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밭1 2006. 9. 14. 10:28

가을이 오면 시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계절에 우리는 농작물을 거두고 나무는 이파리를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가을은,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절로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도록 하지요. 더 높아진 하늘은 무한과 영원을 생각하고 아울러 인간의 유한성을 돌아보도록 합니다.

 

생명을 지닌 존재는 그 어떤 것도 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과 기쁨은 아마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일 것입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우리의 유한성이 기쁨의 원천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먹는 나이에 비례하여 사무치게 다가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은 우리 삶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잘 나오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오래 살아 보지 못한 자의 엉터리 짐작이니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지나치기 바랍니다. 아무튼 우리는 시간 속에서 나고 성장하고 죽습니다.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시간을 좋은 약으로 제시한 적이 있는데, 사족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점을 믿는 일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의 아픔이 그렇듯이 아픔의 강도가 차츰차츰 줄어듭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어떤 경우에는 아예 잊어먹는 수도 있습니다. 애인과 헤어지는 고통을 생각해 봅시다. 그 당시에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아픔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게 인간의 큰 슬픔이기도 합니다. 영원히 함께하자고 약속한 사람들이 헤어지고 나서 다른 사람과 만나 문제 없이 잘 산다는 게 일관성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몹시 슬픈 일 아닌가요! 그렇지만 이 거리와 시간 때문에 인간은 목숨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시간은 고통에 대한 가장 강력한 치료제입니다.(전체 글)

사족이라고 했지만, 이 가을에 슬픔을 겪는 분들에게는 꼭  들려 주고 싶은 말입니다. 내년이면 맞지 못할지도 모르는 이 가을을 즐기거나, 그럴 처지가 아니라면 잘 견디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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