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단다. 매우 낯선 관점이지만 이른바 문명인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예리하게 건드리고 있어서 들어 볼 만하다.
세계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먹는 물에다 똥을 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서양인들은 앞쪽에 속한다. 우리는 먹을 수 있도록 정수된 물에 배설을 한다. 깨끗했던 물이 배설물로 오염된 다음 우리는 더 많은 물로 그것을 씻어내린다.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고 또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우리가 아주 당연히 여기는 수세식 변소를 쓰는 사람에 대한 얘기다. 위에서는 서양인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 저자는 똥을 이렇게 폐기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 썩혀서 퇴비로 쓰면 정수할 물도 필요하지 않고 환경도 몸-유기 농산물을 먹을 수 있으므로-도 깨끗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첫째 부류의 인간들은 오염되지 않은 물을 일부러 더렵혀 놓고 다시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발전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이른바 문명인이 하는 일은 다음과 같이 풍자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수돗물에 용변을 보는 이 같은 관습은 서양세계의 표준 양식에 맞는 것이다. 수돗물에 용변을 보지 않으면 비문화인, 이방인, 또는 가난에 찌든 사람으로 간주된다. 즉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극단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배설물을 물에다 버리는 것은 확실히 수질을 악화시킨다. 물에다 배설함으로써 우리는 물을 오염시킨다. 우리가 변기를 씻어내릴 때마다 18-20리터의 오염된 물을 환경에다 쏟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무실에 있는 19리터 물통을 아무도 마시기 전에 쏟아 부어버리는 것과 같은데 소변을 볼 때도 꼭 같다. 매일 여러 번씩 이 짓을 해대는 사람이 미국 한 나라만 해도 2억5천만명이다. (조셉 젠킨스, 이재성 옮김, <<똥 살리기 땅 살리기-인분 핸드북>>, 녹색평론사, 2004, 39쪽)
내가 물 주전자에 담긴 물에 오줌을 눈 다음 목마를 때 그것을 마시면 사람들은 돌았다고 말하겠지. 만약, 마실 물에다 오줌과 똥을 섞어 넣는 비싼 기술을 개발하고 그 물을 다시 마실 수 있는 물로 정화할 수 있는 더 비싼(그러나 확실히 믿을 수 없는) 기술을 발명해낸다면 더욱 미쳤다고 할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왜 애당초 마실 수 있는 물을 엉망으로 만들고 야단인가 하고 물을 것이다. (웬델 베리의 말, 위의 책, 113쪽에서 인용)
한마디로 우리는 미쳤다. 이런 판단은, 어렸을 때 사람의 똥을 먹는 돼지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던 내게는 아주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집마다 똥돼지를 키우던 제주도 사람이야말로 서양인과는 대비되는 부류였다. 그들은, 음식 찌꺼기와 쌀겨는 물론이고 인분까지 다 먹어치우고
그 나머지는 거름을 만들어 곡식을 자라게 해 주는 돼지를 길러 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자연과 더불어 산 지혜로운 이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이런 돼지를 기르지 않는다. 그런데 설사라도 나서 그 돼지 우리('돝통'이라고 불렀다)에 앉아서 똥을 누게 되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따뜻한
음식을 찾아나선 돼지의 넓적한 귀 위에 그것이 떨어지고 몸에 묻은 그것을 털어내느라고 돼지가 머리를 휘저으면 문제의 그것이 다시 내 엉덩이로
돌아온다는 얘기를 재미있게 하고 듣는 우리는, 심지어 돼지를 키웠던 그들조차도 옛날의 그들을 촌스럽다고 한다. 나는, 틀림없이 발전의 대가로 철
그르게 무더운 여름이 되어 버린 요즘에 와서 '과연 그런가'고 우울하게 묻곤 한다.
(덧붙임)
1. <<한겨레>>(2005. 5. 6)에서 읽은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20년 동안 고아를 돌보면서 산 스위스인
할머니 인진주(60·본명 마가레트 닝게토)씨는 한국에 지금 처음 왔다면 아마 이곳에서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는 가난했지만 나보다 조금 더 가난한 사람한테 밥 한끼라도 먹여주고 그랬잖아요. 요즘 텔레비전 광고 보면 너무 한심해요. 내 아이랑 남편 잘 돌보고, 좋은 집이랑 자동차 사고 그러려면 아내인 내가 건강해야 한다고 나오죠? 나만, 우리 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거예요."(전체 기사)이게 촌스러움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한 모습이 지니고 있는 뜻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 다음과 같은 구절도 음미할 만하다.
특히 현대 주택은 막대한 양의 물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히 가까운 장래에 물을 둘러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되고 있는 이 시대에 일본 주택처럼 먹을 물을 수세식 변기, 청소, 빨래, 정원 물 주기까지 말 그대로 그야말로 물을 물 쓰듯 펑펑 쓰고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츠지 신이치, 권희정 옮김, <<슬로우 이즈 뷰티풀>>, 빛무리, 2003, 235-6쪽)아마 지은이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을 든 것이겠다. 일본인들이 물을 얼마나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현대 주택에 사는 우리도 남들에게 그리 뒤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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