까? 저 까다로운 계약 조건을 보라. 저 이야말로 형식과 틀에 누구보다 얽매인 사람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약속된 공연을 멋대로 취소하는 것도 자유로움일까? 남의 자유를 무시하는 데서 참다운 자유는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저 자유로움에서는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장사꾼의 냄새가 난다.
아니면 뛰어난 재능의 자유로움은 원래 저런 것일까? 저 자유를 지켜 주기 위해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그냥 참아야 하는 걸까? 공연 중간에 관객들이 일어나 연주 그만 하라고 소리쳐 보자고 제안한다면 이건 자유로움일까, 아니면 속이 좁은 사람의 유치한 반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