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가 혼자만 보면 안 될 것 같아 여기 옮깁니다. <<몽실 언니>> 등을 쓴 작가 권정생(이 분에 대해서는 아래의 <잘산다는 것>을 보세요)의 인간적 위엄이랄까 그런 것에 대한 감동적인 얘기입니다. 글을 쓴 이는 주목할 만한 잡지 <<녹색평론>>의 발행자인 김종철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우리들의 하느님》이란 책 아시죠?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인데, 출판사에 관계없이 좋은 책이에요. 그런데 얼마 전에 MBC 방송의 '느낌표'라는 독서권장 프로그램에서 그 책을 다음번 선정도서로 하겠다는 연락이 저희에게 왔어요. 그 프로그램은 꽤 호평을 받고 있는 모양인데, 물론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근데 저 자신은 텔레비전 자체에 대해서 워낙 부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출판한 책이 그런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는 게 달갑지 않아요. 물론 책이 그렇게 방송을 타면 꽤 많이 읽히겠죠. 출판사나 저자에게도 적지않은 수입이 생길 것도 틀림없고요. 방송국에서 처음 연락하면서 당장 20만부쯤 준비를 해두는 게 좋다고 그랬어요. 그런 걸 보면 거의 폭발적인 수요가 생긴다는 게 맞는 말이지요. 그러나 저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방송국 쪽에서 좀 당황했던 모양이에요. 출판사 측에서 거부하리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을 거고, 프로그램 녹화 예정날짜는 잡혀있을 테니까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을 거니까요. 그래서 방송국 사람들이 저자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던 모양이에요. 아마 선생님 책을 이런 식으로라도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게 좋지 않으냐 하고 설득하려 했겠지요. 하기는 저도 그런 생각을 안한 것이 아니고, 또 적지않은 인세수입이 생기면 권선생님의 아무 대책 없는 노후생활에도 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쩐지 그렇게 하기가 싫었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권선생님 반응도 명쾌했다고 그러더군요. 방송국 사람에게 한마디로 느낌표 도서로 선정되는 게 싫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하면,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은 책방에서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인데, 왜 그런 행복한 경험을 없애려는 거냐, 그러셨답니다.(김종철, <왜 자치, 자율의 삶이 필요한가>의 부분, <<녹색평론>> 2003년 7-8월호)우리 시대의 총아를 방송과 돈이라고 해도 크게 반대할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대단한 경지에 있지 않고서는 거스를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게끔 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흐름에 몸담는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방송에 소개되자마자 책은 잘 팔릴 테고 돈방석에 앉게 되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쉽게 풀 수 있을 것인데도 의연하게 거부한 것입니다. 그 이유를 보건대, 김종철의 경우는 텔레비전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비록 널리 책을 읽히련다는 목적이 좋다고 해도 나쁜 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경우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결정해야 된다는 점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니까 아이들이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 책을 읽는 것이 마뜩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두 사람에게 욕심이라고 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만)과 마찬가지로 자기 글과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만큼 아무나 물리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한마디로 뿌리쳤습니다. 위대한 경지지요. 놀라울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무욕의 삶이 가능한 것일까요?
참고로, 글 전체가 생각할 거리로 가득 차 있으니 꼼꼼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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