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순간에 하는 말
사람은 왜 살까요? 가끔씩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 가지로 대답이 나오겠지만 가장 그럴듯한 것은 아마 죽는 시간에 회한 비슷하게 떠올리는 그런 것일 것 같습니다. 거꾸로 가장 흐뭇한 일로 생각나는 것도 유력한 답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죽는 순간에 우리는 어떤 말을 남기게 될까요? 그 대답의 하나를 여기에 옮깁니다. 차분하게 음미할 만합니다.
사람이 사는 가장 높은 가치가 뭡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아요? 여러분들은 뭐라고 생각해요? 전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우애,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제가 젊은 시절에 이런 이치를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뒤늦게 좋은 사람들 다 놓치고 이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건강도 아닌 것 같아요. 건강이 제일이라고 얘기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건강하게 살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은 해야죠.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건강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게 분명해요. 우리 각자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를 상상해보면 그건 확실한 것 같아요. 가끔 저는 내 자신이 죽을 때를 가상해서 뒤에 남은 가족이나 내 자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죽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임종시의 말이라는 건 자기의 인생을 요약하는 것이니까 거기에 위선과 거짓이 끼여들 틈이 없죠.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에게 가장 진실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거란 말이에요. 어떤 이태리 철학자는 무신론자일수록 죽기 직전에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죽은 뒤에는 털어놓고 참회할 데가 없으니까요.들을 만하지 않아요? 정말이지 죽을 때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억울하다는 얘긴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세금 많이 나온다면서 위헌이니 폭탄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들으며 부자들의 돈 욕심이 대단한 것을 실감했습니다. 집을 여러 채 가진 것에 대해서 세금을 아주 높게 매기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인데 올린다고는 하지만 내 생각과는 큰 차이가 나게 낮은 세율인데도 난리였습니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서 뭘 하자는 것일까요? 자기들보다 못사는 사람도 생각할 수 있어야 사람인데 이들에게는 그런 게 없는 것만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위의 글에서 말하듯이 어울려 살아야 사람입니다. 인간(人間)이란 말은 사람들 사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도 죽을 때, 평생 동안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유감스러울 것 같지는 않아요. 또,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출세를 못한 걸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죽을 사람도 없을 거예요. 내가 권세가 많아서 남들을 좀 부려먹지 못하고 가는 게 아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또 평생 좀 건강하고 기운도 세게 지냈더라면 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손이 번창하고, 세상에서 이름도 날리고 …… 이런 게 보통 사람들이 늘 탐하는 것인데 말이죠. 옛날 소설〈옥루몽〉같은 걸 보아도 그런 욕망의 세계에서 우리 조상들도 살았거든요. 이런 욕망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들 속에 뿌리깊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모든 것도 죽는 순간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단 말이에요. 대체로 숨을 거두기 직전에는 누구든, 사람들하고 좀더 잘 지냈으면 좋았을 걸, 누구에게 그렇게 박절하게 하지 않았어야 옳았는데, 그러니 너희들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남들에게 친절하게 해라 등등, 이게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이 생의 마지막 무대에서 내뱉는 공통된 대사입니다. 인간이란 본래 영물이니까 평소에는 등신같이 살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듯해도 속 깊이에서는 알 건 다 알고 있어요. 핵심은 무엇인지 뭐가 진짜인지 알고 있는 거예요. 알고 있으면서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온갖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어서 엉터리 짓 하다가 죽는 순간에는 깨닫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우정입니다. (중략)
예전에 중국에서는 유토피아를 대동(大同)세상이라고 했답니다. 동양에서는 유토피아라는 말을 안 쓰고 대동세상이라고 하죠. 그런데 대동이라는 말이 원래 무슨 말이냐 하면, 동양철학 전공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까, 동(同)자가 본래 상형문자인데, 그게 천막을 쳐놓고 그 밑에서 사람들이 함께 밥 먹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이상사회가 별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밥을 같이 먹는 세상, 즉 한 식구로 사는 세상이라는 얘기죠. 혈연, 지연, 부족, 인종, 종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따위를 따지지 않고 그냥 세상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는 세상 말입니다. (김종철, <흙의 문화를 위하여>, <<녹색평론>> 63호, 2002. 3-4월, 15-7쪽. 여기에 들어가 '지난호'를 누르고 '63호'를 열어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세하여 이름을 널리 떨치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만 길게 보면 위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대통령도 그만두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 장관이면 우리 사회에서 꽤 출세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현재의 장관 이름 몇 사람이나 아는지 손꼽아 보세요. 아마 다섯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할 걸요. 이런 데서 출세의 실상이 과연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먹으면서 식구들끼리 오순도순 살면 그게 가장 멋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봐 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멋지게 사는 데 큰 돈이나 권세가 필요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개인의 행복한 삶은 물론이고 우리 삶의 터전인 이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날처럼 물질적으로 풍요한 생활을 인류 모두가 영위할 수 있으려면 지구만한 것이 몇 개 있어도 모자라니까요. 세계 인구의 53%가 하루 생활비 2달러 이하로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 지나친 풍요로움은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참고로, '세계의 빈부차'에 대해서는 여기를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