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라는 소설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외아들을 잃었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에서
그 아픔이 얼마나 클지 조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작가는 스스로의 노력과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홀로 설 수 있게 된다.
마음을 열고 눈을 크게 떠야 한다. 그러면 나보다 더 못한 사정에 있는 사람도 보이고 자신의 것만을 과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의 마음도 생기게 된다. '내가 뭐관데'라든지 '나도 얼마든지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고통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고 감싸 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고통은 치유하거나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그런 것인지 모른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역설적인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의 홀로 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중략) 나만이 알고 느끼는 크나큰 도움이 또 있다.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없다면 내가 설사 홀로 섰다고 해도 그건 허세에 불과했을 것이다.(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한 말씀만 하소서>>, 솔, 1994, 106쪽)삶이 외롭고 무슨 전망이 안 보일 때 가까운 사람과 따뜻하게 어울린 추억이 큰 힘이 된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이 마련해 준 뜻하지 않은 깨달음도 은총처럼 이 작가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슬픔을 견딜 수 없어 수녀원에서 잠시 지낼 때였다.
그 중 어린 수녀님이 속세의 친구에게 하는 소리가 문득 내 관심을 끌었다.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얘기였다. 남동생이 어찌나 고약하게 구는지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왜 하필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비관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 되란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뭐관데....'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호전이 되더라고 했다.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고통을 겪는 사람은 그 아픔을 정도 이상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조금 냉소적으로 표현한다면 고통을 과장하고 그것을 은근히 즐기기까지 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 고통스러운 사람은 대체로 마음의 문을 닫는다. 아예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자기의 것만 크게 보이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사정이 눈에 들어올 수 없다.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 되나?'는 간발의 차이 같지만 실은 사고의 대전환이 아닌가. 나는 신선한 놀라움으로 그 예비 수녀님을 다시 바라보았다. (중략) 내가 만약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을까?"라는 집요한 질문과 원한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로 고쳐먹을 수만 있다면. 구원의 실마리가 거기 있을 것 같았다.(위의 책, 79-80쪽)
마음을 열고 눈을 크게 떠야 한다. 그러면 나보다 더 못한 사정에 있는 사람도 보이고 자신의 것만을 과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의 마음도 생기게 된다. '내가 뭐관데'라든지 '나도 얼마든지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고통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고 감싸 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고통은 치유하거나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그런 것인지 모른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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