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단편소설에 <몰개월의 새>(1976)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는 저 유명한 <삼포 가는 길>(1973)의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군인입니다. 내일이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 떠나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또 술집 작부인 미자라는 여자도 나옵니다. '나'는 미자가 술에 취해 시궁창에 쳐 박혀 있는 것을 부축해서 그녀가 일하는 갈매기집으로 데려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마치 식구처럼 되어서 "먹지 못하게 무관한 사이가 됩"니다. 월남으로 떠나기 이틀 전에 '내'가 미자에게 들렀을 때 그녀는 '내'게 가엾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아마 '네 처지에 나를 불쌍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마음이 시킨 일이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부대를 떠나는 날이 왔습니다. 부대 주변의 싸구려 술집이 몰려 있는 몰개월의 작부들, 다시 말하면 제목에 있는 바로 그 '새'들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이들은 "갈 데 없어 막판까지 밀려와, 전장에 나가려는 병사들의 시달림을 받"는 "전국에서 가장 깡다구가 센 년들이란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런 여자들이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을 보내기 위해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길 좌우에 늘어서 있는 것입니다. 병사들이 탄 차가 달려나가자 이 여자들이 무엇인가를 던지면서 뒤쫓아옵니다. 미자도 '내'게 무엇인가를 던진 것은 물론입니다.
앞으로는 생명의 존엄성을 자신있게 얘기하기가 힘들어져 버렸습니다. 벌거벗은 힘이 지배하는 곳에서 생명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군인입니다. 내일이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 떠나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또 술집 작부인 미자라는 여자도 나옵니다. '나'는 미자가 술에 취해 시궁창에 쳐 박혀 있는 것을 부축해서 그녀가 일하는 갈매기집으로 데려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마치 식구처럼 되어서 "먹지 못하게 무관한 사이가 됩"니다. 월남으로 떠나기 이틀 전에 '내'가 미자에게 들렀을 때 그녀는 '내'게 가엾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아마 '네 처지에 나를 불쌍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마음이 시킨 일이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부대를 떠나는 날이 왔습니다. 부대 주변의 싸구려 술집이 몰려 있는 몰개월의 작부들, 다시 말하면 제목에 있는 바로 그 '새'들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이들은 "갈 데 없어 막판까지 밀려와, 전장에 나가려는 병사들의 시달림을 받"는 "전국에서 가장 깡다구가 센 년들이란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런 여자들이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을 보내기 위해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길 좌우에 늘어서 있는 것입니다. 병사들이 탄 차가 달려나가자 이 여자들이 무엇인가를 던지면서 뒤쫓아옵니다. 미자도 '내'게 무엇인가를 던진 것은 물론입니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뚝이 한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를 모두들 제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황석영, <몰개월의 새>, <<돼지꿈>>, 민음사, 1980, 94쪽)
그런데 '나'는, '나'를 가엾게 여긴 미자가 던져 준 오뚝이 한쌍을 바다에 버립니다. 유치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작전에 투입되고 바로 죽음이 눈앞의 현실이 되자 삶의 조그만 편린 하나하나가 의미있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얼른 보기에 하찮은 다른 사람의 삶도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사람들이 체험을 통하여 얻은 실감일 테니 아마 진실일 것입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여 부시 대통령이 당당하게 승리를 선언했고 그 부시가 대통령에 다시 뽑혔습니다. 이번의 침공은 야만적인 행위였습니다. 저마다의 삶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면 도무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 침략전쟁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물론 미국의 편을 든 거지요.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라크 파병은 베트남 전쟁에 우리 군인을 미국의 용병으로 보낸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30년이 흘렀는데도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좀 냉소적으로 말해서 우리 돈을 들여서 갔으므로 우리나라의 경제적 힘이 커졌다고 해야 할까요? 이쯤에서 우리는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베트남인의 얘기를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당신들에게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게 당신들에게 책임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나. 오해하지 말게. 그건 아직 당신네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라의 축에 들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네. 당신이 괜찮은 사람인 줄은 알아.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이 나라에서 살려고 한다면 당신의 나라가 한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좀더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우리 베트남은 당신네 나라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책임 있는 나라로서 행동했어."(방현석, <랍스터를 먹는 시간>, <<랍스터를 먹는 시간>>, 창작과비평사, 2003, 171쪽)이 인물은 한국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동참한 것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배운 바가 아예 없으며, 국가적 존엄성에 대한 자기 인식이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뼈아픈 지적을 내놓습니다. 어느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역사적 부채에서 좀처럼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생명의 존엄성을 자신있게 얘기하기가 힘들어져 버렸습니다. 벌거벗은 힘이 지배하는 곳에서 생명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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