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마더 테레사의 참으로 인간적인 고뇌

귤밭1 2007. 9. 12. 17:27

나는 위인들이나 모험가들의 전기나 그들이 쓴 글을 많이 모아놓고 있다. 이들과 만남으로써 생각만이라도 나를 나 이상의 존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시킨 일이다. 이렇게 그들을 우러러보면서도 그들의 흔들림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무슨 일을 하자면 굳은 신념을 일관되게 밀고나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주체 쪽에서 마음이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아니면  현실 자체가 워낙 복잡하여 처음의 생각을 바꾸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게 숨길 수 없는 인간적인 현실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인적인 힘으로 초지일관 어떤 일을 밀고나가는 사람은 대단하기는 하지만 매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소설의 인물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이른바 평면적인 인물은 재미가 없다. 살면서 그런 인물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우리의 경험이 저런 평가를 내리도록 만든다. 여기서 내 경험을 좀 얘기하자. 대학 시절, 늦가을에 산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계곡 쪽에 텐트를 쳤는데 갑자기 큰비가 내려 비를 졸졸 맞으며 텐트를 옮겨야 했다. 잠을 자는데 옷에 밴 물기 때문에 추워서 잠이 안 왔다. 과장하지 않고 순간이 영원이었다. 눈을 붙이자마자 잠이 깨는 것이었다. 시간이 좀 흐른 것 같아 시계를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짧은 하룻밤도 이렇거늘 여러 해를 산에서 보낸 빨치산은 어땠겠는가? 그들의 신념이 아무리 굳세다고 해도 추운데다가 배도 고프고 저 아래 보이는 마을에서 밥을 짓는 저녁 연기라도 피어오를라 치면 다 때려치우고 자수하고 싶었을 것만 같다. 이 어려운 조건에다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군경의 달콤한 유혹이 결들이면 물리치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데도 한점 회의도 없이 꿋꿋하게 빨치산으로 활동한 것으로 그린다면 리얼리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니 모두가 다 그렇다고 하면 사람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처사가 되겠지만 보통사람이라면 갈등으로 밤을 지새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사람도 그런다고 한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갔던 마더 테레사가 그런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신문 기사를 읽고 나서 얘기를 계속하자.
      

‘신은 어디에…’ 50년 고뇌한 테레사
내면고백 편지 담은 책 출간…“천국과 신의 존재 의심”
 

“예수님은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침묵과 공허함이 너무 커서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살아서는 가난한 이의 어머니였고, 선종해서는 세상의 빛으로 추앙받은 테레사 수녀가 1979년 9월 마이클 반 데어 피트 신부에게 털어놓은 자신의 심경이다. 그가 이 해 1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 안에도 있고, 우리가 주고 받는 웃음 안에도 있다”고 말한 것과는 판이한 내용이다.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은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가까웠던 피트 신부와 주고받은 편지 등을 실은 <마더 테레사-내게 빛이 되어주소서>라는 책이 출간돼 ‘신의 부재’를 고민했던 테레사 수녀의 내면 세계를 알 수 있게 됐다고 23일 보도했다. 테레사 수녀는 48년 하반기에 쓴 편지에서 외로움을 얘기하면서 “제가 얼마나 이 고통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그는 48년 8월 인도 콜카타 (당시 캘커타) 빈민가에 들어가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타임>은 테레사 수녀가 쓴 편지 40여통은 그가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테레사 수녀에게 ‘신의 부재’는 봉사 활동을 시작한 48년부터 숨진 97년까지 계속됐다고 전했다. 테레사 수녀는 편지에서 자신이 겪는 외로움과 어둠, 고통을 지옥에 비유하고, 가끔 이것이 천국은 물론 신의 존재까지도 의심하도록 자신을 이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 상태와 공적으로 보이는 모습의 불일치를 거론하며 “미소는 모든 것을 감추는 가면이거나 외투”라고 말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의‘신의 부재’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그의 믿음과 삶의 진정성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타임>은 테레사 수녀가 ‘신의 부재’에 대한 고민을 부끄러운 비밀로 여겼지만, 가톨릭 신부들은 테레사 수녀의 고민이야말로 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든 성스러운 선물의 하나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테레사 수녀는 97년 9월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는 말을 남기고 선종했다. 그는 2003년 시복됐다. 가톨릭에선 성인 칭호의 바로 전 단계로, 뛰어난 신앙이나 순교로 이름이 높은 사람에게 복자라는 칭호를 내리는데, 이를 시복이라고 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기사 원문)

이 기사를 읽고 그 분이 위선적이라거나 신념이 허약해서 저랬다고 하면 인간의 복잡성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이지만 마더 테레사에게는 그의 신념이 굳셀수록 신에 대한 회의도 커졌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들과 하나가 될수록 신이 있다면 인간이 이렇게 처참하게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깊은 뜻이 있다고 해도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있자니 무신론자인 내게는 좀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다. 신이 없으면 어떤가? 그 대신에 크나큰 사랑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마 하느님에게 다른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하찮은 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일 것이다.


<참고 자료>

두 분의 신부님

요즘은 신문 읽기가 겁납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냐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하는 기사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 한 예로, '물애기'(아주 어린 젖먹이를 뜻하는 제주도 말입니다. 살리면 좋을 같아서 써 봤습니다. 사전에서 이 말을 찾아봤더니 '젖먹이의 잘못'으로 설명되어 나와 있네요. 참고로 오이는 제주도말로 물외(사전에도 올라 있네요)입니다. 참외와 대비되는 말이지요)의 엄마를 죽이고 그 다음에 무엇을 하고 하는, 소설보다 더 복잡한 내용의 기사는 우리를 충분히 절망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피에르 신부님 같은 분도 계시기 때문일 거예요. 읽어 드릴게요.

어느 날 나는 한 부인이 세 아이와 할아버지 한 분, 그리고 두명의 남편과 함께 오는 걸 보았다. 그들은 불법으로 살고 있던 빈 집에서 막 쫓겨났노라고 내게 설명했다. 임시로 나는 유스 호스텔로 개조한 뇌이-플레장스의 내 집에 그들을 머물게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때였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숙소는 독일인, 프랑스인, 영국인들로 만원이었다. 그 가족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었다. 달리 도리가 없기에 나는 예배실의 예수님상을 들어내 다락 한쪽으로 치우고, 그곳에 그 기이한 가족의 거처를 마련했다.

때때로 나는 노숙자들을 위한 우리의 투쟁이 이처럼 널리 발전하게 된 것이 우리 집에 계시던 예수께서 맨 먼저 당신의 자리를 집 없는 가족에게 내놓으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피에르 신부, 백선희 옮김, <<단순한 기쁨>>, 마음산책, 2001, 35쪽)

멋진 신부님입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섰던 예수님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런 이를 보면 무언가를 믿고 싶어집니다.

 

또 한 분의 신부님은 현실의 존재가 아닙니다. 공지영의 소설에 등장합니다. 역시 아주 멋진 분이므로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신학생 때 한번은 그 분(주교, 제가 소개하려는 바로 그 신부님입니다-인용자)이 우리 몇몇을 부르셨지. 술을 사주고 싶은데 조용한 데가 좋으냐, 시끄러운 데가 좋으냐? 그때는 그분이 신학대학 교수 신부님이셨는데 신학생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잔뜩 긴장할 수밖에...... 그래 대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럼 조용한 데 갔다가 시끄러운 데를 가볼까, 하셨어. 그분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젊은 여자 둘이 써빙을 하는 카페였어. 맥주를 시켜놓고 써빙을 하는 짧은 치마의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그 신부님 말씀하셨지. 저애들 참 이쁘지 않냐? 젊고 참 이쁘지? 그런데 니들 지금 기도하고 있는 게냐? 왜 그렇게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굳어 있냐? 이쁜 건 좋은 거야. 이쁜 건 이쁘다고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고 할 줄 알아야 좋은 신부가 되는 거야...... 신학교에 계신 다른 신부님이 보았으면 징계감인 일을 그분은 우리들에게 하신 거야. 그러고는 노래방으로 우리를 데려가셨지. 이번에는 시끄러운 데 갈 차례였으니까. 그분은 마이크를 들고 '사랑해!'라는 노래를 열창하셨어. 왜, 아나? 한국에 이런 노래가 있거든.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아름답고 자연스러웠지, 자연스러워서 아름다웠고...... 자유로워 보였어.

 

그런데 한달 전쯤 그분이 돌아가셨어. 설암이셨는데 (중략). 아는 수녀님이 어제 전화를 하셨는데...... 그때 이야기를 하시더구나. 돌아가시기 전 그렇게 우셨대. 칠십이 넘은 노인네가 간호해주시는 늙은 간호사 수녀님의 손을 붙들고 그렇게나 많이 우셨다는 거야. 아기처럼, 두려움에 가득 찬 아기처럼.....(공지영, <열쇠>, <<별들의 들판>>, 창비, 2004, 145-6쪽)

종교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게 없습니다만 대체로 종교는 욕망의 제어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 같은 데서는 욕망을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누리자면 욕망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서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니까 당연합니다. 이 자유야말로 위대한 영혼이 추구하는 경집니다. 간디 같은 이는 발가벗은 채 역시 그렇게 한 젊은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면서도 마음이 들뜨지 않아야 된다고 하면서 실연하기도 했다지요. 유치하게 굳이 그럴 것까지야 뭐 있냐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얘기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는 조금 짐작이 가기는 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우리 주교님도 그런 자유로운 경지를 추구하는 분이었나 봅니다. 욕망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 자연스러운 발산까지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수도나 진리의 길이 뚫린다는 거지요. 보통의 연약하고 굳은 정신은 엄연히 존재하는 욕망을 무시하거나 아예 없는 것처럼 굽니다. 뭘 하지 말라는 말만 늘어 놓지요. 그러니 욕망에 넘어가기 쉬운 보통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있게 들릴 수가 없지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일수록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기가 쉬운 것은 참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멀리갈 것도 없이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목사님네들의 도대체 신앙인 같지 않은 행태를 떠올리면 됩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면 틀림없이 이런 이들을 가장 먼저 혼내실 거예요.

 

그런데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 주교님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울다니요! 나도 울 뻔했습니다. 그분은 죽음이 두려워서 그랬지만 나는 우리 주교님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해서 그랬습니다. 이분의 말을 따라 하면 두려운 것은 두려운 거지요. 그래서 자신의 처지-아마 제삼자나 신도들이 상상하는, 다시 말하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많이 다른 그런 것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요? 우리는 얼마나 많이 남의 눈을 의식하고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인지요!-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마음이 흐르는 대로 간 거지요. 그런 점에서 '아기처럼'이라는 말은 그럴 듯한 데가 있습니다. 아무튼 거의 일생에 거쳐서 생각했을 죽음에 대해서 초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벌거벗은 진실입니다.

 

종교도 마음의 단련도 이런 궁극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조금 그럴듯한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일 뿐더러 그것을 초월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솔직하고 겸허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자신의 비루한 욕망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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