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마음의 죽음(2003. 10. 3)
귤밭1
2004. 11. 21. 07:50
아주 좋은 독후감이 있어 옮깁니다. 부끄럽게도 여기에 소개된 책, <<전쟁과 인간-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하지만 독후감의 품위로 보건대 이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역작'이라는 필자의 말을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독후감은 책에 대한 훌륭한 안내로서도 읽어 볼 만하거니와 그냥 산문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지나치지 말고 천천히 꼼꼼하게 음미하기 바랍니다.
돌에 부딪친 물이 크고 작은 포말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이 흐르고 있었음을 안다. 눈을 감고 돌아다니다가 벽을 만나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처럼 삶에 대한 인식은 삶의 경계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앎은 경계를 만났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에서 앎은 없다. 경계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인지의 표식은 감정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책임이 아니라 영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한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감수성이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 고통, 모욕에 둔감한 능력은 ‘리더’의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니, 그러한 능력을 갖추고 훈련하는 것은, 단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어느 때보다 마음이 죽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요즘 며칠 간의 소식에만 한정해도 넘쳐 난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먼저, 정치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박상천, 정균환 등 민주당의 이른바 구주류 정치인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대선 기간에 정몽준 쪽을 넘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민주당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얼굴이 두꺼운 것을 한참 지나 마음이 죽은 상태에 이르렀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제는 광우병에 걸린 소 내장을 빼돌려 음식점에 팔아 넘기고, 음식을 만드는 데 공업용을 사용하다가 잡힌 사람들이 같이 나왔습니다. 다 저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지경에까지 왔습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도시 문화와 현대인의 마음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비교문화학자 노다 마사아키(野田正彰)의 <<전쟁과 인간-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서혜영 옮김, 2000, 도서출판 길)은 삶의 굴욕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중일전쟁 시기 난징 대학살에 참가하여 생체 실험, 종군 위안부 동원, 민간 학살을 주도한 일본군 중에서 현재는 평화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참전 용사’들의 일종의 생애사이다. 감정과 죄의식에 관한 뛰어난 에세이로 정신분석, 평화학, 사회심리, 일본학, 역사학, 형법 교정학(矯正學) 분야의 고전의 반열에 오를 역작이다.
한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 종전 후 50여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저우언라이 시대 중국 사회주의의 위대함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일본의 전쟁 가해자들이 ‘해병대 문화’의 수호자가 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죄로서 - 인정하는 것을 넘어 - 인식하며 평화운동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일본군에게 살육 당했으면서도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신뢰와 깊은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한 당시 중국 정부의 관대한 전범 교화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존의 비루함은, 비단 전쟁터에서 살아 있는 인간을 해부하라는 명령을 명령 이상으로 수행하는 책의 주인공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타인과의 감정 교류를 거부하면서 별 뜻 없는 말이나 태도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연발하는 현대인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 마음의 불사, 즉 감정의 마비가 강함으로 평가받는 현대사회는 그 자체로 군대이며 공포물이다. 저자의 처방은 ‘상처 입을 줄 아는 인간이 되자’는 것이다. 그는 상처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라고 본다. 감정의 부재는 이데올로기적 질서를 갖게 된다. 명예나 수치와 관련된 감정은 비대하게 발달하는 반면, 자신과 타인의 슬픔과 기쁨의 감정에는 스스로 마취제를 놓는다. 노다 마사아키가 인간의 죄의식에 깊이 천착하는 것은 타자의 슬픔을 감싸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평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황’의 명령으로 강제 동원된 말단 군인도 전쟁의 책임이 있다. 명령한 자는 명령한 자의 책임이 있고, 실행한 자는 실행한 자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정희진(여성학 강사)(원문)
슬픈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안에 장애인 시설이 옮겨온다고 아이들에게 등교를 못하도록 했습니다. 기공식이 열린 날에는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나서서 반대 시위를 했다고 합니다. 기자의 소감이 정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자가 마지막에서 얘기한 것처럼 겁이 납니다. 부끄럽다거나,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이 불쌍하다거나 하는 감정이 아예 없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다반사라고 하여도 좋습니다. 한창 사스가 문제되었을 때인가요? 환자를 격리할 병원을 지정하려고 하자 해당 동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한 적도 있습니다. 혹시 병에 걸리면 무슨 염치로 다른 동네로 갈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뻔뻔한 사람들은 아프지도 않는 걸까요? 또 집 값이 내려간다면서 화장터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여 끝내 성공한 곳도 있습니다. 죽음이나 병이 삶과는 정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니 유한한 인간으로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그만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안중에 두지 않고 벌거벗고 날뛰는 모습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삶이란 것이 배제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인간의 도를 한참이나 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자녀 등교 거부' 능사인가
서울 용산초등학교 안에 장애인 시설을 이전하는 교육부 결정에 반발해 자녀들의 등교를 거부하고 있는 용산초등학교 학부모 38명이 3일 초등학생 자녀 20명을 원고로 내세워 “서울맹학교에 대한 학교시설사업 시행계획 승인을 취소하라”며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지난 7월 여름방학 전에도 자녀들의 등교거부로 교육부 결정에 항의했던 학부모들은 별 소득이 없자, 개학일이던 지난달 25일부터 이날까지 다시 10일째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
이날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는 또 부안 핵폐기장 설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초·중학생 350여명과 함께 상경해 국회부의장을 만났다. 이들 역시 등교거부 10일째로 접어들고 있다.
맹학교 이전과 핵폐기장 설치에 대해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처음부터 아이들의 등교 거부로 맞선 것은 물론 아니다. 다양한 농성에도 반응이 없자 마지막 카드로 ‘등교거부’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핵폐기장 시설은 주민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여서 주민 반발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아이들이 집단행동의 대상으로 ‘수단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어른들이 자녀들의 학습권을 볼모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모습은 그것이 자녀들에게 이익이 된다하더라도 한번 더 심사숙고 해야 할 문제다.
지난 7월19일 용산초등학교 앞에서 서울맹학교 이전 기공식이 벌어지던 날, 교문을 잠근 용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은 맹학교 관계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그때 학부모들을 따라나온 초등학생들은 어른들과 똑같이 노래 부르며 상대방을 응시했다.
현장의 기자는 아이들이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그리고 ‘우리편’과 ‘상대편’을 나누는 방법을 너무 일찍 배우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이들의 등교거부가 유행처럼 번질까 겁난다.
강김아리(사회부 기자, ari@hani.co.kr)(원문)
독후감에서 강조한바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마음, 다른 사람의 슬픔과 기쁨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귀한 감정이라는 점을 요즘처럼 처절하게 느끼게 하는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런 것과 관련하여 나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상처 입을 수 있는 권리>, <화장터 이야기>를 보세요.)
이 글은 순전히, 뛰어난 독후감에 촉발되어 쓴 것입니다. 좋은 글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읽어야 할 책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을 말하자니 마음의 죽음을 대하면서 느낀 것과 너무 동떨어지는 감정이라 꺼림칙한 바가 없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기쁨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선의, 이를테면 아무도 모르게 가난한 이웃을 돕는 행위(<매달 100만원 5년간 '몰래 성금'>)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