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광양에 도착했습니다(2006. 2. 2)

귤밭1 2006. 2. 2. 21:02

광양의 피시방입니다. 12시 좀 지나 순천역에 내려서 중국집에서 볶음밥 먹고 1시쯤에 걷기 시작해서 6시 다 돼서 광양 시청 쪽에 도착했습니다. 한 20킬로미터 정도 걸었을까요. 물론 내 몸은 아무 데도 이상 없습니다. 이제까지 꽤 걸은 셈이니 그래야 마땅하지요. 제발 건방진 말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김에 우스개 말을 하나 덧붙이면, 나는 이제 도보 여행간데요, 뭘!

용산역에서 고속철 타고 익산까지 와서 순천까지 오는 새마을호로 갈아탔습니다. 용산에서 순천까지 네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곡성이나 구례에서는 내리고 싶어 안절부절했습니다. 저 섬진강의 유유한 물결이 날 막 부르는 거 있지요. 철로와 강과 자동차 길이 나란히 멋있게 나 있어서 저기서부터 걸어야 하는 건데 하면서 조금 더 지도를 잘 들여다보고 올걸 하고 후회 많이 했습니다. 강 따라 순천까지 걸어내려왔으면 참 좋았을 뻔했는데 앞으로도 시간이 날 테니까 그때 제대로 걷기로 하겠습니다. 좋은 것은 한꺼번에 안 되는 모양이라고 자위하렵니다.

걷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적당히 햇빛도 비치고 바람도 불었습니다. 물론 제주도에서는 잘 보기 어려운 큰 트럭은 걸을 때마다 처음에는 낯설고 무서웠지만 그것에도 조금 걸으면 무심해지고 맙니다. 이제 이력이 난 거지요. 또 건방진 소리를 하고 말았네요. 자랑하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날 보내면서 우리 집 식구는 추우면 돌아오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좀 오래 걸어 볼 생각입니다. 머리는 낮에 본 강물처럼 한없이 맑아지고 막힌 코 시원하게 잘 뚫리는데 걷지 말아야 될 까닭이 없지요. 거기에다 무엇보다 몸이 가벼워질 텐데요, 뭐. 마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억지로 꿈꾼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요?

저녁 먹으면서 느낀 얘기 하나 하고 마칠게요. 도가니탕하는 집이 보이길래 거기에 들어갔어요. 막연히 관절에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지요. 앞에서 이상이 없다고는 했지만 무릎에 조금 신경이 쓰였거든요. 한 그릇에 9천원 하는 거니까 꽤 비싼 음식인 셈인데 맛은 최악이었습니다. 다진 마늘을 너무 많이 넣었고 국물은 너무 달았습니다. 거기다가 깍두기는 거의 설탕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양념은 손님의 취향대로 먹을 수 있도록 따로 갖다 주면 안 되는 걸까요?

정말이지 단맛에 대한 천박한 취향은 음식의 자연스로운 맛을 아예 못 느끼게 할 정도가 되어 버린 것 같아요. 이번 설에 제주도에서 친구들을 만나 횟집에 갔는데 거기서도 이 단맛에 대한 아주 참담한 경험을 했어요. 오이와 당근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너무 달더라고요. 그래서 왜 이러냐고 물어 봤지요. 어떤 답이 돌아왔는지 아세요? 글쎄, 뉴슈가에 담갔다가 내놨다는 거에요. 이러는데 뭐라고 하겠어요! 다시 가져 오라고 했더니 담그지 않은 오이가 없었는지 여전하더라고요. 더 뭐랄 수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아마 거꾸로 물에 담갔다가 가져왔겠지요?

다 오염된 세상에 깨끗한 음식 먹겠다고 하는 것이 욕심인 줄은 압니다. 그렇지만 달고 맵지 않게 먹을 권리는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몸 비우자고 하면서 먹는 얘기뿐이니 제 수준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어여삐 여겨 주세요.

참, 응원해 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 올릴게요. 낙서 같은 이 글 읽어 주신 분들께도요.

내일은 하동으로 갑니다. 섬진강 자락이니 강물도 볼 수 있을 거예요.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