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엄마
귤밭1
2005. 11. 30. 08:14
행복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장면을 그리라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나는 엄마 젖을 빠는 아기를 얼른 떠올린다. 전에는 길이나 버스 같은 데서 엄마가 젖을 내 놓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게 되고 말았다. 엄마의 젖을 문 아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반쯤 뜨고 있다. 조그만 손은 가만히 있지 않아서 엄마 젖을 만지거나 저 혼자 장난친다. 이 아기를 자랑스럽게 사랑이 듬뿍 담긴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는 엄마는 어떤가?
타박네는 영준이(타박네의 소생-인용자)로 말미암아 자신의 몸이 숭고하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영준을 보듬고 젖을 물릴 때 모유뿐만 아니라 타박네의 배와 가슴, 몸을 이루는 뼈와 영혼까지도 즙이 되어 영준이의 입 속으로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 젖이 훌쭉해질수록 가슴속이 시원했다. 내어주는 기쁨이 그토록 큰 것일 줄이야. 퉁퉁 불었던 젖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는 과정들이 말할 수 없이 신비하게 느껴지고 몸의 한 기관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자신의 가슴과 자궁을 찬찬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이현수, <<신기생뎐>>, 문학동네, 2005, 230쪽)
아기와 엄마는 한 몸이 되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보인다. 보는 사람도 저절로 흐뭇해져서 아주 중요하고 신비스러운 일에 참여하는 듯한 기분을 갖게 된다. 행복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내어주고도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할 듯하다.
물론 엄마의 사랑에는 이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꼭 얘기해야 한다. 사랑이 지나쳐서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그악스러운 어머니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같은 데서 자리가 비면 바로 앞에 어른이 있는데도 아이를 앉히려고 하는 엄마를 만난다. 자식을 위하여 자기 삶을 희생하는 어머니도 자기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않다. 사랑에는 얼른 보기와는 달리 자기 중심주의가 깃들기가 쉬운 것이다.
사랑에는 사랑을 주는 자가 그것을 받는, 흔히는 자신의 뜻과 어긋나게 받는, 자에게 자신의 뜻을 강제하게 만드는 무슨 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다. 사랑하면서 폭군이 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은 남자가, 그리고 질투를 느끼지 않은 여자가 어디에 있는가? 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너그러운 사랑이나 사회적 이념에서 나온 높은 사랑일지라도, 그렇다. 종교 재판관들은 '마녀 사냥'으로 불쌍한 노파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면서 자신들은 그녀들의 영혼들에 대한 사랑에서 그렇게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인류의 이름으로'나 '인민의 이름으로'와 같은 추상적 '사람'에 대한 사랑을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복거일, <사회적 선택과 개인들의 몫>, <<현실과 지향-한 자유주의자의 시각>>, 문학과지성사, 1990, 359쪽)여러분의 사랑은 어떤가? 혹시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를 때린 적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