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놀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린 시절, 즐거움, 고스톱-이것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같은 것들이다. 그 반대말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이 놀이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데 이 목록에는 공부, 일(노동), 효용성 등이 들어간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렸을 적에, 저녁도 거른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오자 어른들이 우리들에게 하시던 말씀이 놀이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슨 말? '쓸데없이 뭐 하러 돌아다니느냐?' 이런 얘기를 안 듣고 자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요즘은 그 양상이 크게 달라진 듯하지만.
쓸데없다! 이것이야말로 놀이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방 한구석에 소중하게 보관해 놓은 구슬, 딱지들을 어디에다 써 먹겠는가! 어른이 보기에는 쓰레긴데, 놀이의 당사자들에게는 보물이다. 그런데 쓸데없는 것이 즐겁다니? 쓸데없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러이러해서 딱지가 필요하니 딱지치기해서 많이 따 오라고 말이다. 이때 아버지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한 딱지치기는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즐겁기는커녕 괴로운 일이 된다. 똑같은 딱지치기인데도 그 목적에 따라서 아주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그 자체로 즐거운 것, 좀 어려운 말로 하면 그 자체 이외의 외부적인 목적을 갖지 않아야 즐거운 것이 놀이다. 요컨대 놀이는 쓸데없는 것이고 그 때문에 즐거운 것이 된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리기 위하여 하는 고스톱은 즐거운 놀이지만, 돈을 따는 일이 목적이 되면 노름이다. 문학을 즐기는 것에도 분명히 이런 측면이 있다. 그냥 즐거운 것이다.
그런데 정말 놀이는 즐겁기만 하고 쓸 데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어른들은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하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이런 말도 들어 본 적이 있다. 공부만 하고 놀지 않은 아이는 바보가 된다는 외국 속담 말이다. 공부만 하면 바보가 된다. 그러니 바보가 안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놀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놀이가 쓸 데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정반대의 주장에 이른다. 그렇다. 얼른 보기에 쓸데없지만 쓸데없기 때문에 참말로 쓸 데가 있는 것이 놀이다. 이러니 놀이에 대해서 더 살펴보아야겠다.
놀이는 몇 가지 성질을 갖고 있다. 첫째로 놀이는 몸의 움직임을 요구한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놀이도 잘 들여다보면 몸의 어느 부분을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젖먹이들이 손을 움직여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 뾰족한 것을 구멍에 맞게 끼우려고 애쓰는 것을 본 일이 있는 사람들은 그 일이 그 젖먹이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안다. 끊임없는 노력과 실수의 반복을 거치고 난 다음에야 겨우 성공한다. 그런데 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킨다고 생각해 보자. 아이는 물론이거니와 엄마에게도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잘 놀면 이것이 쉽게 해결되어 버린다. 왜 놀이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니까. 고무줄놀이나 구슬치기를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놀이는 우리 몸을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즐겁게 하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놀이야말로 정말로 쓸 데가 있는 공부가 아닌가!
둘째로 놀이에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은 놀이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누가 그것을 위반하면 놀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규칙을 준수하는 일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수용해야 할 사회적인 약속을 미리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놀이는 앞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할 사회의 축도인 셈이다. 그러니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익히고 있으니 말이다.
셋째로, 사실은 이것이 가장 먼저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인데, 놀이는 자유를 필수적인 사항으로 전제한다. 의무적으로 놀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의무가 되면 놀이가 아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어야 놀이고, 그래서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놀이는 우선적으로 먼저 하나의 자유로운 행동이다. 명령된 놀이는 놀이가 아니다. 그러한 놀이는 아무리 잘된 것이라 해도 우격다짐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 자유의 성격 때문에 놀이는 자연이 가는 길과는 구별된다. 놀이는 자연의 과정에 부가되는 것이며 아름다운 의상처럼 그 위에 입혀지는 것이다.(요한 호이징가, 권영빈 역, <<호모 루덴스>>, 홍성사, 1981, 16쪽)우리는 여기서 일도 얼마든지 놀이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두자. 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때 일은 즐거운 놀이가 된다.
넷째로 놀이는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해야 놀이답다. 앞에서 놀이는 규칙을 필요로 한다고 했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놀아야 하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의향을 고려하면서 놀아야 하는 것이다. 일종의 사회생활인 셈이다. 그러니 이런 놀이를 쓸데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요약하면 놀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즐겁게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공부만 하는 아이가 바보가 된다는 말은 맞다. 학교에 갔다와서도 또 학원에 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다시 공부하는 요즘의 아이들을 우리는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된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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