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참 좋은 아침-파격을 보는 즐거움

귤밭1 2005. 8. 27. 11:07

즐거운 아침이다. 개인적으로야 일찍 일어나니 아침을 늘 즐겁게 맞이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도 내 기분을 빨리 전염시키기 위해서 옮긴다.

서울 한성여중 고춘식(58) 교장. 그의 삶의 궤적은 여느 교장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다음달 1일이면 교장 임기를 마치고 다시 교단에 선다. 다른 사립학교에서 평교사로 일하다, 공모를 통해 한성여중 교장으로 채용된 지 4년10개월 만이다. 교장을 정점으로 수직적인 위계질서 문화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학교 풍토에서 거의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중략) 그는 교장 재직 중에도 수업에서 손을 뗀 적이 없다. 일주일에 2시간에서 4시간까지 꾸준히 한문 수업을 해 왔다. 일회적인 특강이 아니라, 다른 교사와 똑같이 진도 나가고, 수행평가·시험문제 내고, 채점하는 일을 나눠 맡아 왔다. '수업하기 싫어서 교감, 교장 승진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학교 문화에서는 '파격'에 가깝다.

 

(중략) 한성여중은 후임 교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값진 '실험'에 성공했다. 재단에서 그에게 후임 교장을 제청하라고 하여, 한 달 남짓 모든 교직원이 수차례 협의와 토론 과정을 거쳐 만장일치로 후임 교장과 교감을 결정했다. 교직원들은 교장 임기도 단임(4년)을 원칙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사실상 '교장 선출보직제'를 실현한 셈이다. 고 교장은 "교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민주 절차를 경험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교장 선출보직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학교를 민주 체제로 바꿀 수 있는 탁월한 아이디어"라고 말했다.(전체 기사)

우리나라에서 교장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자꾸 물을 갈아 줘야 한다(사실은 어느 분야에서든지 통하는 얘기다). 교장을 하다가 다시 평교사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물 갈기의, 우리 사회의 감각으로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실천이다. 그러니 이런 얘기를 듣는 사람의 마음이 즐겁고 기쁘고 놀라지 않으면 이상하다!

 

높은 자리에 오래 있으면 밑에서 일하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이 오래 전에 거쳤으면서도 그렇게 된다. 실감을 주기 위해서 조금 에돌아 군대 시절에 겪은 얘기를 좀 하자. 무슨 무용담은 절대 아니니 군대 문화에 대해서 질색하는 분은 안심하기 바란다.

 

나는 해병대에서 졸병으로 근무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갔으니 나이가 들기도 했거니와 해병대 체질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마음 고생이 심했다. 특히 태권도 유단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연습을 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발도 잘 올라가지 않고 순서에 따라서 동작을 취하는 것은 영 외워지지 않았다. 이 난경을 어떻게 벗어나나 하는 것이 당시의 내 절대절명의 과제였다.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는, 고무 보트를 저어서 육지에 상륙하는 훈련은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연기>를 보세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그냥 견디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아무튼 사단의 비서실에 근무하게 되었다. 우연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느낌으로는 그야말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훈련도 하지 않고 소대 생활도 하지 않게 되니 갑자기 신세가 바뀌어 편하게 되었다. 상사들이 퇴근하면 책도 보게 되었으니 졸병으로서는 아주 큰 호사를 누린 셈이다. 물론 술을 먹으면 이유없이, 그리고 시간을 끌어가며 끈질기게 괴롭히는 고참-나는 이때 이런 인간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하나 있어 떨기도 했지만 군대에서 그 정도야 몸으로 때우면 되는 일이었다. 참 무서운 말이지만, 사람은 이렇게 환경에 적응하여 그럭저럭 살아가게 마련이다.

 

물론 군대니까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서 생각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해병대가 연합하여 상륙 훈련을 하는 즈음의 일이다. 여러분도 이 훈련을 텔레비전으로 본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행사에는 대통령도 온다.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훈련인 모양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군대에서 별이라는 계급은 과장 하나 하지 않고 하늘의 별처럼 높다는 점을 강조해 둬야겠다. 졸병으로서는 가까이서 볼 기회가 거의 없는데 혹시 기회가 되어 앞에 서게 되면 떨려서 감히 마주할 수가 없을 정도다. 대통령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비서실에서는 의전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러니 졸병들은 며칠 동안 잠을 잘 수가 없다. 훈련 하루 정도를 앞두고서는 해병대의 높은 사람들은 거의 다 사단 비서실로 모여 든다. 당연하게 심부름은 우리 차지다. 우리라고 해 봐야 비서실 졸병 넷, 민간인 여성 군무원 하나다. 차도 내야 하고 여기저기 연락도 하고 글씨도 보기 좋게 써야 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뭐가 힘든가 할 것이다. 할 얘기가 조금 더 남았으므로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다. 군대에서 밥은 아무 때나 먹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이 있어서 그 때가 지나면 굶어야 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심부름을 하다 보면 그 중요한 끼니를 거르게 된다. 특히 저녁에 그렇다. 그런데 높은 분들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우리 비서실에서 시켜 먹는다. 아무도 우리에게 같이 먹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 못할 것도 없다. 먹은 줄로 알고 그랬을 것이다. 높은 분이 졸병의 사정을 어찌 알겠는가! 나는 이때부터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감을 키워 온 것만 같다. 이것으로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밥을 먹었으니 이제 커피를 가져오라고 한다. 군무원은 퇴근하고 없다. 뭐, 군무원이 있을 때도 커피 심부름이야 했으니 이상할 것은 없으나 문제는 물이다. 군대에서는 수도물도 시간이 지나면 끊어지고 만다. 늘 미리 준비해 놓기는 하지만 커피를 요구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잔을 씻을 깨끗한 물도 남지 않게 된다. 군대에서 못하겠다는 소리는 금기어다. 커피를 대령해야 하는데 어떻게 했을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이면 당하는 쪽에 있는 이들도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는 점만 암시해 두기로 한다. 아니, 잔을 씻은 물에 다른 잔을 다시 씻는다고 해서 그리 욕먹을 짓을 한 것은 아닐 테니 아예 얘기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

 

아직도 다 끝나지 않았다. 두 끼 정도 먹지 못한 배고픔이야 참으면 되며 커피는 내가 마시지 않는 것이니 그냥 넘긴다 치고 정말 심각한 것은 잠을 못 자는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그 하늘같이 높은 별이 뭐를 쓰라고 시키는데도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한 획을 다 마치지 못한 채로 꾸뻑꾸뻑 졸게 된다.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 무서운 고문이라는 점을 직접 겪어 보지 못했지만 미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고문을 이겨낸 김근태를 존경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마침 리영희가 이에 대해 말한 것이 있어 여기 옮긴다. 언제가 수업 시간에 거의 꼭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전폭적인 공감을 가지고 읽은 것이다.

나는 나보다 몇 십 배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 몇 번이고 까무러치는 상태에서, 고문한 그 조사관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기억하고, 그 날짜와 시간까지 대충 재생해서 훗날 그들에 대한 법적 징계를 가능케 했던, 서울대 학생 김근태의 초인간적 능력에 오직 감탄할 뿐이에요. 그 고문을 당해본 사람만이 알지만, 생명이 들고 나고 하는 극한 상황에서 김근태같이 적의 정체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은 초인간적이라.(리영희, 임헌영(대담), <<대화>>, 한길사, 2005, 476쪽)
잠 며칠 못 잔 것을 두고 이러니 혹독한 고문을 당한 김근태와 비교하면 엄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와 처지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얘기하기 위해서 말을 꺼낸 것인데 좀 엉뚱한 곳에 이르고 말았다. 아무튼 모든 분야가 민주화되어서 눈 높이를 맞추는 일이 쉽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서 이리 된 것이라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었으면 좋겠다. 내 열없음을 눙칠 겸하여 구호 두 개 외쳐 볼까 한다. "교장 선출보직제 당장 실시하라!" "졸병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