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기차를 두 번이나 타게 되는 것은 내게는 큰 은총입니다. 한번 타면 목적지까지 4, 5시간이 걸리니까 꽤 긴 시간을 기차에서 보내는
것입니다. 철마다 달라지는 들판과 산을 바라보다가 심심하면 책을 읽고 졸리면 한숨 자고, 어느 하나 뺄 수 없이 좋은
일입니다.
기차에서 읽은 소설에 기억해 둘 만한 구절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는 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습니다.
젊었을 때 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 것도 다 그렇겠습니다만 잘 되지 않는 일이 독서입니다. 읽은 것을 잘 기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눈이 침침해져서 오래 책과 마주할 수도 없습니다. 독서는 죽을 때까지 밥 먹는 일처럼 해야 할 테지만 그래도 젊었을 때 많이 해 두어야 합니다.
마침 책 읽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책들 많이 읽어서 그 독후감을 우리 집에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책을 만남으로써 우리는 나 이상의 존재로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서정인의 한 인물은 '남이 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들어 볼까요?
세상을 모르면 당연히 편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잘 모르게 됩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혼자가 아니라 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도 모른 채 그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도 조그만 조개 껍질을 줍는 데 정신을 팔고 있는 아이는 아닐까요?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기차에서 읽은 소설에 기억해 둘 만한 구절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는 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습니다.
"책끈은 당신만 짧은 것이 아니야. 다 짧아. 길어 봤자여. 당신은 당신이 안 것이 적다고 생각하지? 나는 내가 모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엄청 많아. 당신, 바닷가 모래밭에서 조개를 줍고 있는 애를 그려 봐라. 진리의 바다가 옆에서 물결치고 있는데, 나는 신기한 조개껍질 몇 개 줍는 데 정신이 팔려서 한평생을 보낸다."(서정인, <의료원>, 김원일 외, <<2002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앙일보, 2002, 184쪽)서울역 구내에 제법 큰 서점이 있습니다. 거기에 들를 때마다 나는 놀라움과 절망의 느낌에 빠지곤 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저렇게 많이 쓰며, 나는 언제 저들을 다 읽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도서관도 내게는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저 책들의 세계와 비교하면 내 지식이라는 것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넓디넓은 바다의 모래알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뭘 안다고 떠드는 것을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젊었을 때 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 것도 다 그렇겠습니다만 잘 되지 않는 일이 독서입니다. 읽은 것을 잘 기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눈이 침침해져서 오래 책과 마주할 수도 없습니다. 독서는 죽을 때까지 밥 먹는 일처럼 해야 할 테지만 그래도 젊었을 때 많이 해 두어야 합니다.
마침 책 읽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책들 많이 읽어서 그 독후감을 우리 집에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책을 만남으로써 우리는 나 이상의 존재로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서정인의 한 인물은 '남이 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들어 볼까요?
"남이 될 수 있는 능력, 될 수 있으면 많은 남들이 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의 가장 큰 힘이다. 예술 좋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동정을 통해서 편협하고 초라하고 비열하고 왜소한 사람을 여러 사람들이 되게 한다. 여러 사람들이 되었으면 큰 것 아니냐? 큰 것이 무엇이 좋으냐? 작았을 때 못 보았던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못 보았을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새 앎이다. 앎이 기쁨을 준다. 깨달음, 해탈, 득도, 성불, 다 그런 것 아니냐?"(218쪽)여기서는 예술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만 그냥 독서 일반에 적용해도 될 것입니다. 멋진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독서는 마음을 넓고 깊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작은 '나'가 여러 사람이 되는 것으로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흔히 독서의 효용으로 드는 간접경험을 이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사실은 나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글 쓰기가 내포하는 자기 초월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의 나를 넘어서는 것은 나를 버려야 한다는 점에서 고통이지만 새로운 경지를 발견하는 기쁨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내 마음은 넓어지고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마음의 넓이와 깊이에는 한계가 없을 것입니다.(<왜 글을 써야 할까요?>)위에서 읽은 서정인의 구절과 비교하면 딱딱하기 이를 데 없지만 같은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 초월의 노력이 동반하는 고통을 더 얘기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 주었으면 합니다. 여기서 글 쓰기와 독서를 같은 것으로 보아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전자가 독서의 의미를 더 잘 구현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모르면 당연히 편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잘 모르게 됩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혼자가 아니라 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도 모른 채 그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도 조그만 조개 껍질을 줍는 데 정신을 팔고 있는 아이는 아닐까요?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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