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어떤 시 읽어 보기

귤밭1 2005. 1. 19. 10:08
시를 읽는 데 무슨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 자체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할 것입니다. 사실 시를 읽는 재미는 시가 얘기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이것저것 생각해 보며 상상력을 작동시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시를 읽어 봐야겠지요?

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가네

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

벚나무는 건달같이 / 안도현
1연은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군산 가는 길가에 벚나무들이 쭉 심어져 있는가 봅니다. 크거나 작은 것들이 연달아 있을 테니 그 모양이 술 취해서 걸어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취한 것은 시각적인 뜻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벚나무가 저 스스로 봄 기운에, 그리고 그 기운이 만들어낸 꽃에 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기운은 벚꽃을 보는 사람이면 아무나 취하게 할 만큼 강합니다. 그러니 벚나무는 아무에게나 집적거리는 건달인 셈입니다.

2연으로 넘어갑시다. 이곳은 다음 3연과 연결하여 읽어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꽃이 내뿜는 기운이 하도 강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취하게 하여 가슴에 못을 박게까지 합니다. 비명은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식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꽃봉오리가 벌어질 때의 모습과 못, 다시 말하면 뾰족한 것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성적인 이미지도 음미해 볼 만합니다. 그렇다면 그 결정적인 순간의 소리가 비명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이 모두 그러하듯이 꽃도 속절없이 이울고 맙니다. 그 자리에 사랑의 흔적인 듯 버찌를 남기지요. 처음에는 파랗다가 나중에는 검붉게 되면서 물을 흘리는 것이 화농을 닮았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럴 것이 아니라 먼저, 못이 박혀 상처가 난 자리에 화농이 생겼다고 해 놓고, 버찌 얘기를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겠습니다.

3연은 이미 본 셈이지만 그래도 얘기를 다한 것은 아닙니다. 또 봄이 되면 벚나무는 지난날의 상처(위에서 보았듯이 사랑은 상처이기도 합니다)를 잊은 듯 사람을 달뜨게 할 것입니다. 물론 봄이 오기까지 벚나무는 꽃을 달기 위하여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돈(벚꽃)을 마련해야지요. 또 다 써 버리고 말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4연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꽃이 졌으니 가졌던 돈은 다 날려 버렸고 어느덧 봄날도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시가 겉으로 얘기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새겨 들은 셈입니다. 그런데 풀어야 중요한 문제는 이제부터 나온다고 해야 합니다. 이런 얘기에서 정작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거지요? 활짝 피었다가 속절없이 지고 마는 벚꽃에서 우리 삶의 허망함이나, 늘 사랑의 이름으로 상처를 껴안으면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적인 행로를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로 들어 본 것뿐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찾아 볼 일입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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