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04. 7. 9) 아침 <<한겨레>>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글이 실렸다. 이것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표시해 둔 다른 구절도 몇 개 옮긴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자.
오늘(2004. 7. 12) 신문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영국 정부가 달팽이나 지렁이도 애완동물처럼 보호해야 한다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읽은 <유럽은 우리의 희망>에 통하는 이야기다. 소개한다.
아무거나 게걸스럽게 먹는 내가 무슨 말을 하랴! 무식하니 덩달아 몸도 가리는 것 없이 마구 다 받아들였을 것이다.동물원에 갇힌 동물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동물들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절정이고, 광고도 동물이 출연하는 것이 눈길을 끈다. 동물관련 직업과 산업도 번성하고 있다.
그러면 동물들이 이전보다 좀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을까 아무래도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은 말 그대로 ‘애완용’일 뿐이다.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면 버리는 장난감처럼, 키우다가 귀찮으면 버릴 수도 있는 애완동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기가 나빠지면 버림받는 개들이 크게 늘어난다.
그렇지만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사람처럼 엄연히 다치면 아픔을 느끼는 신경감각이 있고, 갇히는 것을 싫어하며, 호·불호가 있는 생명체다. 그러므로 동물들도 생명체로서 합당한 존중을 받아야 하며, 필요없이 고통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데에 누구든지 동의한다. 그럼에도 동물들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아무런 제약 없이 이용되는 물건처럼 취급되는 예가 다반사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조금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왜 우리는 동물에 대하여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동물원에 있는 것은 아닐까 동물원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여러 종의 동물을 생에서 가장 먼저 접촉하고 동물에 대한 관점을 형성하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릴 때 동물원에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동물에 대해 지니게 되는 태도는 대부분 평생토록 유지될 것이고, 이러한 각 개인의 경험이 모여서 우리 사회의 동물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동물에 대한 시각 형성에 동물원은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대부분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충분하지 못한 공간에, 동물들의 자연서식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시멘트 바닥과 벽, 철창에 갇힌 채 많은 시간을 허공을 응시하며 하릴없이 보내고 있다. 누추한 우리 속에 갇혀 있는 동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동물들도 존중받아야 할 엄연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함을 느끼게 될까. 아니면 동물들은 지저분하고 어차피 사람의 지배를 받아야 할 열등한 존재로 우리 의식에 각인될까. 많은 사람에게 후자의 느낌이 오히려 강하지 않을까 한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동물원은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더 기여하는 것이 된다.
실제로 이러한 동물원 경험이 동물을 인식하는 관람객의 시각과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외국의 여러 심리학자들에 의하여 보고되었다. 예를 들어 1989년 미국 예일대학의 심리학자 스테펀 켈러트(Stephen Kellert)의 연구보고를 보면, 철창우리 형태의 추한 감옥 같은 동물원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동물들에 대한 무관심과 공포심이 이전보다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살아 있는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유일한 공적 기관인 동물원의 사회적 책임을 특히 강조하는 결과이다. 즉, 적절한 방법으로 동물들을 관리하고 전시하지 못하는 동물원이라면,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동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인 태도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서구의 동물원들은 수십년 전부터 동물들의 사육과 전시환경을 자연서식지 환경과 가깝게 조성하기 위한 여러 기법을 개발하였고 응용하고 있다.
많은 동물들의 운명이 사람에 의하여 결정된다. 동물에 대한 사람의 시각이 부정적으로 형성되면 이들 동물들의 운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동물원은 사람 사회의 동물에 대한 긍정적 의식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동물원 환경을 동물들이 본래 살았던 자연에 가깝도록 개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이항/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원문)
유럽은 우리의 희망
미국의 18개 주가 동물에 대한 가혹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농장 동물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법안을 속속 통과시키던 1990년대에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정반대로 비인간적인 축산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유럽의 그러한 움직임은 스웨덴이 농장 동물에게 자연적인 행태를 보장하는, 동물에게 적합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사실상 모든 공장식 축산 농장을 금지하는-법안을 통과시킨 1987년에 시작되었다.
유럽 의회도 이에 질세라 송아지를 개별 우사에 가두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 닭을 좁은 닭장에 가두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 소를 좁은 우리에 가두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돼지의 꼬리 단미와 거세를 금지하는 법안을 차례로 통과시켰다. 1999년 현재 스웨덴, 덴마크, 오스트리아, 핀란드, 벨기에,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 의회 국가들이 송아지의 개별 우사 수용을 금지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1999년에는 유럽 의회 소속 농무성 장관들이 2012년까지만 계사 수용식 달걀 생산을 허용하고, 그 후에는 닭을 풀어놓는 방법(free-range farming)으로 양계 방식을 전면 전환할 것을 합의했다. 2000년 영국의 과학자들은 광우병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공장식 축산 방법을 금지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1년 현재 유럽 연합은 돼지에게 새로운 복지 규정을 적용하는 안을 상정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데이비드 울프슨 변호사는 "너무나 대비되는 움직임이다. 유럽은 잔혹한 축산 방법을 금지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미국은 오히려 잔인한 방법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대비되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떠오른다. "한 나라의 위대성은 동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정된다."(존 로빈스, 안의정 옮김, <<음식혁명>>, 시공사, 2002, 278-9쪽. 참고로 어미 소와 송아지를 떼어놓는 것이 알고서는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미 소와 송아지>를 볼 것)
우리는 집짐승을 기르지 않을 것이다
버몬트 농부들은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집짐승을 두고 있었는데, 여러 종류를 키우고 있는 집도 꽤 있었다. 우리는 집짐승을 절대로 잡아먹지 않으며, 또한 집짐승으로부터 나온 생산물을 먹지도 않는다. 나아가 짐승을 착취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농부와 짐승을 똑같이 옭아매는 구속과 의존 상태에서 자유롭다. '노예를 두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옛날 속담을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짐승을 기르는 사람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뉴잉글랜드엣 축산업을 하려면 헛간뿐만 아니라 축사를 지어야 하고, 울타리도 따로 지어서 관리해야만 한다. 또 마른 풀 따위를 마련하거나 사 와서 날라야 한다. 농부들이 이렇게 정신 없이 일하다 보면 시간을 꽤 많이 빼앗긴다. 농장으로 뽑혀 온 집짐승들은 일은 가끔 가다 하면서도 먹는 것만큼은 때를 거르지 않는다. 많은 집짐승들이 자기들이 생산하는 것보다 많이 먹으며, 따라서 자기들의 뜻과는 상관 없이 사람에게 기생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튼튼한 울타리가 있더라도 모든 집짐승들은 이따금 탈주극을 벌이며, 도망치는 노예에게 하듯이 주인은 그놈들은 쫓아가서 다시 노예 상태로 되돌려 놔야 한다. 말, 소, 돼지, 닭을 치는 사람들은 때마다 짐승들의 시중을 들어야 하고, 하인처럼 짐승을 먹이고 보살피고 쫓아다니면서 몸을 깨끗이 닦아 줘야만 한다. 쇼(Bernard Shaw)는 이렇게 말했다.
집짐승이 살아 있는 동안 양치기에서 푸줏간 주인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집짐승의 하인일 뿐이며, 나중에는 집짐승의 사형 집행인이 된다.우리는 모든 생명이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재미 삼아 사냥이나 낚시질을 하지 않으며, 고기를 먹지도 않는다. 더구나 생명에 대해 외경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함께 사는 동료 생명체들을 노예로 만들거나 착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집짐승을 매우 폭넓게 그리고 아주 부당하게 착취하는데, 사람을 위해 죽도록 일을 시킬 뿐만 아니라 그 젖과 알까지 염치 없이 빼앗는다. 소, 말, 염소, 닭, 개, 고양이 할 것 없이 모든 집짐승이 사람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다. 사람은 집짐승을 살리고 죽이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은 집짐승을 사고, 갖고, 되팔고, 부려 먹고, 학대하고, 고문하며, 집짐승을 죽여 그 고기를 먹으면서도 조금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집짐승들이 자기들에게 봉사하도록 만든다. 집짐승이 저항하거나 말을 듣지 않거나 늙으면 푸줏간이나 어떤 곳으로 끌고 가 바로 처형해 버린다.
고양이와 개들은 사람의 밥상 밑에서 비굴하게 빌붙어 산다. 애완 동물은 야생 동물이 다가오면 죽이거나 쫓아낸다. 하지만 스스로 살아가며 자존심을 잃지 않은 야생 동물의 생활이 접시에 놓인 음식을 주워 먹도록 길들여진 하인의 생활보다 훨씬 훌륭한 것 같다. 우리는 야생 동물을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들이 힘차게 달리는 모습은 고양이나 개보다 훨씬 날렵하고, 아름답고, 건강해 보인다.
물론 버몬트에서 우리가 사귄 가장 친한 벗 가운데에는 개와 고양이도 들어 있다. 모든 짐승과 벗으로 지내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벗으로 지내면서도 우리는 짐승들에게 의지하거나 그놈들의 하인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많은 농부들이 집짐승을 돌보는 자질구레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며 살고 있고, 자기가 아니라 집짐승이 먹을 음식을 구하느라 애를 먹는다. 그이들이 만일 우리처럼 한다면 일하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유시화 옮김, <<조화로운 삶>>, 보리, 2000, 40-1쪽)
인간은 단연코 으뜸가는 해충
우리와 같은 생명체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생명체들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고 그들이 살아가고 진화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당신은 빈대, 흰개미, 파리, 모기, 바퀴벌레 같은 '해충'들을 죽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해충들이 금세 지구를 뒤덮어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거라고 두려워합니다. 혹시 이런 사실들을 알고 계신지 묻고 싶습니다.
1. 인간은 셀 수 없이 많은 숲을 파괴하고 (썩은 고기를 얻으려고) 지나치게 많은 목초지를 만들고 드넓은 땅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2. 인간은 온갖 새와 물고기와 짐승들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3. 인간은 '스포츠'란 이름으로 야생 동물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4. 역사상 인간은 일부러 다른 사람들이 이룬 문화를 파괴하고 약탈하며 수천만 명을 노예로 만들고 죽이지 않았습니까?
5. 당신은 미국을 여행하면서 도시의 입구에 자리잡은 빈민가의 그 끔찍한 광경, 광고판이 줄지어 선 고가도로를 보지 못했습니까?
'해충'을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살아 있고 살리는' 뜻에서 볼 때, 인간이 단연코 으뜸가는 해충일 것입니다.(헬렌 니어링, 이석태 옮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1997, 198-9쪽. 참고로 이 구절의 제목은 인용자가 붙인 것임)
인간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하버드 대학 생물학과 교수이자, 처음으로 '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에드워드 O. 윌슨 박사는 심지어 보잘것없어 보이는 개미가 인간보다 지구 생명에 더 소중한 존재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인간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가축이나 가정용 식물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동물과 생물들이 엄청난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숲은 원상을 회복하고 대기 가스들은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바닷속 물고기들이 되돌아올 것이고, 거의 멸종되었던 생물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인간이 멸종된다는 것이 물론 엄청난 손실임은 틀림없겠지만, 인간이 지구에 한 짓을 고려했을 때 차라리 다른 생물들의 생존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윌슨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아니라 개미가 멸종하면 그 결과는 엄청난 재앙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개미는 지구상의 땅을 뒤집어 흙이 공기를 쐴 수 있게 한다. 개미는 작은 곤총들의 포식자로서 죽어버린 작은 생물의 90% 정도를 분해하여 흙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사이클의 일부분을 담당한다. 수많은 식물에 수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개미가 사라진다면, 다른 생물들의 멸종으로 이어지고, 어쩌면 일부 생태계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존 로빈스, 앞의 책, 339쪽. 이 구절의 제목도 인용자가 붙인 것임)
오늘(2004. 7. 12) 신문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영국 정부가 달팽이나 지렁이도 애완동물처럼 보호해야 한다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읽은 <유럽은 우리의 희망>에 통하는 이야기다. 소개한다.
영 정원사들 달팽이보호법에 격분
영국 정부가 달팽이나 지렁이, 애벌레 등에 대해서도 개나 고양이 등 주요 애완동물에 준하는 보호를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마련, 정원사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사고 있다.
11일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동물 학대 행위의 처벌 규정을벌금 최고 2만파운드(약 4천만원) 또는 징역 1년으로 상향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마련, 금주 중으로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16세 미만의 애완동물 소유를 금지하고 있으며 각종 행사의 상품으로 금붕어를 제공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과학적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달팽이, 지렁이, 애벌레, 곤충 등을 죽이는 것도 학대행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동물을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911년 제정된 기존의 동물보호법을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정원사들과 원예학자들은 해충을 제거하는 행위가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발상 자체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텔레그래프지의 원예 담당 칼럼니스트 버니 기네스는 "정원사들이 정원을 보호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아서는 안된다"면서 "정원에서 자라는 꽃들을 망치는 달팽이를 잡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하는 것은 상궤를 벗어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BBC 라디오에 정원 전문가로 출연하고 있는 존 쿠셔니도 "지렁이와 달팽이를 개나 고양이와 같이 대우하는 것은 비웃음을 살 일"이라면서 "만약 해충들이 내 정원에서 배추를 마구 뜯어먹는다면 당연히 약을 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이밖에 동물보호 감시관들이 동물학대 현장을 적발하면 그 자리에서동물을 압수하고, 영장없이 트럭, 화물선, 항공기 등 동물 운반시설을 검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기사)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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