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국익?(2003. 10. 9)

귤밭1 2004. 11. 23. 07:51
요즘 돌아다니는 말 가운데 가장 귀에 잘 들어오는 것이 '국익'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국익을 팽개치고 개인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했다고 하여 시끄럽습니다. 조사하고 있어서 나로서는 그에 대한 의혹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으나 떳떳하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점은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노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늙으면 저렇게 추해지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를테면 교육감이 선거에서 어쩌고 하는 흉흉한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면 이 나라는 사람이 깨끗하게 사는 게 몹시 어려운 데라는 한탄 섞인 푸념이 안 나올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떵떵거리면서 살자고 그러는 것일까요?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게 아닌데 방송에서 새소식을 들을 때마다 울화통이 터져 조금 그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국익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만 나오면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달까 아무튼 그런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평창을 동계 올림픽의 개최지로서 과연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으며, 그야말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유치단을 만들고(거기다가 돈을 쓰고 다닌다는 말도 나왔답니다), 많은 돈을 들여 가며 올림픽을 개최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냐를 따지는 것이 순서일 텐데도 국익이라는 말만 나오면 이런 합리적인 절차는 무시되어 버립니다. 눈치 없이 이런 얘기를 꺼냈다가는 무슨 욕을 먹을지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우울하게 굴리고 있었는데 반가운 글을 만났습니다. 먼저 읽고 나서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바덴바덴의 미몽’서 벗어날 때


“잘츠부르크의 조그마한 숙박업소들이 아무리 뭉쳐봐야 ‘대한민국’을 당해낼 턱이 있겠습니까”

지난 3일 늦은 시각 체코 프라하 시내 한 피브니체(맥주전문판매업소)를 찾은 기자는 강원도 평창과 겨울올림픽 유치 경쟁을 벌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유치단원 20여명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들은 1차 투표에서 탈락한 뒤 그곳에서 ‘쫑파티’를 열고 있었다.

화제는 단연 평창의 선전이었다. 그들은 국제 겨울스포츠에서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평창이 1차투표에서 2위보다 11표나 많은 1위(51표)를 한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잘츠부르크에서 민박을 운영한다는 볼프강 로트만(38)이란 남자는 “세계적인 스키장을 지니고도 몇몇 친목단체 중심으로 겨울올림픽 유치 운동을 펼친 것이 우리의 한계”라며 정부는 물론 세계적인 기업의 대대적인 후원을 받고 유치경쟁을 펼친 평창에 대해 부러움을 표시했다.

시민단체 중심으로 유치 운동을 벌인 잘츠부르크, 시 자체적으로 추진한 밴쿠버에 비해 평창은 그야말로 국력을 기울인 총력전이었으나, 결국 개최권을 얻는 데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것이 김운용 국제올림픽위 위원의 ‘이적 행위’ 때문이었든, 애초의 비관적 전망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든, 현지에서 느낀 분명한 한 가지는 더는 단순히 로비력에 모든 걸 거는 유치 방식은 이제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겨울올림픽을 열려면 그에 걸맞은 세계적인 스타들도 키워야 하고, 기본적인 올림픽 시설도 갖춰놓은 뒤에야 ‘말발’이 제대로 먹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불거진 ‘책임론 공방’도 기실 특정인의 외교력이나 정부, 기업의 로비력을 믿고 일단 덤벼든 뒤 ‘바덴바덴의 신화’를 재현해보겠다는 ‘한국적 방식’이 빚어낸 씁쓸한 ‘패전 뒤풀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투표 당일 총회장 내 메인프레스센터의 외국기자들이 평창이 얻은 표를 놓고 “Korea, Great!”(대한민국, 정말 대단한 나라야!)를 연발하던 목소리가 지금은 왠지 비아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원식 스포츠부 기자 pwseek@hani.co.kr(원문)
이렇게 일방적인 분위기에 거스르는 글이라도 있으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입니다. 우리도 잘츠부르크처럼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나서서 유치 활동을 벌이는 쪽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아주 그럴 듯한 민간 외교도 될 뿐더러 주민들 스스로가 주체가 됨으로써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활동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른, 아이들로 하여금 밥도 제 때에 못 먹게 하는 우리 비참한 교육 현실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느냐 하는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올림픽을 유치한들 누가 우리를 대단하게 여기겠습니까!

국익이라면 꼼짝 못하는 우리들의 정서도 문제지만 과연 2010년에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려야 국익에 보탬이 되는 것인지도 심각하게 따져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나 마나 제대로 된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개최가 결정되었다면 또 국가적인 차원에서 급하게 공사가 이루어지겠지요. 당연히, 그 지역은 산이 많은 데니 아름드리 잘 자란 나무들이 사정없이 잘려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많이 모이고 돈을 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점도 헤아려야 합니다.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제 우리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만한 객관적인 여건을 어느 정도는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 사정이 나빠졌다고 하지만 잘사는 동네 사람들의 소비는 여전하며 해외 여행객도 그렇다고 합니다. 요는 세금을 잘 걷어들이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약자에 대한 사회 복지도 이런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지요.

말이 나온 김에 체육 활동도 국가 대표급 선수들이 모여서 하는 거창한 행사 위주로 나가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곳곳에 몸만 가면 쉽게 운동할 수 있는 운동장이나 놀이 시설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건강하지 못한데 뛰어난 몇 사람이 나라의 이름을 걸고 상을 타고 하는 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보통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제도와 시설을 만드는 것이 참다운 국익이 아닐까 합니다.

모든 일에서 구별 없이 마구 나라를 내세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되면 합리적인 비판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질 뿐 아니라 좀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게 됩니다. 너와 내가 꼭 같은 끔찍한 세상이 되는 것이지요. 또 큰 행사 때문에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귀중한 것들-나무, 맑은 물, 새 소리 들이 우리 행복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산에 다니면서 늘 하는 생각입니다.

참고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국가가 절대적으로 우위가 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개인의 중요성을 옹호하는 책으로 박노자, <<나를 배반한 역사>>(인물과사상사), 임지현, 시카이 나오키, <<오만과 편견>>(휴머니스트)이 있습니다. 읽기를 권합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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