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듯한 주례사를 들어서 여기 소개한다. 주례사라면 으레 덕담이 나오고 부부 일심동체니 사랑, 믿음, 이해 등의 아주 멋진 말이 마치 판박이처럼 되풀이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잖을 것이다. 원래는 남이었던 사람들이 모여 한 가정을 이루니 마땅히 하나가 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들은 주례사는 이와는 좀 달라서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먼저,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고 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이란 것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만 제대로 된 가정이 된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까 그랬다. 나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해 온 것 같다. 선을 보는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정도면 같이 살면서 마음을 맞출 수 있다고 여겨 상대방을 보라고 한다. 처음 보는 순간 사랑의 불꽃이 타오른다고 하는 얘기를 듣지만 대체로 환상이기가 쉽다. 내 마음에 들어 있는 헛것이 시킨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상대방이 나와 다른 사람이란 점을 흔쾌하게 인정하고 조금씩 맞추기도 하고 나를 이해시키기도 하는 것이 결혼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서로 다른 부분이 있을 텐데 그걸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모든 일에서 꼭 같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이라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나는 이 주례사를 들으면서 좀 엉뚱하게 어떤 책의 구절을 떠올렸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한 계몽의 결과로서의 동일성 비판이다. 근대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어서 적절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부부 일심동체의 이데올로기성을 비판하는 데는 참고가 될 것 같아 인용해 보겠다.
조종되는 집단의 통일성은 각각의 개체를 부인함으로써 가능하다. 왜냐하면 개인이란 존재 자체가 자신을 획일화시키려는 사회에 대한 조소이기 때문이다. 히틀러 청년 조직에 분명히 그 이름이 등장하는 그러한 집단은 과거의 야만상태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적인 획일성의 승리이며, 권리의 평등을 평등과 획일화를 통한 불의로 변화로 변화시키는 것이다.(M. 호르크 하이머, Th. W. 아도르노, 김유동 외 옮김, <<계몽의 변증법>>, 문예출판사, 1995, 37쪽)여기서 '집단'을 '부부'로 바꾸기만 하면 일심동체의 허위성이 바로 드러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은 여자가 남자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남녀 차별의 다른 말로 쓰인다. 그러므로 아예 과거의 유물로 처리하여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부부'라는 말을 떼고서도 '일심동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얼른 보기와는 달리 그리 좋은 뜻을 지니지 못한다. 각각의 개성을 없애야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를 닮는다고 할 때도 나를 죽여서야 되는 일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대로 남을 나와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에는 아무리 많은 선의가 개재되어 있다고 해도 폭력의 요소가 깃들어 있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또 그 주례사는 체념과 포기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니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그럴 때는 이상하다고 하면서 자기를 따르라고 하는 대신에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게 부부 사이의 참다운 믿음일지 모른다. 결혼하기 전에도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으면 될 것이다.
다음 말도 멋졌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주체라는 것이다. 물론 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의식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아이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들을 학대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집으로 오면서 곰곰히 나를 돌아보았다. 차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차별한 것은 아닌가?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해서라기보다는 마지못해서이거나 따지기 귀찮아서 나온 반응이 아닐까? 되도록 딸을 방임하련다는 내 마음의 실상은 무관심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자신있게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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