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밭1 2004. 11. 28. 04:47

 

행복을 느끼는 것은 주체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같은 조건에 있지만 어떤 사람은 행복해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데에 아예 무감각하며,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불행을 느끼기조차 합니다. 주체의 태도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을 무시하고 주체의 능력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 사회가 평균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보통 사람에게 행복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하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사회의 모순을 은폐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일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객관적인 조건도 중요하다는 유보를 달고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 능력은 무엇보다도 내 옆에 아무렇게나 있는 듯이 보이는 것들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늘 대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대상을 처음 본 것처럼 괄목상대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늘 의식적으로 연습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이런 눈으로 보면 세상은 신기한 보물이 된답니다. 아마 시인의 눈에는 더 그렇겠지요.

워즈워드 씨는 정신의 시선을 습관의 무감각 상태에서 일깨워 우리 앞에 전개된 세상의 놀라움에 눈뜨게 함으로써 매일매일의 사물들에다 신기감의 매력을 불어넣고 초자연에 비슷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정하였다. 이 세상의 놀라움이란 무진장한 보물이지만 일상적 친숙의 막으로 덮이고 이기적 탐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마음이 있어도 느끼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코올리지, 이상섭 역, <<문학적 자서전>>, 아리스토텔레스 외, <<세계평론선>>(삼성판 세계문학전집 90), 삼성출판사, 1979, 177-8쪽)
그렇습니다. 세상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해야 옳습니다. 왜 보지 못할까요?

첫째는 낯익은 일상의 세계에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편견이나 통념에 얽매여 있으니 세상의 본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 대상의 전체적인 성질은 상상력이 새롭게 발견해 낸 놀라운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상의 객관적인 모습에 가까이 갈수록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우리를 늘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 욕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놀라움이란 무진장한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은 그것이 목적으로 하는 측면만 부각시킵니다. 세상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순수하게 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여기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습니다.

결국 주관적인 차원의 행복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허심탄회하게 인정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을 늘 거울처럼 늘 맑게 닦고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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