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오늘을 즐겨라

귤밭1 2006. 7. 14. 13:09

목포대학교 영재교육원에서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논리적인 생각과 글 쓰기를 주제로 해서 하루에 한시간 반씩 이틀을 강의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러 얘기가 오간 끝에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전화를 받으면서도 마치고 나서도 막연했다. 무엇보다도 수강생이 내게는 몹시 낯설다. 대학생이거나 그 비슷한 수준이면 좀 어려운 얘기-사실은 아는 것이 없지만-를 해도 되지만 이 어린 학생들 앞에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어서 괜히 받아들였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날은 생각하는 법-얼른 떠오르는 것으로 삐딱하게 굴기(권위나 관습, 상식을 문제 삼기),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다른 사람의 처지에 서기), 대상을 한 측면만으로 판단하지 말기(복잡성을 존중하기), 획일주의에서 벗어나기(가치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등-을 알기 쉽게 예를 들어 가며 설명하고, 그 다음날은 첫날 수업에서 과제로 내 준 글을 돌려가면서 읽고 첫날에 한 얘기와 연결하여 고치기로 했다. 물론 이날은 문법 얘기도 곁들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고 그 다음 차례로 강의 준비에 쓸 수 있는 책 몇 권을 눈에 띄는 대로 골라 봤다. 이오덕의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보리, 1993), 탁석산,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책세상, 2001), 페르난도 사바테르, 안성찬 옮김,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윤리학>>(웅진닷컴, 2005), 스티븐 로, 하상용 옮김, <<철학학교>>(창비, 2004)가 그 목록이다. 목차를 살폈더니 이들을 잘 소화해서 쉽게 풀면 그럭저럭 맡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이야기가 좀 길어져 버렸다. 내가 하고자 한 것은 위의 책을 넘기다가 읽은 부분이 평소의 내 다짐과 같은 내용이어서 여러분께 들려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읽어 보겠다.

"해가 갈수록 우리의 손에서 빠져 나가는 삶의 기쁨과 향락을 이빨과 손톱으로 붙잡아라."

 

몽테뉴의 이 금언에서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 하나는 세월이 우리에게 즐거움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빼앗아 가기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결정을 미루고 즐거움의 가능성을 미뤄 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망설이면 결국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 사람은 오늘의 즐거움을 누리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로마인들은(그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시인 선생님도) 이것을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라는 금언으로 요약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모든 즐거움을 오늘 찾으라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즐거움을 모두 찾으라는 것이다.

 

오늘의 즐거움을 망쳐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매순간 모든 것을 얻으려 하고 수많은 불가능한 만족을 한꺼번에 누리려고 하는 것이다. 부적절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한순간에 억지로 매달려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지 말고, 주어진 모든 것에서 가장 작은 즐거움을 얻으려고 노력해라. 지금 이 지라에 없는 햄버거를 얻기 위해 눈앞의 달걀부침을 식게 내버려두지 말고, 케첩이 없다고 손에 든 햄버거를 내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네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달걀이나 햄버거, 소스가 아니라 네 주위 어디에나 널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바란다.(페르난도 사바테르, 안성찬 옮김,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윤리학>>, 웅진닷컴, 2005, 153-4쪽)

나는 이런 이야기도 '즐겁게 많이 놀아야 한다'는 것과 함께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다. 이런 게 글쓰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누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간절하게 바라서 해야 참다운 주체성에 이를 수 있고 이래야 좋은 글도 나온다. 글은 멋진 삶을 추구하는 윤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르면 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율성과는 거리가 있는 환경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이 이런 얘기에 진정으로 공감할지도 문제-그래도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을 일이다-거니와 무엇보다도 이런 내용을 전해 들은 우리 학부모들의 반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공부하라고 보내 놓았더니 아이들 망친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뭐든지 즐겁게 자율적으로 해야 진짜 공부가 되며, 10년 후에 멋진 요리를 먹고자 눈앞의 달걀부침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고집스레 주장하련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책 속으로 난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오는 날 마루에 앉아서  (0) 2006.07.28
보기에 따라서  (0) 2006.07.21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0) 2006.07.10
여행 이야기  (0) 2006.07.02
걸으면  (0) 2006.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