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씩 밤 늦게 기차를 탈 때가 있습니다. 어제가 그랬습니다. 오후 10시 5분에 목포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내게는 기차
타는 일이 일상이나 마찬가지어서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즐겁기까지 한데 야간 열차의 경우는 많이 다릅니다. 갑작스럽게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들면서 아주 먼 곳으로 떠나간다는 비장한 마음까지 드는 것입니다. 전서부터 그랬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젊은 날, 서울을 견디지
못해 고향으로 내려가는 어떤 젊은이의 외로움에 공감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내 젊은 날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그 젊은이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걸어오는 오는 동안(서울역에서 걸어서 20분 걸리는 곳에 집이 있답니다), 비장했던 마음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고 자잘한 일상사를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소심한 사람은 머리 속에서 이렇게 가끔씩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그 경계선도 넘어 보지 못한 채 안전하게 다시 생활로 돌아옵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기차에 올라서 그리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예기치 못했던 외로움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여름 밤, 캠퍼스 내의 벤취 위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 두시나 됐을까 세시나 됐을까 푸시시 잠이 깨어 일어나 앉아, 이슬이 내려 축축해진 옷 때문에 약간 한기를 느끼며 어둠 속을 내어다 보고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밀려 들던 그러한 외로움이었다.물론 흔하지 않은 일을 그것도 밤에 경험하는 데서 오는 느낌이 외로움을 조장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밤 늦게 기차를 타게 될 때는 재밌게 놀고 난 다음이기 때문에 그런 기분에 젖기 쉽다는 점도 있고요.
누구나의 입에서 내뱉어지기 때문에 차마 입 밖에 내어 말하기가 머뭇거려지던 '외로움'이란 어휘가 그 기차간에서는 아무 자책 없이 안겨오는 것이었다. 외롭구나라는 말 한 마디 하기에도 숨이 컥컥 막히었다니, 나는 기차의 유리창을 입김을 불어 뿌옇게 만들어서 거기에 손가락으로 '외롭다'라고 써 보았다. 그러자 온갖 부담을 털어 버리는 혹은 잊어 버렸던 유희를 기억해 낸 듯이 흐뭇해 오는 느낌이 있었다. (김승옥, <환상수첩>, <<김승옥 소설집>>, 샘터, 1975, 336쪽)
그런데 집으로 걸어오는 오는 동안(서울역에서 걸어서 20분 걸리는 곳에 집이 있답니다), 비장했던 마음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고 자잘한 일상사를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소심한 사람은 머리 속에서 이렇게 가끔씩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그 경계선도 넘어 보지 못한 채 안전하게 다시 생활로 돌아옵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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