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밭1 2010. 7. 18. 22:20
 

나무에 대한 아주 그럴듯한 구절을 만났습니다.


제가 보기에 나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공기와 함께, 백익무해(百益無害)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이(唯二)한 존재입니다. 물과 바람도 조금만 지나치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데, 나무는 비현실적일 만큼 흠이 없습니다. 완벽합니다. (정혜신, <이런 희망>, 원문)
며칠 전에 읽은 것인데 오늘 아침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올려다 본 싱싱한 나무 이파리에게 '과연 너는 멋져!' 하며 부러움을 많이 섞어 감탄하고 나서 이렇게 다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럴듯하긴 한데 나무가 완벽하리만치 흠이 없다는 것은 감상적 허위가 아닐까요? 소나무 그늘 아래는 풀이 못 자라잖아요. 그리고 저들끼리 햇빛을 많이 받으려고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요. 나무나 자연이 인간 현실과는 정반대로 완전한 조화와 평화의 세계를 이룬다는 건 우리 인간의 주관적인 바람이기가 쉽지요. 다시 말하면 사람의 이상을 나무에 투사한 거지요.

그런데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살기 위해 싸우지만 사람과 차이가 난다는 점도 강조해 둘 만해요. 한마디로 사람은 쓸데없이 욕심을 부리지요. 사는 데는 필요하지도 않은데도 너무 많은 것을 쌓아놓습니다. 그러다 보면 남의 것을 뺏게도 되지요. 그런 점에서 가을이 가면 완전히 헐벗어 본질로 돌아가는 나무의 가난과 극기에 찬탄할 수밖에 없지요. 봄의 새싹이 빛나는 것은 옷을 다 벗은 채로 겨울의 시간을 묵묵히 견딘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즈음에 특히 생각나는 것은 우리 집 뒤꼍에 있었던 비파나무입니다. 목포 쪽에도 이 나무가 있는데 제주도의 것은 그 종이 다르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알이 굵고 껍질을 벗기면 단물이 질질 흐를 정도로 맛이 답니다. 이 비파는 보리를 거둘 즈음에 익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지요. 아, 이런 말을 하자니 침이 고이네요. 이 즈음에 가장 맛이 좋은 자리물회도 먹고 싶어지네요.

우리 집에 있었던 비파나무는 그 모양이 옆으로 좍 펴진 데다가 가지가 많아 올라가서 열매를 따다가 떨어져도 괜찮았어요. 빽빽한 가지에 걸리니까요. 근데 이 나무를 베고 말았어요. 외할머니가 집에 이 나무가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나요. 그 때만 하더라도 어려선지 나무 하나 죽이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 비파나무가 없어지니까 많이 속상하더라고요. 달디단 열매도 열매지만 모양도 보기가 참 좋았거든요.

하기는 우리 집에서 이 나무만 없앤 건 아니예요. 울타리가 꽤 넓어서 토종 감나무도 꽤 많았는데 여러 채의 초가집을 헐어 집을 새로 짓고 나머지 땅에는 귤나무를 심는 바람에 다 자르고 말았지요. 지금이었다면 강력하게 반대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위에서 얘기한 대로 그것이 소중한 줄을 미처 몰랐지요.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느티나무 두 그루는 귤나무에 그늘을 만든다고 가지를 잘리는 통에 키만 훌쩍 커서 볼품이 없는 채로 지금도 서 있습니다. 아마 4대강 살리기 사업도 나중에 이렇게 어리석은 짓으로 판명날 거에요.

신문을 펼쳤더니 임옥상 화백의 숲 그림이 맨 처음으로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인 말이 음미할 만해요.

숲 속에 혁명이 있다


북한산 자락에 기대 산다.
숲은 나의 스승이다, 죽비다, 깨달음이다.
안주하려는 나에게 늘
변화하라,
너 자신을 혁명하라,
잊어라,
삶 자체가,
생명 그 본질이
변혁임을 가르친다. (그림과 글)
맞아요. 나무는 이렇게 우리의 스승이기도 해요!(글을 보고 하는 소리예요. 안타깝게도 눈이 나빠서 그림은 잘 모르겠어요.)

행복한 아침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시간이기를......

나무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 것들을 가만히 불러 봅니다. 나무, 나루, 아우, 누나..... 다 부드럽고 정답습니다. (2010. 6. 5.)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