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수능, 딸, 아빠

귤밭1 2006. 11. 28. 12:43

오늘(206. 11. 24) 치 <<한겨레>>를 보다 눈물이 핑 도는 글이 있어 옮긴다.

 


솔나리 파이팅

어느날 청소를 하다가 자그만 빨간 스웨터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 딸 솔나리의 것이다. 십 몇 년이 주마등 처럼 지나갔다. 네다섯살 쯤 되었을 때 친구랑 너무 재밌게 놀던 나머지 “솔나리 밥 먹어라!”하고 부르면 “나 없다!” 하고는 안심하고 놀던 솔나리. 내가 없을 때 전화가 오면 “우리 아빠 신문지 만들러 갔어요.”하고 대답하던 솔나리. 그래서 우유부단한 나는 그 스웨터를 또 버리지 못한다. 암튼 그 솔나리가 어느덧 수능을 쳤다. 재수 하느라 두번 째. 시험 마치고 내가 전화를 했다.

 

-솔나라, 수고 했지?
-수고 안 했어.
-?
-대충 찍었어.
-(허걱!)…그, 그래 잘 했어.

순간 많은 생각들. 옛날의 내 모습도 생각나고… 걱정, 포기, 초탈… 시원….

 

신문에 낼 거라며 너 자신에 대해 얘기 해 보라니까
-음… 우선 매력이 있구, 글구… 음…. 뭔가 될 애야. 지금은 이러구 있지만.
(헉!)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될 거야. 그러니 에이! 걱정하지 말자. 됐잖아.

 
그래, 네 그림에 노란 은행잎을 그려 주마. 오토바이는 못 사주지만 아빠의 선물이야.(원문과 그림)

그림을 꼭 보기 바란다. 아빠의 선물 속에 묻힌, 공부는 못하지만 틀림없이 앞으로 뭔가 될 조짐이 느껴지는 예쁜 처녀가 있다. 이러면 충분히 된 것이 아닌가! 물건도 사람도 저 스스로 혼자 드높아지지 않는다. 아빠가 밀어 줘야 딸이 잘 자란다.

 

그래도 수능을 보고 나서 그 결과를 아파할 대다수의 수험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내가 뭐라고 하는 것보다 위의 박재동 화백의 글을 읽은 기자의 격려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

 


수능 본 박재동 화백 따님 얘기 한번 들어보세요

박재동 화백과 따님의 다음과 같은 수작(?)에, “어쩜…”하고 혀를 차다가 몹시 안심(!)되는 구석이 있었다. 위로받았다고 해야 옳겠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딸이로고.

이번 호 ‘박재동의 스케치’ 한 단락.

암튼 그 솔나리가 어느덧 수능을 쳤다. 재수 하느라 두번 째. 시험 마치고 내가 전화를 했다.
“솔나라, 수고했지?”
“수고 안 했어.”
“?”
“대충 찍었어.”
“(허걱!)…그, 그래 잘 했어.”
순간 많은 생각들. 옛날의 내 모습도 생각나고… 걱정, 포기, 초탈… 시원….

우리집 딸은 솔나리보다 한 살 아래다. 솔나리 그토록 잘 놀던 시절에 김포 고촌의, 지금은 미국간 김미경-마종일 전 한겨레 식구 집 등등에서 함께 놀기도 했다. 그땐 한겨레 미술반이라는 게 있었는데, 박재동 박시백 화백, 이재민 공주 정도 빼고 나면 왕초보들이었지만 그래도 가끔 따라서 폼을 잡던 시절이어서 그림 핑계로 곧잘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 함께 놀기도 했다. 그 시절이 짱짱했다.

 

어쨌거나 우리집 딸도 올해 수능을 쳤고, 나 역시 허걱! 할까봐 대놓고 조근조근 물어보진 못했지만, 수능 끝나고 입이 쓰다. 안쓰럽다고 해야 할지. 지금 아이들은 예전과는 아주 다르다곤 하지만, 그 놈의 점수에 전혀 초탈할 아이와 그 부모들이 있겠는가. 기뻐 날 뛸 극소수에게 축하를 보낸다. 하지만 그들을 빼고 나면 세상은 온통 비참하다. 무슨 놈의 학교교육이 이 모양이고 나라가 이 모양인가! 성적순으로 점지받던 식민지시절도 아니고 로봇 감별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20세기는 이미 저물지 않았나. 도대체 이런 세상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래서 “수고 안 했어”라고 싹뚝 자를 줄 아는 솔나리가 기특해뵌다. 그래, 성적에 찌들 것 없다. 내일을 그 누가 알리. 아이들아, 굳세어라 금순아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원문)

'성적에 찌들지 말'고 '굳세어라'라는 말이 그냥 한번 해 보는 빈말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하다. 정말이지,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가 수능 결과가 안 좋은 학생에게 건네는 위로용으로만 쓰이는 위선적인 사회여서는 안 된다. 딸과 아빠는 그깟 성적을 놓고서가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삶과 가치에 대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여야 한다. (2006. 11. 24)

 

 

(덧붙임)

 

우리 동네에 있는 배문고등학교의 동창회에서 단 플래카드가 큰길에 걸린 것을 봤다. 거기에는 '자랑스러운 배문인'이라고 해 놓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두 졸업생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졸업생이 이 두 명뿐이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저런 시험에 합격해야 자랑스러운 축에 든다! 이게 부인할 수 없는 우리 현실이다. (2006. 11. 26)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