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박홍규

귤밭1 2010. 9. 3. 05:29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박홍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아졌다. 수백만원 한다는 기발난 자전거를 수천만원 한다는 스포츠 자가용차에 싣고 공원이나 산 밑에 와서, 울긋불긋한 모자와 몸에 꼭 붙는 옷을 입고 무리지어 달리는 모습도 흔해졌다. 연예인이나 문예인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모방하는 사람들도 늘어간다고 한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되돌아보면 잘한 게 하나도 없지만 그나마 50년 이상 자가용차 아닌 자전거를 탔다는 것만은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그동안 많은 책을 냈지만 20년 전의 가장 얇고 게다가 번역서인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가 그나마 좋은 책인데, 베스트셀러가 되기는커녕 거의 팔리지 않았다.

 

처음 자전거를 탈 즈음에는 자가용차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물론 자가용차가 거의 없었고 요즘의 자가용차처럼 자전거를 많이 탔다. 그러나 자전거도 당시는 돈 있는 집안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런 집에서 자전거를 빌려 먼 시골 친척집에 심부름을 다녀온 추억이 가장 즐거웠다. 그 전에는 자전거가 더욱 귀했으리라.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들어온 개화기에는 자전거를 특권계급만 탔다. 자전거가 프랑스혁명 직후 발명됐을 때도 귀족의 놀이용이었다. 1980년대부터 자가용차가 보급되면서 자전거는 점차 자가용차보다 하등의 계급으로 취급됐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하등 노동자나 농민에게 국한됐다. 서양에서도 20세기 초엽부터 그렇게 돼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도둑>에서 보듯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는 막노동꾼의 유일한 자산이기도 했다.

 

자동차와 함께 대로를 달릴 권리

 

그러나 유럽은 물론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각각 나름의 이유에서 자전거가 널리 보급됐다. 80년대 초 외국이라고는 처음으로 일본에 갔을 때 가장 놀라운 점은 자전거 홍수였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자전거를 탔고, 아내도 자전거를 배워 주말이면 아이들을 태우고 달렸다. 그 뒤 20년 이상 자전거로 출퇴근한 것을 비롯해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탔다. 나는 일본을 끔찍이 싫어하고 일본을 닮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보지만 단 하나, 일본인의 자전거 타기에 대해선 호의를 가지고 있다.

 

자전거는 일본인만 많이 타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이나 인도인을 비롯한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은 물론 유럽인들도 많이 탄다. 아마도 인구비로 따져 자전거를 가장 적게 타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이 아닌지 모르겠다. 일찍부터 자가용차가 발달한 정말 넓은 나라 미국에서야 자가용차가 많아도 무방할지 모르겠으나,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좁디좁은 한국에서 자가용차가 이렇게 많은 점을 나는 하나의 ‘사회문제’라고 생각해왔다. 특히 나처럼 자가용차를 굳이 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그걸 타는 것을 비도덕적이라 생각하고, 자가용차를 타기는커녕 면허증도 가진 적이 없다. 그래서 미국 것을 다 닮는다고 해도 그것만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만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대학에서는 자전거를 많이 탄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도 많이 탄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서나 평상복 차림에 평범한 자전거를 타지 우리처럼 비상복에, 비범한 자전거에, 비범한 모자까지 덮어쓰고 타는 걸 본 적이 없다. 대학만이 아니라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어떤 동료교수가 내게 그렇게 하고 타야 안전하고 법에 걸리지도 않는다고 했지만, 그런 법이 있는지 모르겠고 그런 게 있다 해도 지킬 생각이 전혀 없다. 나치 하에서처럼 자전거를 전체주의에 반항하는 상징으로 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 유럽 대부분 도시에서 일반화된 자전거 무료대여제는 60년대 암스테르담에서 반체제파가 나치 치하에서처럼 ‘자전거를 돌려달라’고 외치며 도심의 자동차 통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시작됐다.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 처음으로 짧은 바지를 입었고 마침내 여성의 투표권을 요구해 그것으로 시작된 여성해방운동에 불을 지폈다.

 

전용도로 등 물적시설 갖춰지길

 

우리에게 자전거는 그런 사회적 의미를 담기는커녕 19세기 서양에서 자전거가 처음으로 일반화되면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대로를 달릴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받아낸 것처럼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얻은 바 없으니 자전거 이용자의 인권은 19세기 수준이다. 그래도 건강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자전거가 일부 계층에서 애호되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자전거 전용도로 확보를 비롯한 물적 시설의 정비와 함께, 무해한 자전거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타는 최소한의 인간적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박홍규 | 영남대 교수·법학 (원문)

나도 자동차 운전 면허증이 없다. 앞으로도 이것만은 없이 지내려고 한다. 웬만하면 다 자동차를 모는데 안 그러는 이유가 없을 수 없다. 왜 자동차를 안 모느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다르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모두 똑 같으면 내가 없어질뿐더러 재미도 없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이것 말고는 내가 남과 다르다는 점을 내세울 게 없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자동차를 몰지 않아도 되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참 다행스럽다. 가끔씩 권유와 압박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이대로 살다 죽겠다고 하면 상대방은 입을 닫고 만다.

 

둘째 이유도 있는데 얘기하기가 몹시 쑥스럽다. 우리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내 행동과 큰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마땅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남의 차를 얻어 타며, 여전히 고기를 먹고, 그리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산다. 반성한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운전하지 못해서 좋은 점도 있다.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된다. 걷기 여행을 즐기게 된 것도 운전 면허증이 없는 것과 아주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기계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퍽 마음에 든다. 편리하게 하는 것들은 그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한번 일부러 손전화를 집에 놓고 밖에 나가 보라. 허전해서 내가 아닌 것만 같다. 자동차도 아마 사람을 이렇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초등학생일 때 자전거를 배우다 넘어지는 바람에 겁이 나서 그만두고 만 게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지구를 살리는 데 자전거만 한 게 없는데 이런 것만 봐도 위에서 얘기한 내 생각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것이다. 자전거는 다른 사람을 내치지 않는다. 에어컨을 틀면 내 방은 시원하지만 그 대신에 밖은 온도가 올라가고(여기 보세요), 자동차를 몰면 세상이 더러워진다. 내가 편리해지는 대신에 다른 사람-주로,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이 그 대가를 치뤄야 한다. 자전거는 이런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거기다가 몸을 쓰도록 하여 건강까지 선물해 준다. 마음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다. 걷다가 자전거를 탄 사람을 만나면 의식적으로, 나보다 덜 고생한다며 낮춰 보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나는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