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명인

귤밭1 2007. 11. 29. 16:17

오늘 1학년 학생이 주로 듣는 <문학의 이해> 시간은 소설의 성질에 대해 공부했다. 소설의 본질을 이루는 갈등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선생의 말을 잘 듣기만 하면 소설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갈등도 사건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뭐, 소설이야 안 써도, 안 읽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상식과 편견에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의 가치를 추구하자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이쯤에 와서는 소설을 얘기하다가 인생 철학(?)으로 옮겨가서 이제 방학이 시작되므로 보람된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데 그 가장 좋은 재료가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를 읽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갈등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고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여서 모험가들의 삶에도 주목하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학생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업을 마치고 내가 기다리는 목요일의 <<한겨례>> 'Esc'를 펼치니 명인 소개가 나와서 앞에서 소개한 내 이야기와도 통하는 데가 있으므로 기분이 좋아서 얼른 읽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감동적이었다.

최근 <미슐랭가이드>가 도쿄의 초밥집 두 군데에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부여하면서 여든두살 초밥명인 오노 지로가가 화제에 올랐다. 긴자에서 초밥집 스키야바시 지로를 운영하는 오노 명인은 일본 정부가‘현대의 명공’으로 지정할 정도로 존경받는 숙수다. 그는 초밥을 쥐는 자신의 손을 보호하느라 외출 때는 꼭 장갑을 끼고, 무거운 것도 절대 들지 않으며, 혀 감각이 무뎌질까봐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생선조각과 양념한 밥, 그리고 고추냉이가 구성요소의 전부인 초밥 만들기에 이렇게 정성을 쏟는 것은 간단하고 쉬울 것 같은 초밥이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난이도는 초밥요리사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요즘은 일본에서도 요리학교를 나온 젊은이들이 속성으로 초밥카운터에 서기도 한다지만 예전에 도제식으로 배운 장인들은 20년 가까운 수습과정을 거쳐야 손님 앞에 서서 초밥을 쥘 수 있었다. 처음 초밥집에 견습생으로 들어가면 새벽마다 장바구니를 들고 요리사를 따라 시장에 가는 일부터 한다. 그곳에서 어깨너머로 생선을 식별하는 법과 싱싱한 횟감을 고르는 요령을 익히고 돌아와서는 그 생선을 닦고, 설거지를 도맡아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몇 해 동안 초밥 만들 밥 짓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게 한 후 부채질로 밥을 식히는 일을 시킨다. 그런 과정을 10년 동안 거친 뒤에야 비로소 보조요리사로 카운터에 서는 것이 허락된다. 그때부터 조리장을 위해 생선을 손질하고 보좌하는 일을 4~5년 한 후에야 초밥을 쥐는 것이 허용된다. 그리고는 손님을 대하는 매너와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 후에 한 사람의 일류 요리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초밥요리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다행스럽게도 대답은 ‘있다’다. 우리나라에도 명인 반열에 드는 초밥장인이 몇 사람 있지만 그 중에서도 첫손에 꼽고 싶은 이가 워커힐호텔 기요미즈의 임영철 조리장이다. 그는 명인답게 제철 생선과 잘 지어진 밥, 그리고 고추냉이의 적절한 조화를 아는 사람이다. 그는 특히 밥의 양념을 중시하는데 아무리 쌀이 좋아도 양념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좋은 초밥을 만들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밥의 온도는 체온과 같은 36~37도를 항상 유지하고 초밥의 밥알 수는 300알 정도를 고집하며, 생선 종류에 따라 밥의 양념 강도와 고추냉이의 양을 절묘하게 조절한다. 그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선 지금도 매년 일본에 가서 일류 초밥집과 어시장을 돌아보면서 본고장의 동향을 살핀다. 그의 단골손님 중에는 일본인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그의 솜씨를 에둘러 말해 준다. 기요즈미의 초밥은 4만원부터 시작하고 생선종류에 따라 더 비싸지기도 하는 만만찮은 가격이지만 일본 명인의 초밥가격에 비하면 오분의 일 수준이 채 안 된다. 전화는 (02)450-4599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원문 )

먼저, 상상력을 동원하여 저 초밥을 먹은 다음에 입을 다시고 두 가지만 덧붙이자. 명인은 그냥 나오지 않으며, 명인을 알아보자면 명인 못지않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음식은 혀로만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분야에서 뛰어나려면 당연히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이 요구된다. 과정을 무시하고 성과만 중시하며,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우리로서는 명심해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음식을 혀로만 먹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육감을 다 동원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음식에 들어간 재료의 내력이라든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면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제대로 맛을 보기 위하여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도락가라고 하면 돈은 많고 할 일이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 알기 쉬운데 위의 소개 글은 그런 세간의 인식이 편견일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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