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문학과에서는 지난 주 수요일(4월 29일)부터 금요일까지 제주도를 답사했다(사진 몇 장: 사진 1(함덕 쪽에서 본 한라산), 사진 2(오름), 사진 3(오름), 사진 4(성읍 민속마을의 팽나무), 사진 5(성읍의 팽나무), 사진 6(성산 일출봉), 사진 7(나), 사진 8(무덤), 사진 9(서귀포 천지연 폭포), 사진 10(나)). 나는 답사를 마치고 그대로 남아 토요일과 일요일에 제주 올레를 걸었다. 원래는 월요일에도 계속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있어 학교로 오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요일에 걸었던 길을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내가 걸었던 올레 가운데는 이곳이 가장 아름다웠다. 인공적인 데가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자연을 그대로 살리고 있고, 단조롭지 않아서 아기자기하기 때문이다. 바닷가의 모래와 돌을 밟으며 지나는가 하면, 바닷가를 따라서 포장된 해안도로를 지나면 절벽으로 오르는 길도 있고, 아래의 바다를 내려다보면 다리가 휘청거리게 높은 수직의 절벽 위을 따라가면 울창한 숲도 만난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걸어서 안타깝게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지만 제주 올레 9코스 A의 안덕계곡 길은 산에 오르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지난 설 연휴에 찍은 안덕계곡 길 사진들: 사진 1, 사진 2, 사진 3, 사진 4). 이렇게 이 코스는 자연의 길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인공적인 맛이 가장 덜하다. 그래서 나는 누가 올레 가운데서 어느 길이 좋으냐고 물으면 이 길을 제일 먼저 추천하고 싶다.
6시 반에 집을 나섰다. 전날에 하루 종일 걷기를 마친 다음에 제주시로 가서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 1시가 지나 고향인 중문에 오는 바람에 어머니에게 밥을 일찍 해 달란 말을 못해서-늙어도 어머니는 어머니다! 나이 든 아들의 밥까지 해 줘야 하니 말이다- 아침도 안 먹고 길을 나섰다. 참외와 사과를 배낭에 넣고, 김밥을 사서 먹기로 했다. 지난 4월 초에 걸었던 곳을 이어서 걸으려고 난드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오지 않자 그대로 관광단지로 내려가기로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이미 걷기는 했지만 경치가 좋아서 다시 한번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테고, 무엇보다도 빨리 걷고 싶은 마음이 버스를 기다리게 가만 놔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문 관광단지 안에 있는 하이야트 호텔 왼쪽-오른쪽으로 나가면, 내 초중학교 시절에 단골 소풍 장소였던 중문 백사장이다-으로 해서 계단을 내려가면 높은 절벽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모래사장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돌길(돌길 1, 돌길 2)이 이어진다. 저렇게 정리해 놓으니까 걷기에 편해서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이 훼손된 것 같아 마음은 불편해진다.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서 천천히 구불구불하게 걷자는 것인데 저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손 대지 말고 그냥 놔 두면 안 될까.
그 다음 난드르(대평)까지는 해안도로다. 논짓물을 조금 지나서부터 하예 포구까지는 길 양편으로 소나무들이 우거져서 경치가 참 좋다(사진 1, 사진 2). 바다와 길이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데서는 이상하게 외로와져서 옆에 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이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이건 잘 모르겠고,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기 아까운 것처럼 좋은 경치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일 것이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다.
혹시 난드르에 밥때에 도착하면 보말 수제비를 들라고 권하고 싶다. 보말은 바다에서 나는 다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보말은 미역과 같은 해초를 먹고 자란다는데 간에 특히 좋단다. 여행하면 아무래도 술을 많이 먹게 되는데 이 보말을 우린 국물로 만든 수제비를 먹으면 좋을 것 같다. 맛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답사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먹었는데 어떤 학생은 이 수제비가 아주 맛있었다면서 어떤 교수의 그저 그렇다는 평가에 의아해하는 편지를 보내 오기도 했다. 뭐, 저마다 취향이 다르다고 생각할 일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인상에 남는 음식 가운데 하나여서 마침 고향과 가깝고 하니-이곳에서 우리 마을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까 다음에도 들러서 먹어야겠다.
이 난드르 포구를 지나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밭을 넘어서면 자연의 길(사진 1, 사진 2, 사진 3, 사진 4)로 들어선다. 절벽 위로 올라서면 감자밭과 보리밭 들(사진 1, 사진 2)이 나타난다. 이들을 지나 바다가 바로 밑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화력발전소에 이르는 길은 숲길(사진 1, 사진 2)이다. 좋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오늘(5월 6일) 점심을 먹으면서 학교에 나무가 많아야 한다면서 숲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더니 어떤 분이 나무는 땅과 하늘의 기운을 잇는 통로라고 대꾸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쉰다는 뜻의 휴(休)가 사람이 나무에 기댄다는 뜻(여기를 보세요)이라고 아는 척했다
화력발전소를 지나면 안덕계곡 길로 이어지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걷지 않은 길을 보고 싶은 욕심을 핑계 삼아 생략하고 말았다. 처음 가는 사람은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 곳이라는 점을 꼭 강조해 두고 싶다. 자연이 싱싱하게 살아 있는 숲길인데다 계곡을 따라 오르내리는 맛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을의 조그만 길을 지나고 큰길을 조금 걸으면 화순 해수욕장이다. 길로 들어서지 말고 바닷가를 죽 따라가면 산방산 밑의 용머리 해안에 이른다. 이곳도 매력적인 곳이다. 모래사장(사진 1, 사진 2, 사진 3)을 지나 나무가 자라는 곳에 난 길은 지형에 맞춰 오밀조밀하고 구불구불한데다 바로 바다의 바위로 이어져서(사진 1, 사진 2, 사진 3, 사진 4)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형적인 오솔길이다.
용머리 해안을 지나면 사계리 바닷가다. 여기까지 걷는데 어제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마침 빗방울이 조금씩 듣기 시작해서 12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도 걷기를 멈추고 말았다
5월 2일(올레 5코스 쇠소깍에서부터 4코스 종점 표선까지)
사진 1, 사진 2, 사진 3(갯메꽃), 사진 4, 사진 5(갯메꽃), 사진 6, 사진 7, 사진 8, 사진 9(귤꽃), 사진 10, 사진 11, 사진 12, 사진 13, 사진 14, 사진 15, 사진 16, 사진 17, 사진 18, 사진 19
5월 3일(8코스의 중문 관광단지 하이야트 호텔 밑(존모살 해안)에서부터 9코스 지나 10코스 사계리까지)
사진 1, 사진 2, 사진 3, 사진 4, 사진 5(감자꽃), 사진 6, 사진 7, 사진 8, 사진 9, 사진 10, 사진 11, 사진 12, 사진 13, 사진 14, 사진 15, 사진 16, 사진 17, 사진 18, 사진 19, 사진 20, 사진 21, 사진 22(무덤), 사진 23, 사진 24, 사진 25(삼동나무 열매), 사진 26, 사진 27, 사진 28, 사진 29, 사진 30
* 사진 25의 삼동나무(삼동낭)는 사전에 없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 사투린 것 같다(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더니 표준어로는 '상동나무'란다). 익으면 까맣게 되는 저 열매는 아주 맛있다. 그냥 맛있다고만 하지 말고 그 맛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하는데 안 된다. 내 모자란 글 재주와 둔한 감각 탓이다. 약하게 새큼한데다 단 맛이 있다고 해 봐도 안 먹어 본 이들은 무슨 맛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초등학교 때는 학교가 파하면 들로 산으로 저것을 따려고 돌아다니기도 했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한 알씩 따서 손바닥에 모은 다음에 입으로 넣으면 된다. 그런데 가까이서 찍어서 알이 실제보다 더 굵게 나왔다. 나무딸기와 함께, 5월에 걸으면서 즐길 수 있는 별미이다. 나는 저런 것이 보이면 그냥 지나지 못한다. 터키에 갔을 때는 나무에서 떨어진 잘 익은 자두를 주워 먹다가 같이 간 딸에게 싫은 소리를 얻어듣기도 했다(여기를 보세요. 그런데 6년 전의 내 사진을 보니까 몹시 슬퍼진다. 세월이 내게 준 건 늙음밖에 없는 것 같다. 줄곧 먹는 얘기만 하는 것을 봐서도 시간이 선물로 주었음 직한 지혜가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잘 알겠다!). 잘 먹어야 힘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길도 멋지게 보인다!
* 4월 초에 찍은 8코스의 중문 관광단지 하이야트 호텔 밑(존모살 해안)에서부터 난드르(대평)까지의 길
사진 1, 사진 2, 사진 3, 사진 4, 사진 5, 사진 6, 사진 7, 사진 8, 사진 9
'책 속으로 난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집 토끼 끼토 (0) | 2009.05.16 |
---|---|
정해진 길 (0) | 2009.05.09 |
화창한 봄날에 읽는 정현종의 시 세 편 (0) | 2009.04.28 |
고구마와 쇠고기 (0) | 2009.04.14 |
제주 길과 봄 보세요 (0) | 2009.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