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김장했어요-상처의 추억

귤밭1 2007. 12. 3. 20:06

지난 토요일(2007. 12. 1) 오후에 김장했다. 강남에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저린 배추 여섯 상자를 사고 와서 밤늦게 마쳤다. 이렇게 하면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같이 보일 수도 있겠는데 나는 사실 김장하는 사람 옆에서 얼쩡대기만 했다. 내가 한 일이란 게 사온 배추 상자나 양념 등을 나른 다음에 김치 냉장고와 김치 용기를 청소하고 명령에 따라 김치 용기를 냉장고에 넣는 정도였다. 쓰레기를 밖으로 치우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니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테고. 무채 써는 모습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작년에 엉성한 솜씨로 채를 치다가 엄지손톱 쪽이 잘려나가면서 피깨나 흘린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서였다. 상처가 되살아나는 듯 시큰거리는 기분이었다(작년의 상처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보세요).

 

김치는 잘 되어서 맛이 있었다. 지지난 주에 김치가 떨어져서 학교에 가서는 밖에서 산 김치로 때울 수밖에 없었는데 한끼는 그럭저럭 먹었으나 그 다음부터는 도저히 손이 가지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달아서였다. 백화점에서 이름이 있는 상표를 골랐는데도 그랬다. 왜 이리 음식맛이 천박해져 버렸을까?(지난주에 제자와 함께 먹은 갈비찜도 그랬다. 그 전 주에 먹은 적이 있어서 주문하면서 달지 않게 해 달라고 알아듣게 부탁했는데도 여전했다. 아마 갈비를 양념할 때 설탕을 많이 쳐서 그런 것일 게다.) 김치를 맛있게 만드는 당사자에게 물었더니 양념에 돈을 안 들여서 그럴 거란다. 그렇다면 돈을 더 받으면 될 거 아닌가? 많이 비싸더라도 얼마든지 수요자가 있을 텐데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된다. 재료 고유의 맛을 느끼게끔 음식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참고로, 아래에 옮긴 글은 작년에 쓴 것이다. 오늘 생각 나 읽어 봤더니 일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다 마쳐 놓지 못하고 있었다(내 게으름을 용서하소서!). 여기로 가져 오면서 끝을 간단히 덧붙여서 완성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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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을 끼고 머리를 감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엄지 손가락을 다쳐 물을 묻혀서는 안 된다고 해서 일주일 동안 해 봤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한마디로 머리를 감는 것 같지가 않았다.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직접 머리를 문지르면서 감아야 비누 거품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저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거품을 느끼지 못하니까 도대체 맨숭맨숭해서 무슨 일을 한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몸을 씻고서도 시원하지가 않다. 음식 만드는 데만 손맛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손을 두고 뭐라고 한 적이 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손에 대하여>를 보세요). 기분이 좋아지는-다시 말하면, 살아 있다는 맛을 느끼는 데 손과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실감했다. 세수하려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면 바닥의 오톨도톨한 표면 때문에 얼굴이 긁히는 것 같아 내 얼굴이 바로 그릇이구나 싶어지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지지난 한 주는 팔다리가 온전한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날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일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나는 모르는 채로 살았던 것이다.

 

나는 먹성이 좋아서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기는 하지만 짜거나 단 것을 입에 대지 않으려고 한다. 다 몸에 좋지 않아서지만 그건 이성적으로 생각한 거고, 짠 것은 어려서부터 안 먹어 버릇했고 단것은 나이 먹어 가면서 몸이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안병수, 국일미디어, 2005. 이 책에 대해서는 여기여기를 보세요. <<한겨레 21>>에 지은이가 연재하는 글도 읽기 바랍니다.)에서 정제당이 우리 몸에 치명적으로 나쁘다는 점을 충격적으로 읽은 것이 몸에 영향을 미쳐서 몸이 저런 반응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정제당이 들어간 과자, 빵, 음료수 같은 것은 잘 손을 대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가끔씩 먹는 라면이라든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하는 외식을 멀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튼 지나친 단맛은 다른 맛을 못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맛을 가장 천박한 것으로 치고 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도대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어리둥절할 것이다. 어떤 이는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여 손맛과 음식 맛을 연결하여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짐작할지도 모른다. 다음 얘기를 읽으면 알게 될 테니 조금만 참기 바란다.

 

지난 11월 25일에 우리 집에서는 김장을 했다. 다른 것을 몰라도 김치는 집에서 해 먹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 사서 먹게 되는데 한 끼 정도는 그럭저럭 넘기는데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무엇보다도 달콤한 맛이 그 원인이다. 그래서 원칙이 앞으로도 문제없이 통용되도록 하기 위해서 김장하는 데 열심히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도 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저 건성이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아침 일찍 배추 저린 것을 사러 가는 길에도 따라나섰다. 우리 동네-강북의 마포 공덕동이다-에서는 꽤 먼 강남의 하나로마트로 갔는데 해남배추를 파는 곳에는 이미 줄이 끝없이 이어져서 거기 끼어들었다가는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도 문제거니와 끝까지 기다린다도 해도 우리에게는 배추가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손님이 거의 없는 풍산배추를 샀다. 무우와 젓갈 등 양념을 사고 집으로 왔다.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돕고 싶었다. 그래서 무채를 썰어 보겠느냐고 했을 때 내가 선뜻 나선 것은 당연했다. 사실 뾰족하게 솟은 칼날이 섬뜩하기는 했다. 치다 보면 무가 미끄러져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도 했다.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서툰 내 솜씨를 보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만두라고 말리는데도 계속하다가 결국 일은 터지고 말았다. 무를 놓치면서 무 대신에 내 엄지손톱 끝쪽을 밀고 말았던 것이다. 금방 피가 뚝뚝 떨어졌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이라도 해 주면 좋겠는데 하지 말라는데 나선다고 화까지 내 신세가 한없이 처량해지는 기분이었다. 잘못해 놓았으니 화도 낼 수 없었다. 깊이 베었는지 피가 계속 나와서 병원에 가 응급처치를 받고서야  멈췄다.

 

그 다음의 일은 앞에 이야기한 대로다. 이랬으니 올해 김치는 먹을 때마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맛있는 김치 잡숫기 바란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