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09. 7. 7.) 아침 신문을 보니 걷기가 소개됐다. 만병통치약이란다. 우울증 같은 데는 휴식보다 걷기가 더 좋다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걷고 나면 활기가 넘치며 기분 좋게 술을 마신 것처럼 마음이 밝아진다. 그러니 '거룩한 사명감'-이런 거 안 좋은 건데. 그러므로 이 말 대신에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가 딱 알맞다-을 갖고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사 다음에는, 내 <즐거운 걷기>도 좀 얘기해 볼까 한다.
홍지연(52)씨는 걷기 예찬론자다. 아침 6시면 일어나 공기 좋은 집 근처 공원으로 간다. 날씨가 화창하든 비가 오든 동생과 함께 걷는다. 홍씨는 “걷기는 내게 물과 공기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홍씨가 걷기 예찬론자가 된 것은 5~6년 전부터다. 당시 식당을 경영했던 그는 경영이 뜻대로 되지 않아 그동안 번 돈을 몽땅 까먹었다. 남은 것은 카드빚과 가족들의 원망이었다. 식당 두 곳을 정리한 뒤 그는 우울감으로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입맛도 없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자꾸 피곤했다.걷기는 우리 또래의, 특히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밥 먹듯이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다녔던 것이다. 나는 그래도 면 소재지에 살아서 해찰을 부려도 반 시간 정도면 학교에 갈 수 있지만, 면에 하나 있는 중학교-초등학교는 큰 마을마다 하나씩 있었다-에 다니려고 왕복 2시간 이상을 걸어야 되는 아이들도 꽤 되었다(6월에 올레 길을 걷다가 그 길에서 빠져 나와 시험 삼아 중학교 친구들이 다녔던 길을 되밟아 봤다. 정말 멀었다. 멀리 떨어진 데서는 가는 데만 두 시간을 다 들여야 할 것 같았다.). 버스가 다니긴 했는데 용돈이란 건 그 개념 자체가 없던 때라 차비가 없어서 못 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요일에 지네를 잡아 팔아서 돈이 주머니에 있다고 해도 차 타느니 풀빵이나 호떡 같은 군것질 하고 말지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수박과 토마토에 설탕을 쳐서 먹던 시절이니 단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지금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목포 쪽에 와서 팥죽을 먹은 적이 있는데 설탕을 숟가락으로 듬뿍 넣는 게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버스요금 한푼이 아쉬워 무작정 걷게 됐다. 그랬더니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버스 다섯 정거장가량을 오가며 걷다 보니 지나온 날들을 정리하게 됐다”며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고, 모처럼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이날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날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집 근처 시장, 산, 공원 등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걸으면서 자신이 사업에 실패한 이유에 대해 분석해보고, 다시 재기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구상했다. 그는 고민 끝에 보험설계업에 뛰어들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카드빚을 다 갚고, 매달 600만~1000만원을 벌고 있다. 식당 경영에 실패한 뒤 그저 우울감에 빠져 있던 그는 걷기를 통해 재기했고, 우울감도 이겨냈다.
홍씨만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걷기를 통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만성 피로가 해소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발표됐다. 김대현 계명대 교수가 2006년 9월부터 12월까지 경상북도 지역 2개 보건소에서 60세 이상 노인 85명을 대상으로 주 5회 1시간씩 걷기운동을 12주간 실시한 결과 보행 자세와 우울증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런던에 있는 바솔로뮤 병원에서도 만성피로 증후군 진단을 받은 30대 중반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 집단에는 30분씩 걷기 운동을 시키고, 다른 집단에는 그 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갖도록 했다. 12주 뒤 그들의 몸 상태를 검사했는데, 걷기 운동을 한 집단에서는 약 52%의 사람들이 피로 증세가 많이 사라졌다고 대답했다. 반면 휴식을 취한 집단에서는 25% 정도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연구는 1년 동안 계속됐는데, 걷기 운동 요법에 참가한 이들의 95% 이상이 만성 피로 증후군 진단을 받기 전의 몸 상태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외에도 규칙적으로 걷기만 해도 집중력과 추상적 사고력이 15% 이상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걷는 동안 혈액순환이 잘돼 뇌에 산소 공급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걷기는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준다. 걷기는 운동을 넘어 스트레스나 우울증, 만성 피로 외에도 고혈압, 관절염, 골다공증, 심장병, 암 등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적극 활용되고 있다. 예찬론자들이 ‘만병통치약’으로 칭송할 만하다. (전체 기사)
날마다 걸었다고는 해도 지금까지 선명하게 생각나는 걸음도 있기는 하다. 우리 집에는 부모 빼고는 어른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젖먹이와 할머니를 두고 일본으로 돈 벌러 가 소식이 끊기고 할머니는 그 어린 외아들을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에게 맡기고 재혼했다. 그런데 아버지-그러니까 저 아이가 자라 아버지가 된 것이다-마저도 초등학교 교사였으니 농사를 짓는 우리 집으로서는 어머니 혼자 그 일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고 초등학생인 나도 큰아들이랍시고 틈나는 대로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학교가 파하면, 지금과는 달리 집마다 수도가 없었으므로 공동수도에 가서 물도 길어오고, 마루에 걸레질도 하고 저녁이 가까워오면 쌀에 섞을 보리쌀을 미리 삶아 놓기도 했다. 부엌에서 보리짚으로 불을 때자면 연기 때문에 눈물깨나 흘려야 했다. 학교에 젖먹이 동생을 데리고 가기도 했고 한 번은 유채-여러분이 유채꽃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인데 그때는 꽃이 아니고 기름을 짜기 위해 기르는 작물일 뿐이었다-를 터느라고 결석한 적도 있다(우리 부모를 욕하지 말기 바란다. 딱 한 번뿐이었을뿐더러 다른 집에서도 이 정도의 일은 흔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억지로 학원 가라고 하는 요즘 부모보다 훨씬 더 교육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장 실습한 것 아닌가! 그런데 지난 5월에 고향에 간 김에 어머니에게 결석시킨 거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생각 안 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완전히 잊고 있는 것을 세세히 되살리는 뛰어난 기억력-대체로 여성들의 기억은 아주 구체적이다-을 자랑하는 분인데 그래서 놀랐다.). 그래서 그 시절 가장 큰 내 소원은 동생들 돌보지 않고 친구들과 마음껏 뛰노는 것이었다. 일요일이 오면 그렇게 지네를 잡으러 가고 싶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이런 간절한 소원과는 정반대로 내가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야 내가 하고자 한 걸음 얘기가 나온다.
농사를 지었으므로 당연히 소는 키워야 했다. 소를 부려서 짐도 싣고 마차를 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목장이 있었는데 겨울을 제외하면 평소에 거기서 소를 키우다가 일이 있으면 몰고 오고 끝나면 되돌려 보냈다. 그런데 이 일은 내가 담당이었다. 캄캄한 이른 새벽 학교 가기 전에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부비며 목장으로 가는 초등학생 꼬마를 그려 보라. 처음 출발할 때는 눈물깨나 흘렸다. 아마 가는 데만 한 시간이 좋이 걸렸을 것이다. 고향에 가면, 시간도 재고 어린 시절을 추억할 겸 해서 한번 꼭 가보자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소들을 몰고 내려오거나 올리는 것은 그래도 가족 같은 소들이 함께하니까 그런 대로 괜찮은데 이른 새벽이나 농사일을 마친 저녁에 혼자 오가는 길은 참 외로웠다. 나는 그때 왜 그리 착했는지 지금에 와서는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안 간다고 하면 저 어린아이를 어머니가 어쩌겠는가. 그 어린 나이에도 장남의식 같은 것이 있었나 보다. 지금도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평소의 내 무심과 불효를 어린 시절의 내 외로운 걷기를 강조하며 벌충하곤 한다. 나는 이렇게 유치하다.
아무튼 이 하고 싶지 않은 나들이가 내 걷기의 원체험이 된 것 같다. 하기 싫었던 것이 시간의 마모 작용으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뀌기도 했겠지만 그것 때문이라기보다는 걸음이 나도 모르게 선물해 줬던 자연과의 교감이랄까 그런 것이 지금껏 날 걷게 한 것만 같은 것이다. 이런 느낌을 나는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 하기 싫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린 시절을 참 잘 보낸 것 같다. 크게 내세울 것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이만큼이나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된 데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만 같기 때문이다. 특히 책 공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크나큰 행복이었다. 그 대신에 늘 몸을 움직이고 자연과 접촉함으로써 의식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내 몸이 자연의 일부라는 근원적인 진실을 몸으로 익힌 것이 아닌가 한다. 소는 외로운 길을 함께했던 내 형제였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이른 아침의 대지는 나를 감싸 주는 부모였던 셈이다. 부모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소를 키우지 않게 되었지만 내 어린 시절의 그 어미 소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훈, <'노동은 기도입니다'>, <<책 속으로 난 길>>, 제이앤씨, 2006, 246쪽. 전문은 여기에서 보세요)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 즐거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로 걷기를 즐겼던 것 같다. 몇 시간씩 청계천 헌책방 같은 데를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지금껏 운전 면허증을 갖지 않은 것은 겁이 많아서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다 따는 것을 내가 왜 똑같이 그래야 하느냐는 반발심리도 많이 작용했지만, 걸음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를 1편으로 삼고, 본격적인(?) 걷기와 그 소감은 2편에 쓰고자 한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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