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이문세와 이승철(윤종신)

귤밭1 2010. 9. 25. 13:38

케이블·위성채널인 엠넷의 <슈퍼스타K2>가 화제다. 연예를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는<< 한겨레>>에서도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글을 두 편이나 읽었으니(여기여기 보세요), 열풍이라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닐 것 같다. 첫 번째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겨서 거기에 소개된 장재인과 김지수가 같이 부르는 <신데렐라> 동영상을 봤더니 참 좋았다. 방송을 직접 봐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저절로 움직였다.

 

어제(24일 금요일) 11시부터 시작한다고 했는데 나는 30분쯤 지나서 텔레비전을 켰다. 그동안 살아남은 8명의 젊은(어린) 가수 지망생들이 이문세의 노래들을 자기 식으로 부르는 게 과제였다. 노래를 잘 몰라서 그런지 허각이나 존박을 빼고는 그리 잘 부르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앤드류 넬슨, 강승윤, 박보람, 김은비는 재능이 없거나-특히 앞의 둘이 그래 보였다- 있더라도 아직은 잘 닦이지 않았다는 게 역력했다(앤드류 넬슨과 박보람이 탈락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강승윤이 박보람보다 훨씬 못했다). 내가 이렇게 야박하게 말하는 것은 글과 동영상이 키운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런 지식도 실력도 기준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기분으로 멋대로 평가하는 내 짧은 안목을 뻔뻔하게 드러내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다. 원곡조차도 모르면서 저들의 노래를 두고 뭐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가 주제 넘은 짓이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심사위원으로 나온 이문세와 이승철, 윤종신이 드러내는 태도의 차이에 대해서다.

 

이 둘-셋인데 이승철과 윤종신은 한 부류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둘'이라고 했다-은 노래를 평가하는 방식에서 확연하게 차이를 보였다. 이문세는 대체로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하고 점수도 후하게 매겼다. 이승철과 윤종신은 냉정했다. 문제나 약점을 많이 지적했다. 호오가 분명해서 점수의 폭도 아주 컸다(이 프로그램의 높은 인기에는 이들의 무자비(?)한 평가가 주는 재미도 한몫했을 거 같다. 보통은 잠자리에 드는 늦은 시간에 내가 졸지 않고 끝까지 본 것은 노래보다는 심사 소감이 궁금해서였다.).

 

나이 차이 때문일까? 내 경험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느슨해진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어서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검색해 봤더니 이문세는 1959년생-나랑 같은 50댄데 왜 저렇게 젊은 거야?-이고, 이승철, 윤종신은 각각 66, 69년생이다. 이승철과는 일곱 살 차이밖에 안 난다. 윤종신과 비교해서도 겨우 10년이니 나이로 그 차이를 돌리는 것은 아무래도 근거가 약할 것 같다. 더구나 69년생인 엄정화가 이문세 비슷한 평가 경향을 보였으니 논리가 안 선다. 그렇다면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가 그 답이 아닐까 싶다. 결국 나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 셈이다.

 

 저 가수 지망생들에게는 어느 평가가 도움이 될까? 나는 이승철 쪽에 서겠다. 덕담은 당장 듣기 좋고 자신감을 심어 주기는 하지만 자신의 문제점을 돌아보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문세나 엄정화의 소감을 덕담이라고만 하면 억울하다는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이승철이나 윤종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했을 뿐이지 고쳐야 할 점을 얘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앞으로도 서로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 문제점을 파악해서 잘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쓴소리가 필요하다.

 

여기까지 쓰면서 갑자기 든 생각. 저런 프로그램에 열광하면서,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닐까? 안됐다고 생각하면서도 탈락자들이 생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거 아닐까? 현실이 엄연히 그런데 내가 딴전을 피우며 엄살을 떨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이게 오늘의, 뜻하지 않은 결론이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