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달인
귤밭1
2011. 2. 12. 13:03
텔레비전에서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방송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것이다. '달인'이라는 말의 뜻 그대로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졌거나,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이기 때문에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주에는 전을 붙이는 가게 주인이 나왔는데 11년 동안 전을 젓가락으로 뒤집다 보니 어느덧 젓가락을 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동전 여러 개를 하나씩 순식간에 뒤집는 식이었다. 심지어 바람이 빠지는 풍선을 공중에 날려도 젓가락으로 잡는 데 성공할 정도였다. 감탄이 연이어서 입이 다물어질 새가 없었다.
이렇게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통달하게 되는 모양이다. 빼어난 기술은 어디까지나 다루는 대상과 일치가 된 결과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몸으로 대상의 성질을 속속들이 파악했기 때문이다. 달인들은 하나같이 도구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린다. 고통의 산물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그 실력에 놀라면서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저런 결과에 이르기까지 들였을 시간과 성의를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이런 달인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개그맨 이윤석이 바로 그다. 이제 17년 차란다. 하기에 따라 통달할 수 있는 시간이겠는데 어떻게 웃길까 고민한 결과로 웃음을 과학적으로 다룬 책을 냈다. 존경스럽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불러일으키는 웃음은 어떨까? 물어 보나 마나 그들은 비정상이다. 상식을 무시한다(그래서 '안 상수'라는 식의 안 웃기는 얘기는 여기를 보세요). 하도 바보스러우니까 어이가 없어서 웃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웃음에는 나는 저렇지 않다는 우월감과 안도, 경멸이 섞여 있다. 그런데 곧, 마냥 웃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들은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웃겨도 되는 희극배우가 아니라 책임이 큰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태에 여느 희극과 달리 유쾌하게 웃지 못하고 정반대로 씁쓸해지거나 섬뜩해지는 것은 저들 때문에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 걱정하면서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내 얘기가 맞다면 웃음의 바탕에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이 경우에도 통하는 것 같다. 다만 그 과정이 보통의 웃음과 정반대의 경로를 보일 뿐이다. 여기까지 쓰다 갑자기 든 생각. 이들이야말로 개그의 달인이다. 이제는 하도 무르익어서 하는 일마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를 웃길 수 있게끔 되었다.
다시 '달인'으로 돌아와서 한마디만 하자. 우리도 달인이 될 수 있는 거 아닐까?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이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와 그리 다를 것 없이 평범하다. 어릴 적부터 무슨 천재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방송을 보면서, 쓸데없이 책 공부에만 매달리지 말고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른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달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곤 한다. 우리 아이들은 지겨운 공부 때문에 달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공부는 하고 싶은 수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어야 한다. 나는, 달인뿐만 아니라 무모하다 싶게 하고 싶은 일 찾아 나서는 이-이를테면 이런 사람-가 몹시 부럽다. 필요한 건 용기와 성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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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이렇게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통달하게 되는 모양이다. 빼어난 기술은 어디까지나 다루는 대상과 일치가 된 결과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몸으로 대상의 성질을 속속들이 파악했기 때문이다. 달인들은 하나같이 도구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린다. 고통의 산물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그 실력에 놀라면서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저런 결과에 이르기까지 들였을 시간과 성의를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이런 달인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개그맨 이윤석이 바로 그다. 이제 17년 차란다. 하기에 따라 통달할 수 있는 시간이겠는데 어떻게 웃길까 고민한 결과로 웃음을 과학적으로 다룬 책을 냈다. 존경스럽다.
그럴듯하다. 희극은 보통 잔치로 끝난다. 고집이나 편견, 즉 비정상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화합한다. 이윤석 식대로 말하면 공포를 조장하던 이가 안전한 존재로 바뀌는 데서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빵 터뜨리는 대신, 왜 웃는지 썼어요”
웃음의 과학, 이윤석 지음/사이언스북스·1만5000원
'박사’ 이윤석의 웃음 교양서
‘잘 웃기고 싶은 고민’ 계기로
독서로 쌓은 과학지식 풀어내
개그맨 혹은 코미디언. 웃기는 일이 생업인 이가 책을 냈다. 웃기는 법을 담은 책? 유머나 화술에 관한 책? 아니다. 사람은 왜 웃는지, 웃음을 관장하는 뇌는 어떤 부위인지, 왜 뭇 동물 중에 사람만이 웃을 줄 아는지, 인간의 웃음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아기의 웃음에 담긴 전략은 무엇인지, 웃음의 과학이 드러내는 구슬들을 간잔지런하게 한 실낱에 꿰어낸 교양서다. 남들 웃기느라 바쁠 코미디언이 이런 책을? 왜? 어쩌다?
“시간이 많아서요. 인기 정상의 코미디언이 아니라 그래요. 이경규, 강호동 형처럼 쉴 틈 없었으면 못 했겠죠. 저는 늘 근근이 한두 프로그램만 하잖아요.”
9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텔레비전 화면의 ‘아저씨스러운’ 이미지보다는 언뜻 대학원생처럼 뵈는, 가늘고 기다란 허우대를 한 그의 대답이다. 17년차 ‘박사 개그맨’ 이윤석(39)씨.
사람들은 어떨 때 웃을까, 어찌 하면 남을 웃길까를 밤낮 고민했을 코미디언으로서 자연스런 질문들이 그로 하여금 과학책들을 뒤적이게 했다고 했다. 뇌과학,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발달심리학을 훑어내리는 그 책들 속에서 그가 만난 건 ‘공포’.
“웃음의 근원에는 공포, 두려움이 있다는 거예요.”
그는 <웃음의 과학>에서 웃음의 기원을 설명하는 ‘거짓경보이론’을 소개한다. 뇌과학자 라마찬드란은 홍적세 인간이 낯선(두려운) 상대를 만났을 때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가 적이 아님을 확인하고 표정을 반쯤 푸는 것을 미소의 기원으로 보았다. 미소가 표정을 풀고 입꼬리를 살며시 끌어올리는 것이라면 그 미소에 연이어 터지는 소리가 웃음이다.
웃음은 한 집단의 구성원이 누군가에게서(혹은 주위 환경에서) 발견한 심상찮은 비정상성이 알고 보니 사소한 것이고 따라서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주위에 알리는 신호로 진화했다는 것. 인류 최초의 웃음은, 자신이 발견했던 비정상성이 거짓 경보임을, 곧 안전한 것임을 깨닫곤 주위 사람들에게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하고 공지하는 신호였던 셈이다. 동물학자 겸 인간행태학자 아이베스펠트도 비슷한 맥락에서 원숭이들이 공동의 적을 집단으로 위협하거나 공격할 때 내는 소리, 곧 집단공격 신호를 웃음의 기원으로 보았다.
“위협적인 존재인 줄 알고 이빨 드러냈다가 아, 아니네 하고 웃는 거예요.”
그가 웃음의 과학 책을 낸 건 ‘과학책 광’이었기에 가능했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의 책을 접하고 뒤통수를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웃음에 관해서는, 대중들이 읽을 만한 한 권짜리 책이 없고 책마다 여기저기 토막토막으로밖에 없을까 하는 거였어요. 책들에서 웃음에 관한 내용들을 모으다가 문득 어느 날 책이 되겠다 싶었죠.”
그가 구입하는 책만도 1주일에 대여섯 권. 덕분에 한 인터넷서점의 ‘브이브이아이피’ 고객이란다. “책을 많이 사서 그런지 항상 선물이 딸려와요. 그 서점에서 이윤석 고객이 저인 줄 알까요? 알아야 할 텐데, 흐흐.”
<웃음의 과학>은 3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남을 공격하는 독설 개그. 김구라, 박명수는 왜 인기가 있을까. 질투가 났어요. 왜 좋아할까. 진화심리학 이론은 친한 사이엔 공격적인 웃음이 가능하다고 했더라고요. 나는 빵빵 터뜨리지 못하는데. 아, 내가 시청자를 먼 친구로 대했구나. 아기의 사랑스런 웃음도 결국 위험(불안)과 안전(안심)의 모순 속에서 터지는 겁니다. 엄마 아빠라는 존재가 아기를 안고 흔들거나 까꿍 하는 행동은 아기에겐 위협적인 행동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 행동을 하는 존재가 안전한 엄마 아빠이니 위협이 아님을 파악하는 순간, 내는 소리가 웃음인 거죠. 그런 일맥상통한 흐름이 재미있지 않나요? 아기는 약자이다 보니까 웃음이 권력이죠. 대부분 아기들이 승리하는 것 같아요.” 오르락내리락 인기에 울고 웃으며 웃음을 업으로 삼아온 코미디언이 책을 낸 까닭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1년 전쯤 원고를 출판사(사이언스북스)에 투고했다. 그 이윤석이 알고 보니 개그맨 이윤석이었다는 게 출판사 쪽 전언이다. “찔러나 보자는 심정이었죠. 진짜 책을 내줄 줄은 몰랐어요. 개그맨이어서가 아니라 내용이 좋아서 내는 것이라던 편집자의 말이 가장 기뻤어요. 하지만 제가 개그맨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낼 수 있었을까요? 개그맨이 되지 않았다면, 복지부동에 칼퇴근하는 공무원, 인터넷에 댓글 무지하게 많이 다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아요.”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원문)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불러일으키는 웃음은 어떨까? 물어 보나 마나 그들은 비정상이다. 상식을 무시한다(그래서 '안 상수'라는 식의 안 웃기는 얘기는 여기를 보세요). 하도 바보스러우니까 어이가 없어서 웃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웃음에는 나는 저렇지 않다는 우월감과 안도, 경멸이 섞여 있다. 그런데 곧, 마냥 웃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들은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웃겨도 되는 희극배우가 아니라 책임이 큰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태에 여느 희극과 달리 유쾌하게 웃지 못하고 정반대로 씁쓸해지거나 섬뜩해지는 것은 저들 때문에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 걱정하면서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내 얘기가 맞다면 웃음의 바탕에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이 경우에도 통하는 것 같다. 다만 그 과정이 보통의 웃음과 정반대의 경로를 보일 뿐이다. 여기까지 쓰다 갑자기 든 생각. 이들이야말로 개그의 달인이다. 이제는 하도 무르익어서 하는 일마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를 웃길 수 있게끔 되었다.
다시 '달인'으로 돌아와서 한마디만 하자. 우리도 달인이 될 수 있는 거 아닐까?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이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와 그리 다를 것 없이 평범하다. 어릴 적부터 무슨 천재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방송을 보면서, 쓸데없이 책 공부에만 매달리지 말고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른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달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곤 한다. 우리 아이들은 지겨운 공부 때문에 달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공부는 하고 싶은 수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어야 한다. 나는, 달인뿐만 아니라 무모하다 싶게 하고 싶은 일 찾아 나서는 이-이를테면 이런 사람-가 몹시 부럽다. 필요한 건 용기와 성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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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