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가슴을 뛰게 하는 일

귤밭1 2004. 12. 31. 07:53
두 달 전(2004년 10월 28일) <<한겨레>>에서 읽은 한비야의 멋진 글 읽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입니다.

외국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 청년을 만났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 세계 여행기를 읽었다는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재미있는 세계 여행이나 계속하지 왜 힘든 긴급구호를 하세요?”
“그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케냐에서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아프리카 케냐와 소말리아 국경 근처에 우리 단체의 구호캠프가 있었다. 대규모 가뭄 긴급구호로서 식량 및 물 배분과 동시에 이동 안과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은 한센병(나병) 비슷한 풍토병과 함께 악성 안질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곳이었다.

그 이동 병원에 40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의사가 있었다. 알고 보니 대통령도 만나려면 며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인데 이런 깡촌에 와서 전염성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고 있는 거였다. 궁금한 내가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죠.”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고 머릿속이 짜릿했다. 서슴없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의사가 몹시 부러웠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 제대병도 잠시 생각하더니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하는 것 아닌가?
“나도 언젠가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긴급구호를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이 일을 하는 데는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기술을 습득하느냐보다 어떤 삶을 살기로 결정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

예컨대, 자기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힘있는 자에 보태며 달콤하게 살다가 자연사할 것인지, 그것을 힘없는 자와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할 것인지를 말이다. 나는 두 번째 삶에 온통 마음이 끌리는 사람만이 긴급구호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좀처럼 지치지 않는다. ‘누가 시켰어?’ 이 한마디면 일하면서 겪는 괴로움이 곧바로 사그라들곤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겉멋에 겨워 흉내만 내고, 남 탓을 하거나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포기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다르잖아요?” 제대병이 더욱 진지하게 물었다. 물론 다르다. 그러니 선택이랄 수밖에. 평생 새장 속의 새로 살면서 안전과 먹이를 담보로 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새장 밖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인가.

새장 속의 삶을 택한 사람들의 선택도 존중한다. 나름대로 충분한 장점과 이점이 있으니까. 그러나 세상 많은 사람들이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새장 밖의 삶을 사는 한 사람으로서,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새장 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뜨거움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그러니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며칠 전 비행기 안에서 한 청년에게 던졌던 질문, 내가 나에게도 수없이 하는 질문을 여러분께 드리며 ‘한비야 칼럼’을 마친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쓰고 또 쓰고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원문)
우리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움을 줘야 하는데 그렇기는커녕 쓸데없이 학대까지 하고-저는 우리 교육을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을 하는 것으로 냉소적으로 생각한답니다. 어른들이 힘을 합하여 특히 초중고에 다니는 아이들을 쓸데없이 학대하고 있습니다-있는 데 대해서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크게 슬퍼하고 있습니다. 글쎄 고1짜리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아침밥까지 안 먹으면서 일찍 학교에 가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초중고 때는 열심히 놀고 대학에 와서 부지런히 공부하도록 하면 될 텐데 우리 현실은 완전히 거꾸로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재능을 오로지 돈을 버는 데 바치지 않도록 하게 할 수는 없을까요?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의대나 법대로 가야 하는 이상한 사회가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해라. 한 번밖에 못 사는 건데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라." 우리 딸아이에게는 벌써부터 그렇게 얘기해 놓고 앞으로 그 아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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