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멀고 구불구불한 길>
조용필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이 무엇인지 아세요? '골목길'에 대해서 뭐라고 해 놓고, 구불구불한 길과 사랑을 연결시켜 좀 더 얘기하고 싶어서 비틀즈의 노래 제목 'The Long and Winding Road'을 치고 검색해 봤답니다. 그 결과로 나온 것 중의 하나가 첫째 문장의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비틀즈의 '멀고 구불구불한 길'(보통은 '멀고 험한 길'이라고 옮기고 있는데 '험한'보다는 '구불구불한'이나 '굽은'이라고 하는 게 더 많은 뜻을 함축하므로 더 좋은 번역어라고 생각합니다)이라는 거예요(관련 기사). 이 기사를 보자 내가 워낙 좋아하는 비틀즈고 그들 노래 가운데서도 가사는 조금도 따라하지 못하지만 늘 몇 소절을 웅얼거리는 것이라서 역시 조용필은 한국 최고의 가수구나 하고 감탄하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연결은 말 그대로 제멋대로지요. 어떤 가수가 비틀즈의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고 해서 최고라고 하는 평가는 말도 안 되니까요. 그러니 제 마음이 멋대로 움직인 것이라고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노래 가사를 소개할게요. 우리말은 여기 저기 참고해서 직역하는 수준으로 제가 멋대로 옮긴 것입니다.
구불구불한 길은 사랑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마음 졸이기, 망설임, 상대방의 눈치 보기, 싸움이 사랑의 과정에는 어김없이 끼어들기 마련인데 이런 우여곡절을 구불구불한 길처럼 잘 드러내 주는 말도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 한 번 잡는데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는지요! 그러니 사랑은 직선적일 수가 없지요. 직선과 여기에 직결되는 속도와는 사랑이 어울리지 않지요. 이런 점과 관련하여 전에 고독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The long and winding road
that leads to your door
will never disappear
I've seen that road before
It always leads me here
Leads me to your door
The wild and windy night
that the rain washed away
has left a pool of tears
crying for the day
Why leave me standing here
Let me know the way
Many times I've been alone
And many times I've cried
Anyway you'll never know
the many ways I've tried
But still they lead me back
to the long and winding road
You left me standing here
a long, long time ago
Don't leave me waiting here
Lead me to your door
But still they lead me back
to the long and winding road
You left me standing here
a long, long time ago
Don't keep me waiting here
Lead me to your door
당신의 문에 이르는
길고 구불구불한 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야
전에도 본 적이 있는 길이야
언제나 여기로 나를 이끌어
당신의 문으로 나를 이끌어
비가 마구 쏟아지는 성난 밤은
내 눈물로 채운 연못을 남겨
하루 종일 울어
왜 여기 날 세워 두는 거야
길을 알려 줘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당신은 내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는지
모를 거야
아직도
길고 구불구불한 길로 날 이끌어
당신은 오래 전에 날 여기에 세워 두었어
여기서 날 기다리게 하지 말고
당신의 문으로 날 이끌어 줘
아직도
길고 구불구불한 길로 날 이끌어
당신은 오래 전에 날 여기에 세워 두었어
여기서 날 기다리게 하지 말고
당신의 문으로 날 이끌어 줘
교통 수단의 발달은 날이 갈수록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어들게 만든다. 그만큼 혼자 뭘 생각하는 시간이 없어지는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으면 비행기나 기차, 고속버스, 또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바로 갈 수 있는 세상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고 혼자 공상하며 사랑의 성을 쌓고 허무는 과정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고독은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할 것이 되어 버린다. 문명이 상징하는 이 속도에게 고독은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되는 적인 셈이다. (전체 글)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은 세상의 많은 일들이 구불구불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잡지를 봤는데 요즘에 소설을 잘 쓴다고 기대를 모으는 김영하의 얘기도 그랬습니다. 소설과 길을 연결시켜 영화보다 소설이 낫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영화도 같은 말을 5분 이상 참고 보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의 장광설을 들어보세요. 몇 페이지에 걸친 이야기도 사람들은 읽거든요. 문자로 묘사된 즐거움이 크니까요. 오직 글을 다루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작가에게 글쓰기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길을 떠나는 거예요. 인물이나 사건들이 미처 생각지도 않았던 곳까지 도달해요. 내가 경험하거나 생각지도 않았던 곳까지요. 상당한 해방감을 주죠.(Asiana Culture, 2005. 2, 76쪽)뭐, 소설을 여로에 비기는 것은 상식입니다만 그 여로를 정확히 말하면 '구불구불한 길'이지요. 삶이 그러니 그 삶을 담는 그릇이 그래야 할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이에 비하면 영화는 훨씬 직선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속도와 기술로 표상되는 근대 문명의 총아지요. 새로운 과학 기술이 다 동원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아놀드 하우저가 그의 명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마지막에서 영화를 다루면서 "기계적으로 만들어지고 기계적 재생을 목표로 삼은 공업기술적 예술"(<<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개정판), 백낙청, 염무웅 옮김, 1999, 322쪽)이라고 한 것은 그럴 듯한 바가 있습니다. 소설 읽는 것과 비교하면 영화를 보는 조건도 직선적입니다. 짧은 상영 시간도 그렇거니와 영화를 보는 시간에는 관객들에게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불구불한 옆길로 새지 못하게 하는 거지요. 영화 감상문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 내기도 했던 이 소설가의 주장에 저는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타자를 이해하는 능력은 문학을 통해서 확장이 가능해요. 영화요? 제한적이죠.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두 시간 남짓 붙잡혀서 꼼짝도 못하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 인간의 본성과 반하는 일이죠. 아직까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책을 읽는 거예요. 책이 가진 압도적인 기쁨이란 게 있어요. 인터넷이요? 거대한 쇼핑몰 같죠. 아직까지 정말 중요한 정보는 책에 있다고 생각해요. 책의 세계가 좀더 버텨 주었으면 해요. 제가 죽기 전까지는요.(같은 쪽)곧바로 목적지에 닿지 못하는 따분한, 다른 말로 바꿔서 구불구불한 길 속에 참다운 재미가 있다는 말을 믿고 싶습니다. 책의 세계가 우리가 죽은 후에도 굳건히 버텨 주었으면 하면 비원도 품어 봅니다.
젊은이의 사랑도 우리의 삶도 목적지를 바로 가까이 두고서도 다른 데로 에도는 그런 것이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목적을 이루었느냐 하는
것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훨씬 소중하게 여겨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