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편하게 하는 글
<<녹색평론>>과 김규항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내가 속물로 살고 있다는 점을 아프게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그 김규항을 읽었다. 모든 글이 내 가슴을 치는 것이어서 따로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몇 구절은 꼭 읽어 드리고 싶다.
늙는 게 숙명이라는 말은 거짓말이거나 절반만 맞다. 몸이 늙는 건 숙명이지만 정신이 늙는 건 (온갖 요사스런 핑계와 그럴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선택이다. 일흔의 몸에 스물의 정신을 가진 청년이 있고 스물의 몸에 일흔의 정신을 가진 노인이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제 선택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조금씩 하루도 빠짐없이 신념과 용기와 꿈이 있던 자리를 회의와 비굴과 협잡으로 채워 갈 때, 그런 순수한 오염의 과정을 철이 들고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거대하게 담합할 때, 여전히 신념과 용기와 꿈을 좇으며 살아가는 청년들이 있다.(김규항, <세 청년>, <<나는 왜 불온한가>>, 돌베개, 2005, 97-8쪽. 참고로 이 글에서 말하는 세 청년은 지금은 돌아가신 이오덕, 윤구병, 서준식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 주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게 잘 열매 맺도록 도와 주는 겁니다."(<추모>, 132쪽. 이 책의 저자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남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만들"기 위하여 시작한 어린이 교양 월간지 <<고래가 그랬어>> 발간에 대해 이오덕 선생이 당부한 말씀이다.)
"무엇보다 가난해야 한다. 강요된 가난은 죄악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은 바로 예수의 모습이다. 그것에 의심이 없다. 이젠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고 갖지 않는 게 편안하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버틸 수 있다고 믿고 웬만한 건 걱정을 안 한다. 아이들 과외도 못 시키지만 과외를 시키는 게 비정상인 거고 설사 아이들이 대학을 못 가고 가난한 기층 민중으로 살더라도 전혀 걔들한테 불행한게 아니라고 믿는다. 도시 빈민이나 농민 노동자의 삶 속에는 지식인들이나 중산층들의 삶이 가질 수 없는 게 있다."
"당신에게 가난은 자기 절제인가?"
"편안한 거다. 그러나 무작정 편안한 게 아니라, 가난해야만 가난의 가치를 가질 때만 세상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나는 그걸 따라가는 거다. 가난은 이제 내 가치관이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가치관>, 160-1쪽. 세상을 바꾸려면 가치관이 달라져야 하는데 저자가 아는 좌파 인텔리 가운데 그 가치관을 자식에게까지 적용시키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예외적인 인물로 다큐멘터리 감독 김동원을 들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것은 그 김동원의 말이다.)
생각과 행동 사이의 커다란 괴리에서 오는 내 복잡한 마음을 좀 얘기하고 싶은데 핑계와 변명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정신이 번쩍 들 테니 꼭 읽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