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다시, 손으로 뽑는 자장면집 이야기

귤밭1 2006. 1. 20. 10:09

지난번에 한겨레의 기사를 보고 찾아간 중국집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여기를 보세요). 그동안 종종 들러서 이제는 주인 아저씨와 말도 나누게 되었다. 인터넷 세계란 것이 국경을 가볍게 넘어다닌다는 것이 실감되는 것이 그 중국집에 대한 소감을 적은 내 글을 보고,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그 주인 아저씨의 딸이 인사를 보내온 것이다. 거기에는 자기 아버지가 멋진 분이라는 말도 들어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 갔을 때 딸의 이야기를 전하게 되고 주인과 얼굴을 트게 되었던 것이다.

 

어제는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용산역에 내렸다. 집까지 걸어가는데 중국집이 가까워지자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 그 집에 도착한 시간이 8시 반 정도였다. 신문에 난 대로 하면 원칙을 지키는 우리 아저씨가 일을 마칠 시간이었다. 과연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자장면만 된다고 했다. 바라는 바였다. 곱배기를 시켰다.

 

경쾌한 아바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듣고 싶은 것이 있으면 들려 주겠다고 한다. 요새의 시디가 아니고 레코드 판이란다. 오랜만에 듣는 노래라 지금 나오는 것이 좋으니 그냥 듣자고 했다. 우리 주인은 오래된 것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겠다. 한쪽 벽에 놓인 어항에는 물과 고기 대신 오래된 것이 이것저것 많이 쌓여 있다. 전화기, 등산용 버너, 수도 파이프, 딸이 쓰던 삐삐 등이 보인다. 주인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는 삐삐 시절이 좋았다고 얘기한다. 지금의 손전화는 쓸데없이 사람을 바쁘게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렇다. 밥 먹다가도 전화를 받아야 하니 말이다. 여기에다 나는 젋은이들이 함부로 손전화를 써 전화비가 많이 나온다는 것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덧붙인다. 공짜로 전자 편지를 이용할 수 있는데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주인은 스스로 돈을 벌지 않아서 그렇게 헤픈 거라고 대꾸한다. 맞는 말씀이다.

 

오래된 것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앉은, 나무로 된 의자와 식탁도 고물이다.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더니 16년이란다. 그래도 의자가 튼튼하게 보인다고 했더니 여기저기 나무를 대서 기운 흔적을 보여 준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쓸 수 있겠다.

 

신문에서 읽은 내용을 물어 본다. 왜 동업 제의를 받아들여서 돈을 벌지 않느냐고. 대답을 간추리면 이렇다.

 

자기가 중국집을 차린 지 26년째다. 그러니까 처음 시작할 때 자기가 만든 자장면을 먹은 초등학생들이 이제는 아기 아빠, 엄마가 되어 있다. 정말로 가끔씩 옛날의 자장면 맛을 못 잊어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3년이나 5년 만에 여기를 찾아왔는데 이 중국집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느냐?

 

지금도 제의가 들어오는데 받아들일 생각이 없단다. 엄숙해지면서 주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본다. 성인이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세금 공제 받기 위하여 작년말에 가입한 적립식 펀드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한없이 작아진다. 다시 묻는다. 너나 없이 돈, 돈, 돈 하는 세상인데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 불편한 것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10년이 된 차를 모는데 아무 탈 없이 잘 다니고 아무 데나 세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태평스럽게 얘기한다. 무슨 말을 더하랴!

 

집으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가볍다. 콧노래도 나온다. 대학 시절, 제주도에서 올라온 셋이 함께 하숙하면서 한 방에 살았는데 삼등분해서 돈을 모아 샀던 금성 레코드도 정답게 떠오른다. 바로 그 시절에 아바도 들었고 당연히 그들의 판도 있었다. 나는 주로 사이먼 가펑클을 모았고. 오래된 것에 대한 추억이 줄을 잇는 즐거운 밤길이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