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아, 앙드레 김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귤밭1 2010. 10. 2. 10:48

지난번에 돌아간 앙드레 김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패션쇼에 갔냐고? 그게 아니라 백화점 식당에 밥 먹으러 갔다 역시 그 일로 온 그를 봤다. 우리 자리 건너에 앉았는데 나와 마주 바라보는 격이어서 그를 잘 볼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과 같은 차림이었는데 머리가 많이 빠져선지 머리가 있어야 할 이마에 검은색을 칠했던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렇게 가린 게 추하게 보였다.

 

내게 앙드레 김은 유쾌한 웃음보다는 비웃음 비슷한 것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느릿느릿하게 외국어를 발음하는 듯한 말투에다 우리말로 그 뜻을 드러낼 수 있는데도 외국어를 섞어 쓰는 말버릇-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 실제로 그가 그랬는지 아니면 그를 흉내 내는 이들이 과장한 것인지 잘 구별이 안 된다-부터가 우스꽝스러웠다. 5공 청문회에서 널리 알려진 그의 이름 김봉남도 외국 이름인 앙드레 김과 전혀 안 어울려서 웃음의 그럴듯한 재료가 되었다. 아마 나 혼자만 이렇게 그를 낮춰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갖게 된 데는 의상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롱의 이면에는 선망의 감정도 섞여 있었던 셈이다. 성공한 이에 대한 까닭 모를 반감도 없지 않았을 테고.

 

그가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나는 모른다. 이런 문제로, 이것도 순전히 짐작이기는 하지만, 화제에 오르지 않았던 것을 보면 대범하게 받아들였을 것 같기도 하다. 내 마음이 편하자고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래의 글을 읽고선 내가 그의 처지에 서서 내 웃음이 그에게 안겨 주었을지 모를 슬픔을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솔직한 사람은 세상을 바꾼다. 어떤 이들은 가면을 쓰고 살지만, 도대체 자신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굳이 자신이 누구라 말하지 않아도 세상은 안다. 세상은 아니까 조롱한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기성의 코드에 너무도 맞지 않아서, “안녕하세요~” 인사만 해도 누군지 표시가 난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말이다.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은 두꺼운 화장을 해도 가면을 쓰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 그와 같은 이들은 누군가를 대신해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온몸으로 말한다. 백번 찍어서, 백번 놀려서 넘어가지 않으면 세상은 마침내 존경한다. 그렇게 살아온 그에게 가수 신해철씨가 잊지 못할 조사를 남겼다. “앙드레 김은 개인의 외적 표현과 성적 취향 등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편협하고 잔인했던 시대를 살아가시면서도 온전히 자신의 세계를 펼친 거인이었다.” 그는 세상을 백만번 찍어서 넘어뜨렸다. (신윤동욱, <세상의 조니 위어들을 부탁해>, <<한겨레 21>> 829호, 2010. 10. 4, 80쪽. 전문)

그는 그를 희극의 대상으로 삼는 대중의 조롱과 몰이해를 아파하면서 견뎌 냈는지 모른다.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는 옷차림에서 말투까지 끝까지 변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갔다. 그런 점에서 그야말로 거인이었는지 모른다. 우직한 바보였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까 내가 추하다고 했던 그의 화장이나 꾸밈도 디자이너로서의 실천이었다.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는데 겉밖에 볼 줄 모르는 나는 이상하다고 놀렸던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을 배격했던 유미주의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게으르게 내 처지에서만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했던 나를 저 글은 아프게 자극했다. 저 글로 하여 나는 앙드레 김을 바꿔 보게 됐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멋지게 살았던 사람을 나와 같지 않다고 놀림감으로 삼았던 내가 불쌍하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 설 수 있어야 어른인데 나는 아직도 어린애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