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방학도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에게 방학이란 무엇일까? 조사해 볼 만한 사안이 될 것이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의 경우에 방학이라고 해서 학교에
다닐 때와 크게 다른 것은 없는 것 같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책상에 앉아 문제를 풀며 학원에도 간다. 학교에 안 가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며칠 전부터 학교에서 보충 수업인가를 받고 있으니-안 받아도 된다고 한다- 여기서도 차이가 없어져 버렸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지 모르겠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생에게 방학은 없다. '방학'이란 말은 사전에만 올리고 그
대신에 '여름 학기'나 '중간 학기'로 써야 옳다.
우리말 사전에서 '방학'을 찾아봤더니 "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추위가 심한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그
기간."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다. 비교하기 위해서 영영 사전을 검색했더니 '방학'에 해당하는 'vacation'에는 "학기 사이의
휴일(holidays)"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vacatio'가 그 어원인데 '자유'나 '면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휴일'은 일-학생의 경우에는 학교 공부가 되겠다-이나 일상적인 업무로부터 자유로운 기간이라는 뜻이겠다. 말의 정의로 보면 우리말과 영어가
비슷하다. 그런데 방학을 실제로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을 살펴보면 우리와 서양과는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고등학생 데인은 방학의 정의에 걸맞게 이 기간을 보내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 델타시에 있는 델타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데인 니콜라스 스티븐스(16)는 9월이면 한국의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에 올라간다. 대부분의 캐나다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데인은 아르바이트와 취미활동을 하며 방학을 보내고 있다. 매주 월~목요일 오전 8시에서 오후 6시까지 동네 화원에서 학교친구 케르 커스버트(16)와 함께 일을 하며 시간당 8캐나다달러(약 7200원)를 받는다. 학기 중에도 주말을 이용해 1~2시간씩 일을 해, 지난 1년 동안 3000캐나다달러(약 270만원)정도를 모았다. 데인은 이 돈으로 “대학에 가서 필요한데 쓰거나 자동차를 사고 싶다”고 한다.데인에게는 방학이야말로 학교 공부는 제쳐 놓고, 몸으로 겪는 인생 공부 시간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때가 올까? 이렇게 되려면 도대체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막막해진다. 그리고 학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끌어모으는 데만 신경을 쓰는 서울대의 짧은 눈이 불쌍하게 보인다.
데인은 델타지역 라크로스 팀에서 선수로도 활약하고 있다. 방학 동안 일주일에 4번, 한번에 2시간씩 라크로스 연습에 투자한다. 라크로스는 캐나다에서 인기가 높은 운동인데, 하키와 같은 보호장비를 입고, 뜰채 모양의 나무막대로 공을 주고받아 상대편의 골대에 골을 넣는 경기다. 몸싸움이 격렬해 종종 주먹다짐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토요일 치른 고퀴틀람 지역팀과의 경기는 잦은 주먹다짐으로 도중에 중단됐다. 데인은 나머지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관이나 수영장을 가거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데인은 방학 동안 과연 몇 시간이나 공부할까? 데인은 “공부는 거의 하지 않는다. 방학 동안 공부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캐나다 학생들에게 방학은 말 그대로 방학이다.(전체 기사)
쓰다 보니까, 방학이 되어 빈둥거리는 나를 변호하기 위하여 하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