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 있었던 일이다. 고향에 가 처가에 들렀더니 초등학생인 처조카가 방학 동안 미국에 가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이모네 집에서 지내는 그 조카는 거기가 재밌다며 오기 싫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예 거기서 학교 다니면 되겠다고 했더니 아이를 다른 나라에 뺏긴다며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세계화 시대에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내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 아이가 외국인과 결혼한다고 하면 알아서 하라고 할 거라고 했다. 결혼 당사자가 자기와 살 사람을 고르는 게 나에게는 아주 당연한 것인데 듣는 사람들에게는 안 그런 모양이었다. 외국인은 안 된다는 것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이 많았는데도 날 괴짜 취급하는 게 역력했다. 나도 갑자기 낯선 곳에 온 기분이었다.
외국에 아이를 유학 보낸 친구의 말을 들어 보면 아이가 여전히 한국의 사람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공부를 마치면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 스스로 그렇게 하면 물론 좋은 일이로되 이와는 반대로 외국에서 겪은 삶의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여 거기서 거기 사람 만나 사는 것도 역시 괜찮을 것이다. 삶의 임자는 어디까지나 그 아이기 때문에 아이의 판단과 결정에 맡기면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살라는 뜻에서 외국에 보낸 것이기도 하니까 그리 이상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담이 섞인 거지만, 외국인과 사돈을 맺으면 외국에 갈 기회가 아무래도 많이 생길 테니까 여행도 하고 얼마나 좋은가!
아무튼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결혼일 텐데 자식의 결혼에 대해서 부모가 주도권을 갖고 배우자의 선택까지 부모가 결정하다시피 하는 것은 주제 넘은 짓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개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자식들은 늘 어린애로 살아야 한다. 물론 부모도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식을 돌봐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러면 자기만의 온전한 삶은 남의 나라 얘기가 되어 버린다.
얘기가 좀 길어져 버렸다. 원래는,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의, 우리 결혼과 결혼식 문화에 대한 관찰기가 귀담아들을 만해서 소개하고자 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우리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외국인에게는 무척 낯선 것일 수 있다. 내게는 이 낯선 시각이 꽤 그럴듯하게 보여서 몇 마디 했다.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평가하려고 하지 말고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다는 편한 마음으로 읽어 보기 바란다.
<외국인이 보기에 너무도 이상한 한국의 결혼, 결혼식>
축하하는 마음보다는 의무감으로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그러니 결혼 당사자들이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됐는지는 주요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결혼식 자체보다는 밥 먹기가 더 중요한 과정처럼 되어 버리고 결혼식은 소란스러운 가운데 빨리빨리 진행될 수밖에 없다. 결혼의 의미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는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형식주의, 겉치레가 우리 결혼식의 풍경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못할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바 부모의 지나치게 넓은 오지랖, 사랑보다는 조건의 만남이 되어 버리는 현실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훈이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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