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조금 못 되어서 장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오전 8시 25분에 용산발 고속열차를 타고 11시 50분에 목포에 내렸습니다. 제자의 차를 타고 학교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강진에 도착한 게 2시 30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3시간 반 정도 걸은 셈이네요. 거리로는 13km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걸었더니 좀 지쳤나 봅니다. 중국집에서 잡채밥 먹고 피시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뒤지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깐 잤습니다. 이제는 됐습니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요.
서울에는 눈이 별로 오지 않아서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정읍쯤에 와서야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소나무 위에도 눈이 두껍게 쌓여 있는 채고, 길에도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습니다. 도보 여행 택일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목포에 가까이 오자 눈이 덜 쌓여서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23번 도로를 죽 따라왔습니다. 오래된 길이어서 마을을 지나는 게 좋았습니다. 길가의 눈은 거의 다 녹아서 걸음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귀마개가 되는 모자(사진 1, 2)까지 준비해서 그리 추위를 느끼지는 못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맨얼굴은 얼얼했습니다. 겨울의 도보 여행이 여름보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름보다 옷이 많이 들어가야 하니까 배낭이 무겁습니다. 여름에는 아무 곳에서나 쉬었지만 오늘은 바람 때문에 정류소 같은 데서만 멈췄습니다. 그리고 마을을 지날 때를 빼고는 길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혼자 하는 일이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걷는 게 싫을 리가 없지만 이런 상태로 부산까지 가는 일이 좀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마을을 벗어나서 고속도로 비슷한 국도를 바람을 맞으며, 더구나 그늘이 져서 아직 눈이 그대로 있을 곳을 걸을 일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걸을 만하다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사실, 한겨울에 높은 산도 오르는데 평지를 걸으면서 지나치게 불평이 많은 거지요.
또 졸리네요. 내일을 위하여 일찍 자야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따뜻하게 주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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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여행 이틀째인 27일 아침 장흥이다. 아침을 터미널 근처의 식당에서 먹고 8시쯤에 길로 나섰다. 제법 춥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직 미정이다. 하루의 걸음으로 보성까지는 너무 짧고 벌교는 좀 멀다. 지도를 보면 보성과 벌교 사이에 예당과 조성이란 데가 있는데 묵을 곳이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갖고 다니는 7만분의 1 축적 지도(<<도로 여행 대한민국 전국 지도>>, 시공사, 2005, 30,000원)-이 지도 책이 너무 무거워서 걸을 지역에 해당하는 부문만 찢어서 갖고 다닌다. 웬만한 길은 다 나와 있어서 걷기에는 꽤 쓸 만한 책이다-에는 숙소가 나오지 않는다. 보성에 가서 알아보고 거기서 잘 데를 정하기로 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23번 도로를 걷기로 한다. 2번 국도와 어떤 때는 나란히 뻗어 있는데(사진 참조. 오른 쪽에 보이는 것이 그 국도이다) 옛길-짐작이기는 하지만-을 포장한 것이어서 걷기가 아주 좋다. 무엇보다도 마을을 지나고 상대적으로 구불구불한 게 마음에 든다. 새로 낸 국도는 고속도로 같아서 싫다.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특히 터널을 지날 때는 그런 느낌이 드는데 자동차가 내는 소리가 마치 고문하는 것 같다. 터널을 빨리 빠져나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가 도로처럼 높은 다리를 지날 때도 무섭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 길을 꼭 걸어 보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좋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데를 그냥 놔 두지 않는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내 길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고 2번 국도와 합쳐지고 만다. 보아 하니 낸 지 얼마 되지 않은 길인 것 같다. 찾아보면 빙 돌아가는 길이 없지야 않겠지만 그냥 편하게 빨리 국도를 걷기로 한다. 내 불평이란 고작 이런 정도다. 말로만인 것이다. 다음날 안 것이지만 미리 말하면, 대체로 벌교를 지나서까지가 이런 길이다.
난 제주도 출신이라 평야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책에 나왔으므로 호남평야를 외웠다. 그래서 막연히 전라도 전체가 다 들인 줄로만 알았다(중국에 가서야 들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다. 구릉 하나 없는 너른 들이 하루 종일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짐작과는 정반대로 이쪽은 오히려 거의 산이라고 해야 맞을 정도이다. <<태백산맥>>의 무대로 가까이 가고 있으니 당연하다. 바람이 많이 분다. 옷이야 중무장을 했으니 몸에서는 오히려 땀이 나는데 손만은 장갑을 벗을 일이 자주 생겨 춥다. 나중에 보성에서 점심을 먹을 즈음에는 손이 곱아서 처음에는 젓가락질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열심히 걷기만 한다.
점심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오는데 보성은 먼 모양이다. 바람은 더 분다. 간간이 도로 너머로 마을이 보이는데 거기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느니 아예 참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거기 가더라도 음식점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 된장국에 밥이나 하다못해 라면 국물에 식은 밥이라고 말아 먹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듯싶은데 걸어갈 거리도 거리거니와 부탁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절실하지가 않은 거겠지. 안 먹고도 견딜 만하다는 뜻이겠다. 가게에 들르면 배낭 가득히 먹을 것을 채워놓겠다고 마음먹는 것으로 배고픔을 달래기로 한다.
<<태백산맥>>의 빨치산을 떠올리자 내가 몹시 한심스러워진다. 끼니를 거른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좀 늦는다고 배고프다는 타령이 연속적으로 나오니 말이다. 물론 나는 그 소설에 나오는 빨치산들이 하나같이 모진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신념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이 과장됐다고 평가하는 편이기는 하다. 조금 다른 데로 새면, 그래서 나는 같은 대하소설인 <<토지>>의 1, 2부는 몇 번씩이나 연거푸 읽었지만 <<태백산맥>>은 한 번 읽고 다시 손에 들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단순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큰 어려움이 없이 자란 나와 해방 직후의 소작 농민의 존재 조건은 아주 다르다. 내 이념이라는 것은 몸의 매개 없이 젊은 시절의 정의감이 덧붙여진 지식으로 얻은 것일 뿐이다. 그러니 몸과 머리가 따로 논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어려운 조건에 놓이면 바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농민은 다르다. 해방이 됐는데도 땅은 여전히 지주의 수중에 있다. 땅에 대한 강렬한 소망이 그들을 산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단 몇 분이 영원과도 같아서 짧은 시간 동안에도 깨고 자기를 무수히 되풀이해야 하는 산 속의 추위에서라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저 산 아래의 마을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올라오면 모든 것 다 뿌리치고 경찰에 자수하여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내가 굳세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보성으로 빠지는 길목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중국집이 먼저 눈에 띄길래 자장면 곱배기를 시킨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짬뽕도 맛보고 싶은데 입이 하나니 어쩔 수 없이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손이 곱아서 잘 안 되는 젓가락질을 하면서 얼른 먹고 장 구경을 나선다. 세 개에 1000원 한다는 찐빵을 300원 주고 한 개 사서 먹으면서 돌아본다. 내가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아저씨 한 분을 붙잡고 예당이나 조성에 잘 만한 데가 있냐고 물었더니 예당에는 있고 조성에는 없다고 한다. 됐다. 예당이 오늘의 목적지다. 그런데 이 아저씨, 사람의 기를 꺽어놓는다. 하루에 얼마나 걷느냐고 해서 30km 정도라고 했더니 그것밖에 못 가느냐는 것이다. 자기도 걸어 보려고 지도랑 다 준비해 놓고 있는데 하루에 50Km 정도를 걸어야 된다면서 젊은 시절에 9km의 산길을 한 시간 20분인가에 걸었다고 자랑이다. 마음이 좁은 내가 토라지려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내 여행 얘기를 듣더니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서울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자기 일처럼 광고하는 바람에 흐뭇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장 구경하고 나서 예당으로 향했다. 중간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에게 부탁해서 사진 한 장도 찍었다. 예당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있는 곳인데도 여관은 안 보인다. 도착한 때가 4시쯤이었으니 좀더 걸을 수 있지만 숙소가 없는 것에 그만 맥이 빠져서 벌교로 가는 버스를 타 버리기로 한다. 지난번에 걸으면서 앞으로는 이런 일만은 하지 말자고 결심한 것인데 아무렇지 않게 어기고 만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벌교까지는 15km 정도의 거리이다. 금방 도착한다. 걸음은 얼마나 느린가!
먼저, 여관에 든다. 지쳐서 드러눕고만 싶은 것이다. 오래된 여관이어서 숙박비가 2만원으로 싼데-장흥에서는 인터넷이 되는 모텔에서 3만원 주고 잤다- 난방 시설이 부실해서 방안의 공기는 차고 방바닥에는 전기 담요가 깔려 있다. 배낭과 양말과 잠바만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으로서는 잠밖에 아무 생각이 없다. 걸으면 이렇게 단순해진다. 그러니 행복할 수밖에. 지금 슬픔에 빠져 있거나 불행하다고 여기는 분들은 당장 걸어 보라. 단순하고 느린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그놈의 전기 담요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끄면 추울 것 같아서 제일 낮은 온도에 맞추고 잤는데도 자다가 보면 땀이 나서 깨고 만다. 몇 번이나 그랬는지 모른다. 앞으로는 돈이 더 들더라도 난방이 잘 되는 곳에서 자자고 다짐한다.
그래도 아침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 몸 상태도 좋을 뿐더러 발에도 물집 하나 안 생겼다. 고마운 일이다. 오늘은 순천까지만 걷고 일단 도보 여행을 멈춰야 한다. 약속이 생겨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차 시간을 알아 봤더니 새마을호가 4시 조금 못 되어서 순천에서 출발한다. 20 몇 km니 충분하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이쪽에는 눈이 많이 온 것 같지 않다. 산 쪽에도 양지 바른 곳은 다 녹았는지 흔적도 없고 그늘이 진 곳만 얕게 묻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바람이다. 또 고속도로 비슷한 2번 국도를 바람을 맞아가면서 걸어야 한다. 높은 다리를 지날 때 만나는 큰 트럭들은 내 몸을 날려 버릴 것처럼 사정을 보지 않고 달린다. 나를 보고 조금이라도 옆으로 비키거나 차선을 바꿔 주는 운전기사들이 참으로 고맙다.
낮이 되니 추위도 누그러지고 여전히 2번 도로기는 하지만 옛길로 되돌아와서-물론 이것도 내 추측일 뿐이다- 모든 게 흡족하다. 길을 가운데 두고 마을이 들어서 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포근한 느낌을 준다. 들어가 따뜻한 물 한 그릇 얻어먹어도 좋을 듯하다. 버스 정류장도 자주 나와서 쉬기에도 적당하다. 바닥에 주저앉아 따뜻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면 더 바랄 게 없어진다. 거기다가 어제 마음먹은 대로 과자 같은 것도 배낭에 들어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시간이다.
일단 오늘로 끝이므로 열심히 걷기로 한다. 한 시간이 안 됐는데도 표지판으로 보면 5km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진도 잘 나간다.
순천에는 금방 도착한 기분이다. 점심을 먹고 역으로 가 봤더니 1시 44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가 있다. 익산에서 고속기차로 바꿔 타기로 하고 표를 끊고 시간이 좀 남길래 역 광장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 들렀다. 안내원과 그이의 친구인 듯한 사람 둘이 있다. 도보 여행을 하고 있어서 지도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대단하다고 인사를 건네면서 어떻게 시작하게 됐느냐고 묻는다. 그 대답으로 한비야와 그이의 책에 대한 열성적인 선전원이 되어 떠들다가 기차를 탈 시간이 거진 다 되어서야 역 안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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