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밭1 2006. 11. 19. 16:12

늦게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하면 12시 가까이 되는 때가 가끔씩 있다. 이번 주에도 그랬다. 역에서 내리면 나는 걸어서 집으로 온다. 찬 바람을 맞으면서 걸으면 머리도 맑아지고 그동안 못한 운동도 하게 되니 여러모로 좋다. 더구나 중간에 효창공원을 가로지르게 되는데 공원치고는 아주 조그만 곳이지만 나무도 있고 해서 제법 걷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밤에는 나무들이 숨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용산역에서 전자상가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다. 지하철의 통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12시가 가까워지면 마치 길가의 화단인 것처럼 양 옆으로 종이집이 늘어선다. 집을 짓는 사람도 있다. 종이집이 뭐냐고? 종이 상자로 엮어서 만든 집이다. 노숙자들이 잠을 자는 곳이다. 물론 집을 짓지 않고 옷이나 침낭 같은 것을 덮고 그냥 자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그 숫자가 많이 줄었다. 추워서 다른 곳으로 간 모양이다. 마침 신문을 보니 덜 추운 남쪽 지방으로 옮기는 이들이 있다고 나와 있다(여기를 보세요). 기사의 제목대로 저들은 철새다. 먹이만 있으면 되는 철새보다 더 불쌍한 처지다.

 

종이집에 들어앉아서 라면 같은 것을 먹는 이도 있는데 나는 얼른 눈을 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추운데 택시를 탈까 하던 내 마음을 바꾸는 정도다. 고작해야, 겨울에 산에 갔을 때 비를 맞고 잠을 자는데 깨 보면 아주 짧은 시간밖에 지나지 않아 아침이 오기까지의 시간이 영원 같았던 기억을 떠올릴 뿐이다. 저들은 날마다 차가운 바닥에서 고픈 배를 움켜잡고 저 영원을 되풀이하고 있을 것이다.

 

왜 저렇게 됐는지 모르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만 저런 이들을 보면 집을 여러 채 가진 게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인 데다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서 집을 산다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택도 공개념을 도입하여 몇 채씩 집을 갖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주장도 해 본다.

 

더 추워지면 저들은 어디로 갈까? 삶은 덧없는 수난인 것만 같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