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다르게 보기-감기 예찬(2002. 2. 28)

귤밭1 2004. 11. 30. 20:06
<<한겨레 21>>(2001년 11월 6일, 제 388호)에서 읽은, 재미있는 얘기 소개합니다. 그 재미란 다르게 보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달리 보는 것은 '비딱한' 마음이 시키는 일입니다.

인문과학적 마음가짐의 하나는, 속된 표현을 빌리면 <비딱한> 마음가짐이다. 이것은 미국의 비딱한 작가 에드거 앨런 포가 <비뚤어짐의 도깨비 Imp of Perversity>라고 부른 것으로 이성적 계획이면 무턱대고 깨뜨리고 싶은 비이성적 충동이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문화풍토의 조성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는 인문학자의 주장은 그러한 충동의 표현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인간도 도깨비에 끌리는 인간이 아닌지 모른다. (생략) 브로놉스키는 과학적 인간이 근본적으로 <망나니 성품 maverick Personalities>을 가졌으며, <전투적이고 비딱하고, 따지고, 도전적인 belligerent, contrary, questioning, challenging> 인간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정으로 독창적인 인간과 체제의 관계는 모순의 관계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김우창, <학문의 정열>, <<김우창 전집 4, 법 없는 길>>, 민음사, 1993, 402쪽)
도입부가 인용 때문에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재밌는 얘기 읽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감기 예찬'이고, 필자는 아주대 의대의 이종찬 교수입니다.

감기에 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기는 우리를 매우 귀찮게 하고 번거롭게 한다. 자신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감기는 그야말로 불청객이다.

콧물이나 재채기로 감기에 걸리기 쉬운 환절기가 되면, 아예 약국은 자칭 ‘감기 환자’들로 북적거린다. 광고에서 듣고 본 대로 자기가 약을 마음대로 처방하여 무슨무슨 약을 달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당장에라도 나을 수 있도록 약을 ‘독하게’ 지어달라고 약사에게 청한다. 여기에서도 만족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동네 의원으로 곧장 달려가서 의사에게 한방에 감기가 물러갈 수 있도록 주사를 놓아달라고 떼를 쓴다. ‘빨리 빨리’ 낫지 않으면 의사나 약사를 탓한다. 이처럼 감기는 현대인들에게 마음과 몸의 ‘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감기는 ‘적’일까? 오히려 친구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자주 오는 형편도 아니고 1년에 한번씩 찾아오는데, 어찌 며칠 만에 가라고 눈치를 줄 수 있는가. 애써 더 놀다가라고 나는 친구에게 오히려 졸라대는 편이다. 친구는 1년간 내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가 궁금한지 온몸을 샅샅이 돌아다닌다. 그러니 친구 때문에 몸살이 날 정도이다. 하지만 친구는 다른 친구를 또 찾아 삼천리 방방곡곡 돌아다녀야 한다고 때가 되면 내 곁을 떠나간다.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친구 덕택에 지난 1년간 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진다. 하루하루의 삶에 허덕이다 1년이 어떻게 후딱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오랜만에 넥타이와 허리띠를 풀어놓으니 마음이 이렇게 넉넉할 수 없다. 그러니 하루 종일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읽고 싶은 시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온갖 종류의 차를 가까이 두고도 바쁜 생활로 마시지 못했는데, 이 기간에 다양한 차 향기에 빠져든다. 그러면 친구도 좋은지 나를 보채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여러 가지 상념들이 맴돈다. 지난 한해 동안 마음속에 맺혔던 것들은 스스로 풀려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른다. 삶의 활력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다. 친구가 떠날 때 즈음엔 환송회를 베풀어준다. 내년에 다시 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나는 11월이 기다려진다.

감기를 통해서 우리는 마음이 몸에 대한 자연치유력을 조절할 수 있는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감기가 우리에게 주는 삶의 슬기이다. 감기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더 많은 약과 주사를 달라!’ 현대인들이 이런 맹신에 집착할수록 사람의 몸은 점점 망가지게 될 것이다. 몸은 스스로의 치유 능력을 갖고 있다. 자연치유력이 있다는 것이다. 몸이 자연치유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조정할 생각을 하기는커녕 약과 주사로 몸을 정복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몸의 자연치유력은 떨어지게 된다. 약과 주사로 몸을 다스리는 사람은 몸의 진정한 주인(주체)이 될 수 없다.

이종찬, 아주대 의대 교수·의학사상 medphil@hanmail.net
나도 지난 주에 독감에 걸려 고생을 한 적이 있는데, 억지로 나으려고 하기보다는 이 글에서처럼 그것을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요전에 읽은 것인데 암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병이라 생각하여 치료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친구처럼 여겨 평소에 하던 대로 일도 하며 지낸다는 것이지요. 살아 있는 것이 겪어야 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화장터 이야기>에서 강조한 바 있습니다만 죽음도 그렇거늘 감기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렇게 세상과 삶을 달리 보면 전혀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위의 글에 대해 전적으로 흔쾌하게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그것은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는 많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편한 마음 때문입니다. 기차를 타러 아침에 서울역을 지나가면 집 없는 사람들이 부수수한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참담할 뿐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위의 얘기는 모욕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의 글을 옮기는 마음 한구석에는 너는 좋겠다고 하는 차가운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