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다시 읽은 <<데미안>>

귤밭1 2004. 11. 12. 01:57

 

평소에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합리성에 기초하여 생각하고 행위하는 근대적인 개인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글 쓰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 주체적인 개인을 형성하는 일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근대소설에서도 이런 점을 살펴보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로서 염상섭의 <<만세전>>에서 근대적인 주체의 면모를 검토한 바 있고, 이광수의 초기 소설에서 근대적인 개인이 어떻게 상상되고 형상화되는지 하는 점을 추적할 예정이다. 이들 작품에서 나타난 근대적 자아를 해명하기 위해서 서구에서 나온 성장소설과 비교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시 읽으려고 고른 것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1919)이다.

널리 알려진 작품이어서 자세한 소개는 필요하지 않을 듯싶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제인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헤르만 헤세, 전영애 옮김, <<데미안>>, 민음사, 2000, 172쪽)에 대해서 우리 한국의 청소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무척 궁금하다. 읽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쉽게 접근할 수 있기는 하지만 마음 밑바닥에서 오는 전율 같은 것은 못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관념적인 주장을 많이 드러내고 있어서 소설적으로 빼어난 성취를 보이지 못한 점이 감동의 정도를 낮출 가능성이 높다. 또 우리 청소년들이 처한 환경 자체가 이 소설이 다루는 문제에 실감을 갖는 것을 방해할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에게 참다운 자기를 골똘히 그려 보고 실행할 공간은 전혀 없다고 해도 그렇게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할 전공 영역을 정하는 일을 그 예로 들면 될 것이다. 사실은 정상적인 사회라면 대학에 들어가는 일도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당연히 가는 게 아니라 당사자의 주체적인 고뇌와 결단이 동반되어야 마땅하다. 당사자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일인데 어떻게 남이 가니까 덩달아서 따라가야 되는 것인지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눈치 작전으로 경쟁률의 높낮이에 따라 전공할 영역이 수시로 바뀌는 것에 이르면 우리 교육 현장이야말로 가장 비교육적인 전시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처지에서 '자기의 운명을 살아야 한다'는 <<데미안>>의 세계는 그저 남의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데미안>>에서 말하는 자기 세계란 무엇일까? 이 작품에서 세계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밝고 올바른 곳과 이와는 반대로 어둡고 금지된 세계이다. 당연히 주인공 싱클레어는 가정으로 대표되는 밝은 세계에서 탈출하여 어두운 세계로 진입한다. 물론 주인공에게 어둠 자체가 추구하는 목표는 아니다. 두 세계를 아우르는 전체성이 이상을 이룬다. 그 이상적인 인물로 설정된 인물이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데미안이다. 주인공에 의하여 데미안은 모습은 다음과 같이 그려지는데 이것이야말로 주인공의 이상으로 설정한 자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데미안은 저런 모습이었다. 지금 이 사람 같은, 저렇게 돌 같은, 태고처럼 늙은, 동물 같은, 돌 같은, 아름답고 찬, 죽었는데 남 모르게 전대미문의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다.(89쪽)
한 사람 안에 사람과 동물, 죽음과 삶이 아름답게 어울려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접한 사람이라면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을, 데미안이 주인공에게 전해 준, 자아 정립의 결의와 어려움을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나오는 신의 모습에도 양극단을 통합하는 전체성이 나타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123쪽)
여기서 압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의 이름"(125쪽)이다. 따라서 싱클레어는 "양극단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128쪽)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전체성은 보편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쉽게 말하면 양극단을 통합한 자아가 보통의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성질을 공유하는 개성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컨대 보편성의 개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참고로, 성장소설의 일반적인 도식인, 탕아의 가출에 이은 귀향이 가능한 것도 이 보편성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탕아가 보편적인 성질을 지닌 상태로 성장했기 때문에 사회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개성의 경계를 늘 너무나도 좁게 긋고 있어! 우리는 늘,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상이하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하나하나가 말이야. 그리고 우리 몸이 진화의 계보를,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훨씬 더 멀리까지,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일찍 인간 영혼들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을 지니고 있지. 그리이스인들이나 중국인들에게서든 아프리카 토인에게서든 일찍이 존재했던 모든 신과 악마, 모두가 우리들 속에 함께 있어. 거기 있는 거야.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142쪽)
한 인간의 개성 속에 이른바 전우주적인 차원의 모든 존재가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고 일생 동안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보편성의 세계는 고여 있어서는 안 된다. 주인공이 한때 스승으로 여겼던 피스토리우스에게 환멸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안주 때문이었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패기를 갖지 못한 것이다.

그(피스토리우스)는 너무도 편안하게 이미 존재하는 것 속에 머물렀다. 그는 너무도 정확하게 예전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집트에 대해, 인도에 대해, 미트라스에 대해, 압락사스에 대해 너무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사랑은 이미 지구가 보았던 형상들에 매어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것은 새롭고도 달라야 한다는 것, 새 땅에서 솟아야지 수집되거나 도서관에서 길어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171쪽)
그러므로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171쪽)만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된다. 이 과제를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스스로에 대한 존경을 간직하는 법"(147쪽)을 익혀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보편성을 추구하는 노력,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연대라든지 공동체를 마련하는 것은 헛된 일이 되고 만다. 두려움에서 나오는 패거리 짓기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데미안의 발언은 우리의 망국적인 병폐인 지역주의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대란" 데미안이 말했다. "멋진 일이지. 그러나 지금 도처에 만발해 있는 것은 전혀 연대가 아니야.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것이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 두렵기 때문이야. (중략)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182쪽)
앞에서 말한 대로 결국 참다운 의미의 주체적인 개인의 부재가 이런 불합리한 패거리주의를 만들어 내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다양하면서도 조화롭게 공존하지 못하고 서열화되는 것은 개성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공부를 잘하면 적성이나 능력, 소신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다 법대나 의대로 가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본인이 안 그런다면 주위에서 강제로 그렇게 하라고 한다. 천박한 유행을 따르고 외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일도 내면을 갖추지 못한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데미안>>은 그 문학적 성취가 그렇게 뛰어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자기 세계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또 이런 과제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된다는 점에서 다시 꼼꼼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고뇌로 괴로움과 절망에 빠진 동료에게 주인공이 하는 말을 덧붙이기로 하자.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있는 게 없구나, 크나우어. 사람들은 그런 일에서는 서로 도울 수가 없단다. 나를 도와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네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애써야 해. 그러고는 정말로 네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 그거 하면 돼.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네가 네 자신을 찾아낼 수 없으면, 다른 영(靈)들도 찾아낼 수 없다고 생각해."(157-8쪽)
우리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얘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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