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지 않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품없이 퇴락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슬픔에 젖게 하는 빈집을 볼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집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궁금하고 아울러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사람이 살던 때와 저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에 대한 놀라움이 섞인 허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구절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그런데 자꾸자꾸 새로워지는 일 가운데 가장 해 볼 만 일이 무엇인 줄 아세요? 화장을 해도 머리를 새로 해도 멋진 옷을 걸쳐도 그 새로움은 얼마 가지 않습니다. 그저 밖으로만 나타나는, 그러니까 내 본질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은 겉만의 포장이기 때문입니다. 내용물과는 관계없는 허울좋은 포장지의 장식적인 효과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내면의 흔들림을 겪지 않은 행복은 대체로 일시적인 기분의 고양이기가 쉽습니다. 요는 내면입니다. 그런데 읽고 쓰는 일은 내면을 바꿉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대청으로 들락거리게 만들어놓은 분합문 옆의 반질거리던 쪽문 발디딤판은 흐치흐치하게 퇴색된 데다 받침대까지 기울어져 더 이상 그리로는 출입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때는 처가살이하는 큰매형의 식솔까지 합쳐 열한 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밤낮없이 들락거리던 쪽문의 발디딤판이었는데, 과연 그게 가능이나 했었던가 싶게 나무판대기는 얇은 것이었다. 조금만 세게 내려 밟아도 금방 부서져버릴 것 같은 그것이 수년간 뻔질나게 드나들던 열한 식구의 체중을 뜨떡없이 견뎠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미 생명이 없어진 나무라도, 외부의 지속적인 충격과 자극이 있는 한 그 물질의 구성분자들은 밀도를 유지하기 위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음에 틀림없었다.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아무도 건드려주지 않을 때 비로소 약해지고, 썩고 해체되는 거였다. 고향집은 그렇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구효서, <흔적>, 전상국 외, <<2002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현대문학, 2002, 162쪽.)목숨이 없는 것도 이런데 살아 있는 우리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사람은 '움직이는 거'(동물)잖아요. 고여 있으면 썩게 됩니다. 그러니 늘 변화를 꿈꾸고 실천해야 하겠지요. 나비가 하늘을 날자면 애써 지은 집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른바 해탈인데 우리 삶이야말로 이 해탈의 연속이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자꾸 새로워지는 일 가운데 가장 해 볼 만 일이 무엇인 줄 아세요? 화장을 해도 머리를 새로 해도 멋진 옷을 걸쳐도 그 새로움은 얼마 가지 않습니다. 그저 밖으로만 나타나는, 그러니까 내 본질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은 겉만의 포장이기 때문입니다. 내용물과는 관계없는 허울좋은 포장지의 장식적인 효과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내면의 흔들림을 겪지 않은 행복은 대체로 일시적인 기분의 고양이기가 쉽습니다. 요는 내면입니다. 그런데 읽고 쓰는 일은 내면을 바꿉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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