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나무는 꼭 '무럭무럭' 자랄까?(2002. 4)

귤밭1 2004. 12. 8. 08:49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고 말합니다. 습관이지요. 그런데 나무를 잘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점을 금방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나무는 힘들게, 또 다른 것은 바람에 흔들리며 자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 생각은 내 것이 아닙니다. 월요일(2002년 4월 1일)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기사가 들려 준 말을 베낀 것입니다. 중요 부분만 직접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전체 기사 부분을 눌러 직접 보기 바랍니다.

예전에 초등학교에서 치렀던 시험문제를 한번 보자.

<문제> 보기 중에서 맞는 것을 골라 빈칸에 쓰시오.
나무가 ( ) 자란다. 시냇물이 ( ) 흐른다. 강아지가 ( ) 짖는다. 시계가 ( ) 움직인다.
<보기> 졸졸 멍멍 똑딱똑딱 무럭무럭

아이들은 답을 맞추기 위해 `일상적인 거짓말'을 한다.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무는 느릿느릿 자라기도 하고, 흔들흔들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도 `무럭무럭'이라고 쓴다.

이런 `일상적인 거짓말'은 `습관적 자연스러움' 때문에 생긴다. 부모나 아이들이나 그렇게 하도록 배우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이런 문제에 익숙해지면서 `습관적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창의력'의 싹을 자르는 적이 된다.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정답에 익숙한 아이들은 나무가 다르게 자라는 것을 생각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런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의 정답을 떠올리려 노력할 것이고, 정답이 떠오르면 더이상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학부모들은 `정직성'이라고 하면 흔히 도덕적 측면으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아이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과 사고에도 적용시키려고 애써야 한다. 아이들이 `일상적인 거짓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북돋아줘야 한다는 말이다.(전체 기사)
나에게는 특히 마지막 단락이 마음에 듭니다. 정직성이라는 것이 도덕적 측면뿐만 아니라 대상을 관찰하는 시각에도 해당한다는 주장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습관의 힘에 눌려 내 감각 기관이 진상을 수용하는 일을 자기도 모르게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로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좋은 글을 쓰려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습관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를 자꾸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습관은 편하기도 한 것이어서 그것을 무시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익숙한 내 일부를 버리는 일이기도 하니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자면 내 의견이나 주장의 근거를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말로 내 사고의 이데올로기성을 성찰해야 합니다. 또 되도록 감정을 자제해야 합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도 해서 이성적으로는 수긍하면서 기분은 그것을 따라가지 않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그런 경우에 감정보다는 우리 이성을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에게 나무는 너무 일찍 온 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제대로 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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