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경기도 안산에서 목포까지 도보 여행 (2)

귤밭1 2005. 8. 6. 07:06

저는 지난 7월 5일 경기도 안산에서 걷기 시작하여 7월 20일에 전남 무안군의 목포대학교 내 연구실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5일에 출발하여 4일 동안 안산에서 서산까지 걸었고, 비가 와서 집(서울)으로 왔다가 다시 서산으로 가서 3일 동안(7. 12-14) 서천까지 갔습니다. 15일에 서울서 볼 일이 있어서 14일 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6일에 다시 서천으로 가서 거기서 목포까지 걸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의 여행기 비슷한 것을 적어 봤습니다.

 

나흘째까지는 이미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마지막 날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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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여행 닷새째(2005. 7. 12)

서산시 경계를 넘어서서 홍성에 왔습니다. 오늘은 햇빛 때문에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숙소에 들고나서 가방이랑 옷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몸도 씻지 않은 채 한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밥을 먹어야겠기에 일어나서 더운 물 속에 몸을 담그니 그래도 살 것 같았습니다. 여관을 나와 저녁 먹고 피시방에서 이렇게 글 올립니다.

원래는 갈산이란 데서 묵으려고 했는데 조그만 면소재지라 여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홍성으로 차를 타고 왔습니다. 이러니 나는 완전히 사이비 도보 여행자지요. 되도록 차를 타지 말자고 마음먹지만 숙소 문제 때문에 바라는 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출발은 괜찮았습니다. 며칠 쉬는 동안에 발에 난 물집도 다 가라앉았고 피곤도 다 풀렸기 때문입니다. 또 서울에서 오느라고 10시 30분쯤에 출발했으니 걸은 시간도 짧았으니 다른 때보다 쉬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햇빛이 너무 강했습니다. 반바지를 입어서 다리는 벌겋게 익어 버렸습니다. 막판에 이르러서는 속도 메슥거려서 설사가 나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더랍니다. 다행히 걱정하던 일이 생기지 않아서 한숨을 덜었습니다만 내일도 오늘처럼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됩니다.

오늘 처음으로 자전거로 여행하는 젊은이 셋을 만났습니다. 같은 곳에서 쉬게 되어서 얘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인천에서 출발해서 남해안까지 간답니다. 교회 같은 곳에서 잔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모험과 청년다움이 부러웠습니다. 참 좋은 일을 한다고 칭찬해 줬습니다. 이런 젊은이들로 길이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도 많은 격려 전화와 메세지 받았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내일은 힘을 내서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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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째(2005. 7. 13)

보령의 대천(대천 해수욕장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했습니다. 장항선의 대천역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은 좀 일찍 출발했습니다. 되도록 햇빛이 나지 않을 때 걷기 위해서지요. 그래서 7시에 걷기 시작했는데 도착할 때까지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불어 걷기에는 아주 그만이었습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습니다. 몸도 덩달아 호응해서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약 33Km 정도 걸은 셈인데 앞으로 몇 시간 더 걸어도 될 만한 상태입니다. 일찍 숙소에 들어가기도 그렇고 해서 먼저 이렇게 피시방에 들러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내일 저녁에는 올라가야 하는데, 내일은 여기서 두 시간 반 정도 가면 되는 대천 해수욕장으로 가서 해수욕을 하며 놀다가 갈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 39Km 정도 되는 서천으로 가서 버스를 탈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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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째(2005. 7. 14)

대천에서 서천까지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동안 39Km를 걸었습니다. 지금까지 걸었던 길 가운데 최고의 길이었습니다. 서천이 군이어서 그런지 차의 소통량이 많지 않았고-따라서 큰 화물차도 잘 안 보였습니다- 길 자체가 낮은 산자락을 구불구불 도는 기분을 주었습니다. 길 양옆에 늘어선 낮은 산-우리나라의 길이 대체로 이렇지만 21번 국도의 산은 특히 정다웠습니다-이 내게 잘 걷는다고 박수를 쳐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이나 거리로 제일 많이 걸었습니다만 어디 한 군데 이상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햇빛이 하루 종일 비쳤지만 바람이 그런 대로 불어서 걸을 만했습니다.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은, 깊은 충일감을 만끽한 하루였습니다. 걸으면서, 쉬면서 이 다음 순간은 어째도 좋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래설까요, 승용차의 앞 좌석에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편하게 가는 사람을 부러움도 반감도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아프거나 지친 것도 걸으면서 느끼는 내 행복을 분명하게 해 주는 양념이었습니다.  내가 내 주위의 세계와 하나가 됐다는 느낌이 가져다 준 선물일 것입니다.

수많은 발걸음들에 점철되어 있는 있는 고통은 세계와의 느린 화해로 가는 과정이다. 걷는 사람은 낭패감 속에서도 자신의 삶과 계속 한몸을 이루고 사물들과 육체적 접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행복하다. 온몸이 피로에 취하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저곳으로 간다는 보잘것없지만 명백한 목표를 간직한 채 그는 여전히 세계와의 관계를 통제, 조절하고 있다. 물론 그는 방향 감각을 잃기도 하지만 아직은 알지 못할 어떤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걷기는 하나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 되어 불행을 기회로 탈바꿈시킨다. 인간을 바꾼다는 영원한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길의 연금술이 인간을 삶의 길 위에 세워놓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 김화영 옮김, <<걷기 예찬>>, 현대문학, 2002, 256쪽)
길이 사람을 바꾼다! 그러니 길은 연금술사라고 할 만합니다. 저야 이런 경지는 꿈도 꾸지 못할 처지에 있지만 조금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아무튼 걸음을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식당에 들르면 사람들마다 왜 일부러 고생하느냐고 묻는 것에 대해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말았지만 걷는 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것도 드물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올 여름은 걸음의 매혹이 나를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걷다 보면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몸으로 그 매혹의 실체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요일에 서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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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레째(2005. 7. 16)

용산역에서 6시 55분에 출발하는 장항선 무궁화호를 타고 10시 38분에 서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대천에서 서천까지 오는 21번 국도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기찻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지막한 산길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기분은 내가 걸은 길과 오손도손 나란히 뻗어 있어서 더 컸을 것입니다. 내가 쉬었던 곳 하나하나를 반갑게 확인하는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다시 타 보고 싶은 기찻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걸은 길은 최악의 길이었습니다. 특히 금강 하구둑을 넘고서는 마을과 잘 연결되지 않아서 마치 고속도로를 팍팍하게 걷는 것 같았습니다. 중간에서 물이 떨어졌는데 글쎄 사먹을 데가 없더라니까요. 그냥 길뿐이었습니다. 옆친 데 덮친 격으로 비가 오는데다 길까지 잘못 들어 한참 걸었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괜한 발걸음을 한 것은 내 잘못 탓입니다. 글쎄 얼마나 걸었다고 지난 며칠 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허황된 자부심이 지도 보는 일을 소홀히하도록 만들었던 거지요. 겸손해져야겠습니다. 수양하여 인격을 쌓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소중한 몸이 쓸데없이 고생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혹시라도 내 인간됨이 고매하게 된다면 그것은 내 몸을 위하자는 실용주의에서 나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무튼 6시쯤에 군산의 대야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여관의 간판이 보여서 가 봤는데 문을 닫았습니다. 목포에서 인천까지 가는 버스가 멈출 정도로 교통의 요지인 것 같은데도 장사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결국 머물 데가 없어서 김제까지 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여전히 나는 사이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웃고 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부터는 부안을 거쳐 변산 반도로 들어섭니다. 바다를 따라 걷는 길이지요. 열심히 일할 여러분께 바다의 색깔과 냄새와 움직임을 직접 대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로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둔한 오감을 활짝 열어 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전한 여러분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오늘도 여러분 덕분에 내 몸은 '이상 무'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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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레째(7. 17)

오늘은 김제에서 부안을 거쳐 역시 부안군에 속하지만 줄포라는 데 왔습니다. 이곳은, 실제로 해 보지는 않아서 짐작이지만 한 시간 정도면 마을을 다 돌 수 있을 정도의 규모입니다.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는데 대부분이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혹시 장사가 안 되어 그런 것은 아닌지 나그네의 심사가 잠시 어두워집니다. 일요일이어서 쉬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어제 김제로 오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전라북도는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런 이야기의 구체적인 예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좀 더웠고 바람도 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날보다 힘이 든 셈인데도 그럭저럭 아무 이상이 없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는 자신이 무척 대견스럽습니다. 이대로라면 목포까지 그럭저럭 갈 수 있을 듯합니다. 관심을 가져 주신 많은 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점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로 외로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혼자 걸으니까 옆에 누구가 없어서 외로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만나는 이마다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것이 왜 혼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걸어 보면, 혼자인 것이 걷기에는 딱 맞습니다. 걷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과 걸음이 자연스럽게 가져다 주는 충일감이 외로움에 젖을 시간을 주지 않는 거 같습니다(물론 걸은 지가 며칠 안 되어서 이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이런 것이 아니라고 해도, 휴대 전화기도 있고 이렇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본질적인 외로움을 경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휴대 전화도, 카메라도 다 버리고 오로지 몸과 오감으로만 이 세상과 마주 대하는 상상을 하는데 실제로 해 보기도 전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버리고 맙니다. 사람을 이어 주는 기계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외로움을 두려워하게 된 거지요.

정말로 외롭지 못하니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인 나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가 없어집니다. 철저하게 외로워서 끝내는 누구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해서 혼잣말이라도 해야 하는 상태로까지 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선운사도 보고 바닷가 쪽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잘 데가 마땅치 않을 것 같아서 고창을 지나 영광으로 가는 길을 걸을까 합니다. 영광까지는 하루 걸음으로는 너무 먼 거린데 적당한 거리가 되는 곳에서는 역시 숙소가 없을 것 같아서 길가에서 우연히 모텔을 만나지 못하면 차를 이용하여 영광으로 가려고 합니다. 변명 삼아 말하는 것인데, 이 숙소 문제가 나를 자꾸 가짜 도보 여행자로 만듭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서천에서 대천으로 가는 차에서 대천에서 여관을 하는 분을 만났는데 장사가 안 되어 여관을 내 놨다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앞 문장은 써 놓고 보니 도대체 내 얘기와 무슨 관련이 있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대답이 궁하지만 손이 고생했으므로 그대로 놔 두렵니다.

여러분 오늘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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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과 열하루째(7. 18-9)

어제 여행기를 못 올렸습니다. 어제까지 마쳐야 할 일이 있어서 영광에서 박은준이 사 준 맛있는 저녁을 먹은 다음 김창호군이 모는 차를 타고 학교의 내 연구실에 와서 1시까지 아래 한글 작업을 했습니다. 아침에 다시 김군이 태워다 줘서 영광에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줄포에서 시작하여 영광 읍내를 10킬로미터를 남겨 놓고 박은준의 차를 타서 영광에 왔습니다. 아침부터 하루 내내 더웠습니다. 점심 때쯤에 고창 읍내를 지났는데 마침 목욕탕이 보이길래, 해수욕장에 못 들르는 대신에 냉탕에서 헤엄도 치고 낮잠도 자서 더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것이 덥기는 하지만 방이나 사무실에서 조금씩 땀을 흘리며 짜증스러워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릅니다. 땀을 비오듯 쏟고 나면 시원해질 뿐더러 무방비 상태가 되어 아무 데나 앉고 심지어는 드러눕고 할 수 있어서 몸가짐이 훨씬 자유로워지니 말입니다. 조금 과장하면 이런 상태를 일러 무애의 경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낮의 땡볕도 뭐 그런 대로 견딜 만해집니다. 이런, 정신의 조작에 의한 더위 극복 방법이 마땅치 않으면 주위를 둘러보아도 됩니다. 공사 현장과 밭이나 논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면 내 더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요.

아무리 더워도 하루 종일 가는 것은 아닙니다. 차면 이울기 마련이지요. 한낮의 더위도 저녁이 되면 누그러지고 바람이 서늘하게 불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덥다고 짜증을 낼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드리 큰 느티나무 아래서 바람을 들이는 순간의 시원함도 실상 더위가 없이는 느끼지 못하는 선물 아닌가요!

쉬엄쉬엄이기는 했지만 아무 이상 없이 잘 걸을 수 있었던 데는 박은준의 마중도 한몫 톡톡이 했습니다. 박은준이 사 준 저녁 식사도 특별했습니다. 그 음식점은 정원도 좁은 공간을 한껏 잘 활용했고 내부도 정갈했습니다. 음식도 처음 느낀 인상에 걸맞게 담백했고요. 특히 이 집 주인은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다들 처음 먹는 음식이라 먹을 줄을 몰라 했는데 이 분이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함부로 넘볼 수 있는 권위가 느껴졌습니다. 영광에 가면 군청 옆에 있는 이 음식점 '남도땅'(나는 남도탕이라고 읽었는데 박은준이 남도땅이라고 하니 거기에 따르겠습니다. 박은준의 글을 보세요.)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오늘은 영광에서 출발하여 함평까지 27Km를 걸어왔습니다. 거리가 짧아서 대단치 않게 여겼는데 몹시 더워서 많이 쉬느라고 아침 7시30분에 시작하여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이쪽에는 정자가 많아서 낮에는 낮잠도 잤답니다. 위와 아래, 사방으로 통하는 바람을 맞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싶었습니다. 큰 나무 아래에서나 나무로 만든 정자에서 자는 잠이야말로 휴식(休息)의 본질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느낌일 것입니다.

'쉬다'라는 '休'자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나무의 그늘 아래서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나무를 통하여 나의 몸은 대지와 그리고 하늘에 연결된다. 휴식이란 이처럼 대우주와 통하는 일이다. (츠지 신이치, 권희정 옮김, <<슬로우 이즈 뷰티플>>, 빛무리, 2003, 168쪽)

이제 내일이면 함평에서 현경, 톱머리 해수욕장, 목포대학교 앞 사거리를 거쳐 내 연구실에 이르게 됩니다. 하는 김에 땅끝까지 가야 된다는 소리도 있지만 일단은 여기서 이번의 도보 여행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번 여행을 하기 전에는 방학에는 외국에 나가자고 마음먹었는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해외 여행 대신에 도보 여행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것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걷기에 중독이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이번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는 데 크게 작용한 것이니 여러분의 책임이 큽니다. 그래도 거듭하여 고맙다는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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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틀째-마지막 날(7. 20)

함평에서 7시 반쯤에 출발하였다. 밤에는 내일이 마지막이라선지 나그네의 심사가 복잡하여 단잠을 못 자고 많이 뒤척였다. 열흘이 넘는 여정이니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아침 안개가 낀 24번 도로는 호젓하여 좋았다. 한동안을 걸어도 차가 안 지나갈 때도 있다. 그만큼 마을이 없거나 사람들이 적다는 얘기도 된다. 아직은 아무것도 심지 않는 땅은 그리 안 보이지만 이렇게 차가 드물어서는 앞으로 농촌은 농촌이 아니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차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농촌에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가 많으면 많은 대로, 반대로 차가 안 지나가면 그런 대로 걱정이다. 아무튼, 아침을 먹지 못했는데 밥 먹을 곳이 없다. 마을이 없으니 식당이 있을 리 없다. 마을이 있어도 식당이 있을 만한 규모가 아니니 어쩔 수가 없다. 현경에 와서야 그러니까 10시가 넘어서야 갈비탕밖에 안 된다는 식당에서 겨우 아침 겸 점심을 때울 수 있었다.

이참에 시골 식당의 장사 솜씨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좋겠다. 글쎄, 땀을 뻘뻘 흘리는 손님이 들어갔으면 아무리 불청객-장사하지 않은 시간에 들어갔을지도 모르니까-이라고 해도 선풍기를 손님 앞으로 향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주인은 주방으로 바람을 보내는 선풍기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선풍기를 내 쪽으로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아무 말도 없이 내가 부탁한 대로 한다.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지나치게 도회의 어법에 몸이 익어 버린 걸까?

영광에서 함평으로 올 때 이런 일도 있었다. 이때도 아침을 먹으려고 하는데 겨우 중국집을 찾았다. 보통 중국집은 오후에 문을 여는데 여기는 오전에도 음식을 파는 모양이었다. 당진으로 가는 길에 맛있는 짜장면 때문에 먹지 못한 콩국수를 시켰다. 그런데 식당 안이 몹시 어지럽다. 음식 재료가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쌓여 있고 식탁은 때가 끼었다. 당연히 파리가 많이 날아다녔다. 파리가 있는 것은 시골이니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 아줌마가 내 옆 식탁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파리채로 딱딱 소리를 내면서 파리를 잡는 것이다. 식탁에서 맞아 죽은 파리를 파리채로 밑으로 밀어냈다. 그뿐이다. 걸레질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곳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 비해 지나치게 깨끗한 사람이 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어릴 때 저런 분위기 속에 살았는데 말이다. 감각의 차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식당에는 외지 사람도 드나들기 때문에 음식을 사먹는 사람을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길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길다운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길은 지도로만 봤다고 할 수 있지만 이 길은 비록 차로지만 여러 번 왔다갔다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무안 국제공항을 지나 톱머리 해수욕장부터서는 회의나 모임이 있는 특별한 날에는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러도 오는 곳이기 때문에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큰 길을 버리고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을 고른 것이다. 그 중 그럴듯하게 걸었다고 할 수 있는데 조금 안다는 게 문제였다. 이곳을 돌면 이런 데가 나올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한참이나 지나서야 생각한 데 이르는 것이다. 점심 무렵부터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도 이런 초조한 심정을 부추겼다. 아마 마지막 날이 아니었으면 맥이 빠져서 걷지 못했을 것이다.

톱머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바닷물에는 아무도 없다. 나무 밑에 몇 사람이 어른거릴 뿐이다. 장사가 잘 안 되는지 간이 음식점 같은 곳에는 아무렇게나 식탁이 놓여 있다. 아예 문 열기를 포기한 모양이다. 수영하려고 하니 멋쩍다. 그래서 모자란 잠이나 자자고 정자에 대자로 누웠다. 몹시 시원하다. 이게 여름철 도보 여행의 맛이다. 일어나 보니 한 시간이나 지났다.

다시 걸었다. 걸음이 느려진다. 물집 때문에 절뚝거리는 걸음이 된다. 그래도 계속 걸을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이른바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는 것 아닌가!

 

걸음은 정직하다. 걸은 만큼만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학교가 보이는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뿌듯했다. 중간에서 차를 타기도 했지만 걸음이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피할 수 없는 사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사정이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처음 시도한 여행치고는 꽤 좋은 성적을 냈다는 자족감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다섯시 조금 넘어서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내 연구실에 도착했다.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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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