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에베레스트

귤밭1 2007. 4. 10. 09:52

에베레스트 얘기가 보이면 내 작은 눈이 번쩍 뜨인다. 저 산에 오른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의 어려움과 아울러 인간의 창조성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상에 찌들어 날마다 생각없이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내게는 빛나는 영감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잠시나마 내 처지를 벗어나서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되어 고양된 감정을 맛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상으로라도 저들과 동참하기 위하여 고산 등반기라든지 극 지방 여행기를 많이 모아 놓고 있다. 내 어쭙잖은 걷기 여행에도 이런 마음이 조금은 포함되어 있다. 말하기가 퍽 쑥스럽지만, 내 딴에는 걸으면서 저들의 위대한 발자국을 추체험이라도 해 보자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여기를 보세요).

 

<<한국일보>>를 봤더니 에베레스트에 대한 기사가 나 있다.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의 고산 14봉을 최단시일에 다 오른 기록을 갖고 있는 박영석(여기를 보세요)을 비롯한 한국 등반인들이 이제까지 두 팀밖에 오르지 못한, 에베레스트의 남서벽에 새 길을 뚫어 정상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 어려움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짐작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니 동네 산에서나 노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아무도 가 보지 않은 새 길을 뚫자는 창조적인 태도에는 큰 박수가 저절로 나온다. 부디 성공해서, 한국인의 기상 어쩌고 하는 속좁은 애국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런 경지를 보여 줬으면 한다. 미리 이런 말 하기가 뭣하지만, 혹시 실패하더라도 저 높은 뜻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도전 자체가 빛나는 업적이라고 생각할 일이다!

 

이 지구의 꼭대기에 오른 이들의 여러가지 기록을 여기에 옮긴다. 젊은이들이 읽어서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창조적 기록의 각축장
 


 미국 등반가 리지웨이는 "에베레스트는 상징이요 비유며, 궁극의 목표"라고 했다. 그곳은 단순히 지구에서 제일 높다는 이유만으로 오르려는 게 아니라 산악인으로서 언젠가는 넘어야 될 지존의 용마루라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1953년 초등정된 이래 53년간 무려 3,026명이 그 꼭지점에 올랐다. 지난해 5월에는 한국인 19명을 포함 468명이 불과 보름 사이에 그 반 평의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에베레스트 등정자를 배출한 91개국 중에서 네팔, 미국, 일본, 중국, 영국, 인도, 러시아, 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76명을 기록, 세계 9위의 산악 강국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에베레스트 등정의 이면에는 인간의 끝없는 한계 극복의 의지가 숨어 있다. 영국팀이 전인미답의 최고봉에 올라간 것이 1921년부터 9차례 도전 끝이었으니 32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들이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걸린 기간은 40여일. 이후 장비의 발달과 등반기술이 고도화하면서 매년 등반기간이 단축되었다.

 

1988년에는 프랑스의 마르크 바타르(37)가 22시간 30분을 기록하며 당일 등반 길을 열더니, 2004년 펨바 도르지 셀파(26)는 8시간 10분 만에 정상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에베레스트 등정사는 저산소에 대한 도전사이기도 하다. 인류가 히말라야에 처음 진출한 19세기 말, 산소분압이 평지의 30%도 안되는 8,000m의 고소에 인공산소 없이 노출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죽음의 지대라 일컫는 지구 꼭지점에 1978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33)가 '무산소' 등정을 이루기까지는 그로부터 80여년이 흘러야 했다.

 

에베레스트는 또한 창조적 등반의 시험장이기도 하다. 1980년 폴란드팀이 영하 40도의 혹한과 살인적인 강풍을 뚫고 최초로 겨울철 정상에 올랐고, 1988년 일본팀은 등정 장면을 일본 안방에 생중계하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프랑스의 브와벵(37)은 정상에 오른 후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1990년에는 호주의 가트니 스내프(34)가 '해발 0m에서 8,848m까지'를 성사시키기 위해 인도 벵갈만에서 무려 1,000Km를 걸어 정상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1996년 스웨덴의 고란 크롭(29)은 스톡홀름에서 자전거로 유럽을 횡단하여 장장 12,500km를 달린 끝에 등정에 성공한 후, 다시 자전거로 7개월 만에 스웨덴으로 돌아갔다.

 

2000년에는 슬로베니아의 다보 카르니카(38)가 정상에서 베이스캠프까지 3,510m를 스키로 내려오는데 성공했다. 2001년에는 미국의 시각장애인 바이헨 마이러(32)가 정상에 올라 타임지 표지기사를 장식했다. 같은 해 네팔의 고교생 탬파 트세리(16)가 최연소 등정 기록을 세웠으나 네팔 정부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듬해부터 16세 이하의 등반을 금지시켰다.

 

2006년 아파 셀파가 통산 16회 등정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고, 두 다리에 의족을 한 마크 잉글리스(47)가 정상에 올라 세상 사람들을 무색케 했다. 또한 같은 해 일본의 아라야마 다키오가 70세 7개월 13일의 나이로 정상에 올라 3년 전 유이치로 미우라가 세운 기록을 불과 3일 연장하며 최고령 등정자가 되었다.

 

도대체 에베레스트에서의 진기록 행렬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등반의 본질이 불확실성과 한계에의 도전에 있는 한, 에베레스트라는 화폭에 그려질 창조적 등반은 무궁할 수밖에 없다.

 

남선우: 월간 마운틴 발행인(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 (입력시간 : 2007/04/04 20:02:32 수정시간 : 2007/04/04 22:11:52 기사 원문)

뭐, 저런 데 이름이 안 나온다 해서 크게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우리들 나날의 삶이 바로 산을 오르는 것과 같으므로. 날마다 조금씩 새로워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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