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쯤 나는 우리 한글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며칠 지나면 한글날이니 다시 읽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저께는 한글날이었다. 기념일이기는 했으나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아서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렸다. 내게만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한겨레 21>>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감동했다고 해야 맞겠다. 먼저 읽고 나서 얘기를 계속하자.
유네스코는 올해 ‘세종대왕상’ 수상자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템발레투 교육센터’와 비정부기구(NGO)인 ‘CIRAC’(International Reflect Circle)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한글날인 10월9일에 열린다. 지난 1990년부터 실시해온 세종대왕상은 지구상에서 문맹퇴치에 공을 세운 인물이나 기관, 단체에 수여한다. 이 행사는 문맹퇴치를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업적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제기구인 유네스코에서 ‘한글날’을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데 반해 정작 한국에서는 한글 격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외국 학자들까지 못마땅해하고 있다. 국경일이었던 ‘한글날’이 기념일로 추락하고 이제는 일부에서 영어 공용화까지 들먹이고 있다. (원문)누구나 아는 국제연합의 기관에서 한글날을 그야말로 지구적인 차원에서 기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의미가 깊은 중요한 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았다. 한국어학을 전공하는 선생에게 들은 얘긴데 미국의 어느 대학 교수는 한글날에 자기 집에서 잔치를 연다고 했다. 이렇게 뛰어난 글자를 만든 날을 그냥 보낼 수 없는 뜻에서란다. 우리 현실을 놓고 보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말한 대로 기쁘고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로 우리 현실에 생각이 이르면 어쩔 수 없이 참담한 심정이 된다.
나는 오늘 두 통의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필요한 부분만 옮겨 보겠다.
먼저, 나에게 편지를 내거나 글을 보일 때 '^&^**'와 같은 부호는 쓰지 말기 바랍니다. 한국어와 한국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우리말 부호에도 없는 것을 이렇게 함부로 쓸 수 있는 것인지 참 이상합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단락을 제대로 나누기 바랍니다. 단락이 끝나기 전에 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글을 지을 때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어제는 한글날이었습니다. 참고로 아래 그 주소가 나와 있는 우리 집 곳곳에서 우리말에 대한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우리말에 대한 결벽증에 가까운 내 태도를 아는 분들은 내가 이 글을 올리기 위해 이런 편지를 썼다고 여기지 않으리라 믿는다. 눈에 거슬리는 예를 볼 때마다 하는 일이어서 직접 겪은 이들도 꽤 있을 것이다.*******
다음부터 내게 편지를 쓸 때는 내가 지금 하는 것처럼 단락을 제대로 나누고, 이상한 부호를 쓰지 않도록 하기 바랍니다.
대학생이, 그것도 한국어나 한국 문학 분야를 전공하거나 관련 강의를 듣는 사람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우리말을 대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더할 것이다. 외국 선수들과 하는 경기 관람 등에서 나타나는바 저 맹목적인 애국심이 왜 한글에 대해서는 조금도 발휘되지 않는 것인지 참 궁금하다. 우리말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이러니 한글날을 보통의 날처럼 만들어 버린 정부 당국자를 욕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말을 학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현실과 동떨어지는 진단이라고 자신있게 반박할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얼마든지 우리말로 해도 되는 것을 외국어로 쓰는 데 익숙하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우리말이 낯설어지기까지 한다. 오늘(2003년 10월 11일) <<한겨레>의 사설을 읽다가 보통 '로고'라고 하는 것을 '글자상징'이라 한 것을 읽으며 그런 기분을 느꼈다(안타까워라! 종이 신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인터넷에는 '상징 로고'(원문)로 적혀 있다. 이런 갈등이야말로 외국어가 우리말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시적인 유행이라 학교 교육만 제대로 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청소년들의 통신 언어나 '외계어'도 우리말을 파괴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앞에서 문제 삼은 이상한 부호도 이들 언어의 영향이 미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국보 1호는 한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1호라는 말은, 이렇게 순서를 매기는 것이 국보를 분류하는 데 실제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내게 으뜸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독창성과 합리적인 정신이 한글에서만큼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대문이 어째서 나라의 보물이 되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라 신빙성이 없는 얘기가 되겠지만 이만한 건물은 외국의 어디서라도 볼 수 있을 것 같기만 하다. 몇 나라를 돌아다녀 본 짧은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1호 여부가 대단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글을 보물처럼 아껴야 한다는 점이다. 훌륭한 글자 체계면 뭐하겠는가! 고이 모셔 두기만 하고 써 먹지 않으면 단순한 유물일 뿐이다. 갈고 닦아서 번쩍번쩍 빛이 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말이 뛰어나다면 그것을 쓰는 사람이 잘 가꾸었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엄격한 태도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맥락과도 관계가 있다.
우리 모두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만 하겠다.
안타까움이 2년이 흐른 오늘에는 더 커졌다. 이를테면, 구직자들이 취직하기 위하여 내는 자기 소개서에 우리말에 없는 기호와 말을 쓰고 있단다.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들 가운데 반 이상이 그런 소개서는 감점시킨다고 하니 그래도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좋은 소식도 없지 않다(관련 기사 1, 2). 우리말이 천대받으면서도 그래도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이런 이들의 노력도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 고마운 이들이다.채팅어 남발 자기소개서 ‘퇴짜’- 인사담당 59% “감점요인”
“안녕하세여~ ○○○임니당. 꼭 뽑아주세염. ㅋㅋㅋㅋ”
구직자들이 자기소개서에 쓰는 ‘발랄한’ 채팅용어 등은 감점요인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6일 취업포털 커리어(career.co.kr)가 기업 인사담당자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2%가 비표준어나 채팅용어 등을 쓴 자기소개서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띄어쓰기나 오타 등 ‘맞춤법 오류’(80.4%)와 ‘채팅용어 등 비표준어 사용’(71.7%)을 지적한 이들이 많았다. 가장 많이 발견된 비표준어로는 42.9%가 채팅용어를 꼽았고, 이어 외래어(26.2%), 이모티콘(21.4%), 비속어(7.1%,) 등의 차례로 조사됐다. 맞춤법 오류 사례로는 ‘했읍니다’(했습니다), ‘높힐 수 있다’(높일 수 있다), ‘지양해야’(지향해야), ‘열심이’(열심히) 등이 꼽혔다. 또 ‘안녕하세여~', ‘임니당’, ‘했슴돠’, ‘뽑아주세염’, ‘ㅋㅋㅋㅋ’, ‘ㅎㅎㅎㅎ’, ‘즐~’, ‘ㅜㅜ’, ‘^^;;’, ‘*^^*’ 등 채팅 용어나 이모티콘도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이런 비표준어 사용은 입사에 감점요인이 되고 있다. 절반이 넘는 인사담당자(58.7%)가 ‘채용에 감점요인이 된다’(41.3%)거나 ‘아예 탈락시킨다’(17.4%)고 답했다.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답은 6.5%에 그쳤다.
한 인사담당자는 “요즘 구직자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한글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며 “맞춤법 오류는 물론 채팅용어를 너무 심하게 쓰는 것도 불합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커리어 관계자는 “최근 입사지원서에 인사담당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채팅용어나 이모티콘, 외래어 등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지원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며 “감점이나 탈락 요인이 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기사 출처)
구호 몇 가지 외쳐 보겠다. "한글을 국보 제1호로!" "한글날을 국경일로!" "우리말 바로 쓰자!"
(참고 자료)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문자는? 1998년부터 2002년 말까지 유네스코는 말뿐인 언어 2900여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연구를 했는데, 여기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문자는? 유네스코가 문맹퇴치 기여자에게 주는 상의 이름은 어떤 문자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나? 지구상 100여개의 문자 가운데 제작자 그리고 제작 원리와 이념이 정리되어 있는 유일한 문자는?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문자는? 일본의 오사카시는 엑스포 기념 세계민족박물관을 지어 세계의 문자를 전시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문자는? 언어학 연구에서 세계 최고라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학대학이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실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 결과 1등을 차지한 문자는?
컴퓨터 자판에서 모음은 오른손으로, 자음은 왼손으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문자는? 이동전화의 한정된 자판을 가장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 디지털시대의 총아로 떠오를 문자는? 발음기관의 움직임과 작용, 음성학적 특질을 본떠 만들었으며, 음양오행의 철학적 원리와 하늘·땅·사람의 존재론적 구조를 담고 있는 문자는?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평가했고, 〈알파베타〉의 저자 존 맨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말한 문자는? 언어학자 라이샤워 교수가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제”라고, 시카고대학의 매콜리 교수는 “10월9일이면 꼭 한국 음식을 먹으며 지낸다”며 존경심을 털어놓은 문자는? 영국 리스대학교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기본글자에 획을 더해 동일 계열의 글자(ㄱ, ㄲ, ㅋ)를 만든 독창성은 어떤 문자에서도 볼 수 없다고 칭송한 문자는? 그런데,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그 귀함과 고마움을 잘 모르는 문자는?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원문)
<덧붙임>
어제(2002. 2. 22) 한겨레에서 본 기사입니다. 유네스코가 보고한 바에 의하면 지구촌 언어의 절반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답니다. 기사의 앞 부분을 인용합니다.
전세계 6천여 가지 언어 가운데 절반이 멸종될 위기에 놓였다고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21일 밝혔다. 유네스코는 이날 제3회 `세계 모국어의 날'을 맞아 발표한 90쪽 분량의 `세계 멸종위기 언어지도' 보고서에서 “각국의 강압적 언어정책과 유력언어 사용의 확산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언어가 적어도 3천개에 이른다”며 “언어가 사라지면 그것을 통해 표현가능한 인간의 사고와 지식을 잃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체 기사)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먼 곳의 얘기처럼 들리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영어 열풍을 떠올리면 됩니다. 영어를 공용화하자고 주장하고 나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설가인데 우리말을 다루는 사람이 그래서 우리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그럴 만해서 영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더 나아가서 영어를 우리말처럼 쓰자는 것이겠지요.
왜 언어가 사라지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체 기사를 읽으면 그런 점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우리의 경우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했던 일제의 식민지 시기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부는 영어 열풍은 영어를 쓰는 나라들 그 가운데서 특히 미국의 힘이 막강하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말의 장래도 장담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네스코 보고서에서도 말했듯이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지식과 사고의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지구촌의 언어가 몇 개로 통일된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한 기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언어를 쓰는 사람이 다양하기 때문에 사고의 다양성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러 개의 언어가 존재할 때와 비교하면 그 다양성의 양과 질 모두에서 절대적인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실제로 경험한바 미국 대통령의 깡패스러움도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힘의 향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어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안타까움과 위기를 느끼는 것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다운 세계화란 지구 전체적인 차원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른 개성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화는 이와는 정반대로 세계가 미국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지금 미국은 우리가 어렸을 때 전쟁영화를 보면서 했듯이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을 나누어 놓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악의 편이라고 위협해 대고 있습니다. 이런 도식에서 다양성은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요컨대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나쁜 세계화로 나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것입니다.
문학의 경우에 언어의 소멸은 더 심각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문학의 언어는 함축의 언어입니다. 어떤 말이 불러일으키는 주관적인 의미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문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심상이라든가 상징, 비유 같은 것은 모두 함축적인 의미를 구체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의 종류가 줄어든다면 각각의 언어가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어떤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시의 어떤 구절이 우리를 끌어들인다면 거기에 우리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란 말이 강력한 울림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겪은 어머니의 존재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어머니라고 해도 영어로 하는 어머니는 우리말이 주는 울림을 절대로 갖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배웠느냐 하는 것은 시의 언어에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집니다. 좋은 시를 고르는 방법 가운데서 추천할 만한 것은 쉬운 말을 얼마나 잘 쓰고 있느냐를 살피는 것입니다. 쉬운 말이란 어려서 배운 것이고 따라서 그 말 속에는 우리의 온갖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영어를 공용화하자는 것은 도대체 당치도 않은 발상입니다.
구조주의 언어 이론이란 게 있습니다. 언어에 의해서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 골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눈이 있어 눈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게 아니고 눈이라는 말이 있어 눈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면이 있습니다. 풀 이름을 모르면 풀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런 설명에 따르면 어떤 언어를 잃어 버린다는 것은 그 언어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무시무시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말을 아껴야 합니다. 우리말이어서가 아니라 세계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참다운 세계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 쓸 수 있는 것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영어로 쓴다거나 하는 일은 지금까지의 얘기를 따른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외국어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사실은 다양성을 경험하기 위해서도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외국어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럴 경우에도 우리말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지구촌 언어의 절반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황급히 쓴 글입니다. 우리말을 아끼고 가꾸는 일을 의식적으로 실천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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