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잘산다는 것(2004. 4. 13)

귤밭1 2004. 10. 16. 00:40

 

지난 주말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잠깐 나가서 본 밖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책과의 만남도 그에 못지않았다. 우리 집의 '흔적 남기기'에 소개한(1, 2) 김혜자의 책은 끝없는 눈물을 부르면서 '우린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하도록 했다. 그래서 어제 학교에서 동료 선생들과 만났을 때 꼭 읽어 보라고 했다.

같이 주문한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도 내 삶을 아프게 돌아보게 만들었다. 무슨 설명은 구차한 사족일 테니 곧바로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고층빌딩을 짓고 아파트니 빌라니 콘도니 하는 화려한 집안에서 과연 우리는 깨끗하게 살고 있다는 건가? 진공소제기로 청소를 하고 수세식 화장실은 우리가 배설해놓은 똥 오줌을 눈깜짝할 사이에 흔적도 없이 씻어준다. 온갖 세척제와 화장품으로 씻고 바르고 하니까 우리 인간은 이 지구 위에서 가장 깨끗한 동물이라 자랑해도 될까? 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곳은 과연 어딜까? 그런 냄새는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산과 바다에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들은 수세식 변소도 없고, 일류 패션 디자이너도 없고, 화장품도 없는데도 어째서 그토록 깨끗하고 아름다울까? 물 한방울, 공기 한줌도 그들은 더럽히지 않는다. 수천만원씩 들여 음악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저 그날 살아갈 만큼 먹으면 되고 조그만 둥지만 있으면 편히 잠을 잔다. 절대로 째째하게 수십채의 집을 가지거나 수천만원짜리 보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께 찾아가 빌지 않아도, 예배당에 가서 헌금을 바치고 설교를 듣지 않아도 절대 죄짓지 않고 풍요롭게 산다.

그렇다고 자연계의 모든 동식물은 눈물도 고통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목숨에겐 죽음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뜻밖에 닥치는 재난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이런 재난을 가져오는 무서운 파괴는 하지 않는다. 너무 먹어서 성인병을 앓지도 않고, 차를 타지도 않으니 교통사고도 없다. 오히려 인간들이 저지르는 전쟁과 공해오염으로 수난을 당하고 골짜기 산길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기도 한다.

우리가 잘산다는 것은 결국 가난한 동족의 몫을 빼앗고 모든 자연계의 동식물의 몫을 빼앗는 행위밖에 또 무엇이 있는가?(권정생, <태기네 암소 눈물>, <<우리들의 하느님>>, 녹색평론사, 1996, 79-80쪽)
이런 구절들이 좀 과장하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온다. 여기서도 이런 말 필요 없이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될 텐데 그러면 우리 식구들이 책과 직접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에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로 하겠다.

이런 글이 주는 감동은 물론 내용 자체가 주는 무게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글을 쓴 이의 무욕적인 삶이 그 내용을 튼튼하게 뒷받침해 준다는 점도 꼭 지적해 두어야겠다(이에 대해서는 <빛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도 그의 글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

이곳 교회 문간방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은 1967년이었다. 전에 살던 집은 소작하던 농막이어서 비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한평생 당신들의 집이 없었다. 가엾은 분들이다.

서향으로 지어진 예배당 부속건물의 토담집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외풍이 심해 겨울엔 귀에 동상이 걸렸다가 봄이 되면 낫곤 했다. 그래도 그 조그만 방은 글을 쓸 수 있고 아이들과 자주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여름에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호지문에 빗발이 쳐서 구멍이 뚫리고 개구리들이 그 구멍으로 뛰어들어야 꽥꽥 울었다.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속으로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보니 그것들과 정이 들어버려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서 황금덩이보다 강아지똥이 더 귀한 것을 알았고 외롭지 않게 되었다. (중략)

예배당 문간방에서 16년 살다가 지금은 이곳 산밑에 그 문간방과 비슷한 흙담집에서 산다.(<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12쪽)
제목에서도 그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데 사실 그의 몸은 아홉살 때부터 앓은 결핵과 다른 병으로 성한 데가 없다. 그런데도 저렇게 혼자, 그러면서도 자연과 어울려 살고 있다. 성자다! 하느님이 있다면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를 내려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