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일이나 감동을 줄 수 있는 속 깊은 이야기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별 생각 없이 승낙하고 나서 곧 후회하기 시작했다.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킬 만한 것을 전혀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십 몇 년을 사는 동안에, 성격이 소극적이고, 책 읽는 일 이외에는 별 능력을 갖지 못해서 주어진 길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하다 못해 큰 병을 앓거나 사고 같은 것도 겪은 적이 없다. 그러니 할 말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더구나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다.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을 늘상 부러워하면서 사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렇지만 감동을 준다는 조건을 달지 않는다면, 할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서 한국문학을 전공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할까 한다.
중학교 시절에는 국어 선생님의 소개로 학교 도서관에서 아주 가끔씩 소설책을 빌려 보곤 했는데 남도 하니까 따라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소설을 접하기 시작했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은 친구 집에서 빌려다 본 신구문화사판 '현대한국문학전집'이었다. 60년대 말에 나온 것인데 지금 보아도 아주 잘 만든 책이다. 또 그 집에는 삼중당에서 나온 '한국대표문학전집'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최인훈의 장편소설 '회색인'이 보여주는 관념의 폭과 깊이는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였다. 이런 책들을 섭렵하면서 소설 창작의 꿈을 키우고, 또래들보다 앞서고 있다는 건방진 태도를 은근히 지녔던 것 같다. 물론 내 능력과 처지를 감안하지 못한 철부지 소년의 헛된 꿈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지만.
이렇게 취미를 벗어나지 못한 좀 막연한 상태에서 문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동아일보를 받고 있었는데 거기에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의 한 사람인 김병익 기자가 한국의 문단 역사를 '문단 반세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었다. 육당과 춘원으로부터 1960년대 초까지를 다룬 것인데 좋아하는 분야여서 일일이 스크랩하여 줄을 치면서 읽는 재미가 상당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앞으로 문학을 내 전공 분야로 삼기로 한 것은 그 연재 마지막에 나오는 멋진 문장들 때문이었다.
김병익은 한국 문인들이 어렵게 살아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언어의 창조자인 문학인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든 자신의 내면 탐구와 현실의 풍속적 해부란 과제만으로 충분한 고난의 수형자"이지만, "여기에 한국의 문인들은 사회의 개조와 시대의 선구, 저항의 용기와 인내의 감수란 문학외적 '투쟁'까지 부여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조금 웅변조로 이들의 삶이 주는 감동을 다음과 같이 썼다.
사실 한국의 문학자를 비통한 감동 없이 대할 수 없으리라. 그들은 '고독한 탐구자'로서의 내적 결단을 한 그 위에 핍박과 오욕에의 대결이란 또 한 차례의 생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이러한 구절들은 당시의 내 정조에 딱 맞는 것이었다. 고3 생활이 가져다주는 압박에서 오는 약간의 비관적인 태도와 엉터리 독서 때문이었을 고통에 대한 감상적인 동경이 곁들여져서 열렬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고통스러운 만큼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다음부터 별 고민 없이 일관되게 한국문학을 내 영역으로 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조금은 행복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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