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을 걷다가 아래와 같은 안내문을 보았다. 그대로 읽어 보겠다.
쉿!
이곳은 공동주택 인접지역입니다.
인근주민에게 피해가 가지않도록 산책로 통행시 목소리를 낮추어 통행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보자마자 우리말이 고생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쓸데없는 한자어투성이인 데다 같은 말의 되풀이까지 꼴불견이다. 입에서 나오고 한글로 쓴다고 다 우리말은 아니다. 좀 막연하기는 하지만 우리말다워야 우리말이다.
전화 문자로 저 글을 옮기며 우리말이 괴로워하고 있으므로 손봐서 편안하게 해 달라고 했더니 몇 개의 대꾸가 있었다. 처음에 온 것은 만점짜리여서 바로 옮기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 맨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고 다른 것부터 읽어 드리겠다. 괴로움이 가셨는지 여러분이 판단해 보기 바란다.
1. 산책로 통행시 인근 주민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어 주시기 바랍니다.
2.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근처에요.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 산책해 주세요.
3. 이곳은 주택단지와 인접해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 바랍니다.
다 원래의 글보다는 훨씬 낫지만 문제가 있다. 좀 따져 보자.
1번에서 '통행시'는 이중으로 어색하다. 어차피 통행하는 사람이 볼 것이니까 이 말이 불필요할뿐더러 굳이 쓴다면 '다닐 때' 정도로 고쳐야 한다. 이 '시(時)'는 공문이나 안내문 같은 데서 아주 많이 쓰는데 바로 앞에서처럼 풀어 써야 할 때도 됐다. '피해가 되지 않도록'도 이상하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 드러나야 한다.
2번은 아주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 '여기' '곳' '근처'는 다 '장소'를 뜻하는 말들이다. 그러니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만 꼴이 되었다. 이런 것들은 간단히 줄여야 우리말답다. '조용히 산책해 주세요'는 '조용히 다닙시다'와 비교해 보자.
3번은 원래 글의 의도를 많이 벗어나 버렸다. 다시 말하면, 피해의 내용이 포괄적이어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뭘 주의하라는 것인지 얼른 그 뜻을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인접해 있습니다'보다는 '가까이 있습니다'가 좋지 않을까? 이렇게 쉽게 쓰면 아이도 얼른 알아본다. 왜 안내판을 두는지 생각해 보자.
이제, 만점짜리 글을 읽을 차례다.
가까운 곳에 공동주택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않도록 조용하게 다닙시다.
내 것도 들려 드리겠다.
가까이에 공동주택이(또는, 공동주택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주민에게 피해가 가지(또는.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조용하게) 다닙시다.
질문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마을 사람들'을 나는 '주민'이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책 속으로 난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고향 제주의 추억-돼지 이야기 (0) | 2018.03.31 |
---|---|
동요 <새 신> 읽기 (0) | 2018.03.27 |
책도 못 읽고 글도 쓸 수 없다면 (0) | 2018.03.25 |
달인 (0) | 2011.02.12 |
걷기 유행 비판에 부치는 변명 (0) | 2011.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